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학생 바이든, 수업 마치고 차로 달려가 라디오 뉴스 틀어
케네디家, 정계에서 대부분 사라져…케네디 조카 대선 출마
(워싱턴=연합뉴스) 김동현 특파원 = 1963년 11월 22일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역대 대통령 중 한명인 존 F.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된 날이다.
사망한 지 60년이나 지났지만, 미국인의 케네디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암살 사건의 전모를 알고자 하는 관심은 여전하다.
미국 언론 다수는 케네디 암살 60주년인 22일(현지시간)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날'을 재조명했다.
언론은 '만약 케네디가 살아있었다면…'식의 아쉬움이 섞인 기사와 함께 이제 몇 남지 않은 목격자들의 당시 상황 증언을 소개했다.
AP통신은 리 하비 오즈월드가 케네디를 저격한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 등 사건 현장을 취재했던 페기 심슨(84) 기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심슨 기자는 경찰을 취재한 뒤 AP 편집국에 그 내용을 전하기 위해 공중전화로 달려가고 다시 경찰에게 돌아가는 일을 반복했다면서 당시 경찰서 상황이 "그냥 난리였고, 미친 듯이 혼란스러웠으며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케네디 암살을 주제로 한 '6층 박물관'의 전시 책임자인 스티븐 페이긴은 "10년 전에만 해도 경찰, 기자, 목격자 등 자기의 기억을 공유할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 많이들 별세했다"고 말했다.
암살 당일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키 케네디 경호를 담당했던 폴 랜디스(88)는 자기 경험을 담은 책 '마지막 목격자'를 지난달 출간했다.
1963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저격범의 총에 맞기 약 1분 전에 촬영된 사진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음모론도 여러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살아있다.
미국 정부의 워런 조사위원회는 리 하비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오늘날 이를 믿는 미국인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많은 미국인은 당시 사건을 뉴스 등을 통해 접하고 받은 엄청난 충격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21살 대학생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가용으로 달려가 라디오를 켰고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라고 생각했다.
바이든은 케네디 전 대통령처럼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기에 그와 특별한 관계라고 느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암살 60주년 성명에서 "수백만 미국인은 아직도 사건 당시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며 "난 대학 수업에서 막 나왔고 전 국민이 그랬듯이 다른 학생들과 함께 뉴스 앞을 떠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은 역사를 우리 손으로 만들고, 미국을 가장 고귀한 이상에 어울리는 국가로 만들려는 노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촉구했다"면서 그가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한 일을 모든 국민이 이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통령과 상원의원 등을 배출한 케네디가는 한때 미국의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정치 가문이었지만 지금은 정계에서 대부분 모습을 감췄다.
현직 연방의회 의원이나 주지사 중 주요 선출직에 케네디는 없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의 아들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내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주목받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및 백신 관련 근거 없는 음모론을 주장하고 공개석상에서 과격한 발언을 해 다른 가족과는 불편한 관계라고 WP는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에는 현재 3명의 '케네디'가 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는 주호주대사, 로버트 F. 케네디의 손자 조셉 케네디 3세는 북아일랜드 특사, 또 다른 동생인 테드 케네디의 미망인 빅토리아 레지 케네디가 주오스트리아대사를 맡고 있다.
1963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총격을 당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태운 리무진 차량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모습
주인공이 케네디 살리면서
베트남 전쟁은 없어졌는데
핵폭발 나서 거의 인류 멸망 나는 스토리 보고 소름 돗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