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 안정이 장기금리를 하락시키고 증시를 반등시켜. 디스인플레이션의 영향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
■ 지금까지는 경기와 실적이 증시에 긍정적이었고 통화정책과 물가가 부정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것
■ 경기가 애매한데 금리 인하가 진행된 2015년의 종목장세처럼, 지수는 덜 가더라도 밸류에이션이 재평가받는 종목장세가 나타날 전망
11월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가파릅니다. 미 증시는 2021년 말 고점에 거진 다다랐고 코스피 지수도 순식간에 200pt를 당겨 올려 2,500pt에 다다랐습니다. 역시 물가 안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사에서는 내년 상반기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디스인플레이션(물가안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가가 안정되고 재정지출에도 고삐가 죄어지자 장기금리는 큰 폭 하락했고 증시는 전고점까지 상승했습니다.
물가 안정 기조가 이어지려면 유가가 안정되어야 합니다. 수요 감소 우려와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 이스라엘 사태 안정화에 유가가 하락하자 답답해진 사우디는 추가 감산 의지를 보였지만 80달러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22년 10.5 백만배럴/일 에 달하던 사우디의 원유 생산량은 이제 9 백만배럴/일까지 감소해 더 줄이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가 안정 주장이 성급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코로나 이후 4년간 거대한 물가 상승을 만들어냈던 모든 요인이 이제는 안정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영향은 내년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물가 안정이 빠르게 나타나지만 동시에 경기에 대한 자신감도 낮아지면서 증시가 물가와 기업실적에 반응하는 패턴도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정확히는 올 3분기까지 미국 증시는 실적시즌마다 증시가 올랐고 물가 발표나 파월의장 발언 때마다 주가가 빠졌습니다. 그래서 빅테크 실적 발표 전에 반도체 주식을 샀고 CPI 발표나 파월 의장 발언 예정일 전에 주식을 일단 비우고 이벤트를 기다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반대의 패턴이 나타날 것입니다. 10월 말 빅테크 기업 실적을 보고 실망한 증시가 11월 물가와 통화정책을 보고 전고점까지 올랐습니다.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지수가 많이 올라와 추가 상승 여지는 줄었습니다. 시장을 좋게 보는 골드만삭스는 S&P500 지수의 내년 연말 타겟을 4,700pt로 제시했습니다. 지금 지수가 4,550pt이니 내년 상승폭이 기껏해야 3%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국내 증시도 24년 실적 전망치를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 코스피 지수 2,500pt이면 내년 이익 기준 P/E 10배 수준입니다. 물가가 잡혀가고 있으니 주식시장이 나쁘기 어렵지만 S&P500든 코스피든 지수의 추가 상승 여지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경기는 애매한데 유동성이 개선되는 상황에서 코스피 지수는 대체로 성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코스피는 11년, 17년, 20년에만 큰 폭 상승했는데 글로벌 경기 개선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경기가 애매한데 금리 인하가 진행되었던 2015년 코스피는 오르지 못했지만 코스닥 지수가 강세를 보였습니다. 저금리에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나타나며 음식료, 바이오, 중국 소비재가 랠리했던 시절입니다.
2015년처럼 지수는 덜 가더라도 종목은 좋은 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지수 상승보다 체감 수익률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주도주가 더 상승하는 종목장이 아니라, 밸류에이션이 재평가받는 종목장세입니다. 11월 증시에서는 카카오, 삼성물산, 크래프톤과 같이 성격이 다른 종목이 함께 오르는 재미있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주도업종인 2차전지와 반도체보다는 기타 업종에서 상승 폭이 큰 종목이 나타날 것으로 봅니다. Value든 Growth든 모멘텀이 붙은 종목을 제어할 공매도라는 브레이크도 없어진 상황입니다. 종목장세를 지난 후 금리 인하와 경기 회복이 나타나면 지수는 재차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경기 회복 여부는 내년 중반 이후 다시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 하이투자증권 시황 이웅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