中, 정상 통화 제안 거절…美 원로 통해 메시지 전달 시도
美, 장관급 인사 방중에도 경제제재는 '타협불가' 메시지
군사대화 재개·펜타닐 근절 협력·기술이전 규제 속도조절 등 기대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면서 작년 11월 '발리 회담' 이후 1년 만에 두 정상의 만남이 성사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미중은 지난 1년간 서로 유리한 입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벌여왔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 조명했다.
양측 전현직 관리들과 외교 전문가들 등에 따르면 미중은 정상회담에 앞서 고지를 차지하려고 외교적인 모욕, 흥정, 상대 무시, 회의 불참, 호의 표시 유보 등 갖가지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샅바 싸움'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양국은 11월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내년 미 대선 이전의 마지막 미중 정상회담 기회이며 양국 관계 약화를 막을 기회의 창이 급속히 작아지고 있다고 보고 정상회담을 염두에 둬 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 격추 사건이 터지자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사건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과 통화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시 주석은 통화 제안을 수 주간 거절했다.
이후 지난 6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미중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 중국을 방문, 시 주석을 만났다.
그러나 시 주석은 두 개의 긴 테이블 한쪽에 블링컨 장관 일행을, 다른 한쪽에는 중국 측 인사들을 각각 앉히고 자신은 상석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듯한 모습으로 회동을 진행해 블링컨 장관을 하급자처럼 보이게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 6월 19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방중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에서 2번째)을 상석에서 회의를 주재하듯 접견하고 있다. 2023.11.13
미국도 이후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 등 고위 인사들을 잇따라 중국에 보냈지만, 중국 측이 기대한 중국기업 제재 등과 관련된 양보 조치는 내놓지 않았다.
중국은 한편 미 정계에서 영향력이 있으면서 중국과도 가까운 미국의 원로 기업인이나 관료 출신 인사를 통해 미국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꾀했다.
이를 위해 AIG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보험업계 거물 모리스 행크 그린버그(98)를 6월 중국으로 불러 시 주석이 접견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소식통이 WSJ에 전했다.
중국 측은 고령인 그린버그를 위해 구급차와 의사·간호사까지 준비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린버그의 중국 방문이 일정 문제로 여의찮게 되자 시 주석은 미 외교가의 원로 헨리 키신저(100)를 지난 7월 만났다.
이런 가운데 여름에는 중국 외교부 고위 관리가 워싱턴DC를 방문, 양국 정상회담을 타진했다.
그러나 이후 상급자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은 9월 예정된 후속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WSJ은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지만, 당장 이번 회담을 불과 수 주 앞둔 시점에도 중국 측은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에 앞서 먼저 미국 기업인들과 만찬을 하고 싶다는 계획을 미국에 전달했다.
그러나 지난 달 백악관은 양국 정상이 다뤄야 할 쟁점이 많이 있다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정상회담 계획 브리핑을 받은 소식통이 전했다. 결국 중국 측이 물러나서 미 재계와의 만찬을 정상회담 이후로 미뤘다는 것이다.
WSJ은 이번 정상회담이 충돌을 향해 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을 해결해줄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고 전망했다.
양측 모두 상대방에 유화적으로 보일 경우 국내 정치에서 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중 정상은 양국 간 경쟁 관계가 충돌로 폭주하는 것을 막는 데 이해관계가 있으며, 미국 동맹국들도 미국이 중국과 긴장을 관리하기를 바라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부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양국 정부는 그간 단절됐던 양국 군사 당국 간 대화 재개에 접근했으며, 마약류인 펜타닐의 중국산 원료 밀반입 근절 협력도 논의 중이다.
또 시 주석 입장에서도 정상회담을 무난히 치르면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미국의 기술이전 추가 규제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고 중국 경제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도 개선될 것이라고 WSJ은 관측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관영 인민일보는 지난 12일 논평에서 "중국은 또 하나의 미국이 될 수 없고, 미국 또한 자기 입맛에 맞게 중국을 바꿀 수 없으므로, 상호 포용만이 유일한 선택지"라며 이례적으로 미국 비난 대신 화해 기대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