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55조·머크 30조·애브비 13조원 투자
국내외 제약사 기업·파이프라인 사들여
제약업계 “내년 더 주목해야”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ADC)를 개발하는 미국 바이오텍 이뮤노젠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101억달러(약 13조1400억원) 규모다. /로이터
글로벌 제약 바이오 회사들이 차세대 유망 기술로 꼽히는 ‘항체약물접합체(ADC, Antibody Drug Conjugates)’ 시장 선점을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다. 올해에만 미국의 화이자, 머크(MSD), 애브비 같은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우리 돈으로 조 단위 ‘빅딜’을 단행했다.
이렇게 일제히 ADC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현재의 항암제 한계를 넘을 열쇠를 쥐고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이고 암세포에 보내 필요한 부위에만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항체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면역 단백질이다.
결국 ADC는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에 빠르고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가 터지는 것과 같다. 그만큼 다른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아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ADC는 암세포만 콕 집어 죽일 수 있어 암세포 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죽여 부작용이 심한 기존 항암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 글로벌 제약 공룡, 웃돈 주고 ‘ADC’ 쇼핑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는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차세대 ADC를 개발하는 미국 바이오 기업 ‘이뮤노젠’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은 101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조1400억원 규모다.
애브비는 지난해 기준 연매출이 27조원에 달하는 세계 1위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휴미라의 특허 만료로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와의 경쟁이 시작됐다. 이에 따른 휴미라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데, 이런 위기 속 이 회사가 ADC 회사를 사들이며 항암제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선 것이다.
애브비는 이번 이뮤노젠 인수로 이뮤노젠의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게 된다. 이뮤노젠의 난소암 치료제 ‘엘라히어’는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난소암 분야에서 최초로 ADC로 조건부 허가받은 약이다. 난소암은 미국 부인암 사망 주 원인이다.
ADC 기술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건 이 회사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미국 머크(MSD)는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현재 개발 중인 ADC 3종에 대한 글로벌 개발과 상업화 계약을 맺었다. 전체 계약 규모가 220억달러(약 30조원)규모에 이르는 큰 거래다.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는 2세대 ADC 항암신약 ‘엔허투’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엔허투는 다이이찌산쿄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AZ)가 공동 개발한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HER2) 양성 유방암과 위암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최초이자 유일한 ADC 항암제로, 올해 초 국내에도 출시됐다.
올해 3월 화이자는 ADC 분야 선도기업으로 꼽히는 시젠(Seagen)을 인수 합병했다. 인수 금액은 430억달러, 한국 돈으로 55조원 규모에 달했다. / 로이터
올해 3월 화이자는 ADC 분야에서 기술이 앞서 있는 시젠을 430억달러(약 55조원)에 인수했다. 시젠은 현재 FDA의 승인을 획득한 12종의 ADC 의약품 중 애드세트리스(Adcertis), 파드세브(Padcev), 티브닥(Tivdak), 투키사(Tukysa)를 개발한 회사다.
스위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론자는 올해 6월 네덜란드 ADC 개발사 시나픽스를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포함해 총 1억6000만유로(약 2240억원) 규모로 인수했다. ADC 생산 시설을 구축해 ADC 고객사와 함께 CDMO 사업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밀고 있다는 평가다. 론자는 세계 상위 20대 제약사를 모두 고객사로 두고 있다.
◇ “경쟁 뒤쳐질라” 국내 기업들도 ADC 투자 확대
국내에서도 제약바이오기업들을 중심으로 ADC 투자 흐름을 빠르게 쫓고 있다. 최근 IB업계에 따르면 동아에스티는 최근 국내 ADC 개발 회사인 ‘앱티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유명 바이오 기업과 인수 경쟁을 벌였고 현재 동아에스티와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이와 관련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면 언급을 피했다.
종근당은 올해 네덜란드 바이오기술 기업 ‘시나픽스’와 1650억여원대 ADC 플랫폼 도입 계약을 맺었다. 종근당은 이번 계약을 통해 시나픽스의 ADC 플랫폼 기술 3종의 권리를 확보했다.
셀트리온은 ADC를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선정하고 투자와 협업을 진행 중이다. 올해 미래에셋그룹과 함께 영국 ADC 개발기업 ‘익수다테라퓨틱스’에 530억여원을 투자해 47.05%의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 주주 자리를 확보했다. 셀트리온은 앞서 국내 ADC 기업인 피노바이오와 ADC 플랫폼 기술 도입 계약을 맺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물산은 함께 조성한 ‘삼성라이프사이언스펀드’를 통해 스위스 ADC 개발 기업 ‘아라리스’와 국내 바이오 기업 ‘에임드바이오’에 투자했다. 각각의 투자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내년 중 설립할 ADC 전용 생산시설에 최신 치료 접근법(모달리티)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세계 트렌드에 맞춰 ADC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도 2025년부터 ADC 생산을 하기 위해 1000억원 규모의 공장 증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국내 바이오 벤처 카나프테라퓨틱스와 ADC 기술 플랫폼 구축을 위한 위탁 연구·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앞서 국내 바이오기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제약사 암젠과 1조6000억원 규모의 ADC 플랫폼 기술 이전 계약을 맺어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 Drug Conjugate·ADC) 약물의 구조와 특성. /네이처
◇ 약물을 유도탄처럼 전달하는 ADC “내년에도 뜬다”
ADC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기술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추세에는 ADC 기술이 창출할 부가 가치가 크다는 시각이 깔려있다.
ADC 기술은 1세대에서 3세대까지 발전했다. 1세대 ADC기술은 항체에 약물을 무작위로 결합시켰다면, 3세대 ADC 기술은 항체 유전자 변형 없이 특정 부위에 약물을 부착한다. 즉, 항체가 특정 세포를 표적 삼아 마치 유도미사일처럼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항체의 암 항원 인식능력을 활용해 암 조직에 선택적으로 약물을 전달하기 때문에 최소 투여량으로도 최대 항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즉, 정상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며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존 3세대 면역항암제와 ADC 병용요법 개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안국약품 중앙연구소 신약개발팀 파트장을 지낸 엄민용 현대차증권 연구위원은 “머크 키트루다, BMS 옵디보, 로슈 티쎈트릭, AZ 임핀지와 같은 면역항암제와 단일항체, 이중항체, ADC 병용요법 개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엄 연구위원은 “올해 가장 뜨거웠던 제약·바이오 항암제 시장의 주제가 바로 ADC이고, 2024년은 ADC가 가장 주목받을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조사분석기관 이밸류에이트파마는 글로벌 ADC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19년 27억달러(약 3조원) 규모에서 2026년 248억달러(약 32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