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고용·男육아휴직 늘리면 출산율 1명대
"도시인구집중도 낮추고 주거 안정시켜야"
2021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고령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2050년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올해는 더 하락할 것이 확실시되는데, 이 속도라면 2070년께 총인구가 4000만명을 밑돌 것이란 전망이다. 외신도 한국의 가파른 저출산 속도에 주목하면서 이 같은 인구 급감은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유럽의 상황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한국은행은 3일 경제전망보고서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 원인·영향·대책' 연구를 통해 "저출산·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성장·분배 양면에서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이 저출산·고령화에 정책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2050년대 0% 이하 성장세일 확률이 68%, 2070년 인구수가 4000만명 이하일 확률이 90%에 달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가파른 저출산 속도에 외신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는 2일(현지시간) '한국은 사라지고 있나'라는 칼럼을 통해 저출산으로 인해 북한이 남침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놨다. 그는 "불가피한 노인 세대의 방치, 거대한 유령도시와 황폐화된 고층빌딩, 고령층 부양 부담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의 해외 이민이 나타날 것"이라며 "한국이 저출산으로 인해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합계출산율 1.8명인 북한이 어느 시점에선가 남침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구조 고령화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저출산이 70%, 기대수명 연장이 30%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중은 지난해 기준 전체 인구의 17.5%이며, 2025년에는 20.3%로 고령인구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8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약 7년만으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유엔(UN) 인구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인구비중은 2046년부터 일본을 넘어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 되며, 2062년에는 홍콩을 제치고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청년층, 높은 '경쟁압력'·'불안'으로 출산 안 해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구조 고령화의 근본 원인인 초저출산의 원인을 다양한 층위별로 분석한 결과 초저출산은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연관됐다. 한은이 갤럽에 의뢰해 전국 25~3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그룹의 평균 희망자녀수는 0.73명으로 체감도가 낮은 그룹의 평균 희망자녀수 0.87명보다 0.14명이나 적었다. 또 실험을 통해 경제적 비용(주거비·교육비·의료비) 중 특히 어떤 요인이 저출산을 유발하는지 분석한 결과 '주택마련 비용에 대한 부담'이 결혼·출산 의향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낮은 고용률이다. 우리나라 15~29세 고용률은 지난해 46.6%로 OECD 평균 54.6%보다 크게 낮다. 고용의 질도 비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저하됐다. 청년층(15~29세)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지난해 41.4%로 9.6%포인트 증가했는데 국가별 비교가 가능한 임시직 근로자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27.3%로 OECD 34개국 중 네덜란드에 이어 2번째로 높았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004년 1.5배 수준에서 2023년 1.9배로 확대됐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수도권집중 저출산 심화
아울러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주택가격(전세가격)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모습이 뚜렷했다. 시도별 합계출산율을 보면 지난해 기준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은 1.12명인 반면 가장 낮은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불과해 시도별 편차가 컸다. 한은 경제연구원 황인도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을 낮추고 고용불안을 덜어줘야 한다"면서 "주택가격을 안정시켜 주거불안을 낮추고 수도권 집중 완화, 입시 위주 교육을 지양해 경쟁압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정책·제도 여건과 경제·사회·문화 여건이 개선된다면 출산율이 1%대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정책 시나리오 분석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우선 한국의 청년층 고용률(15~39세, 58%)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66.6%)으로 증가하면 출산율이 0.12명 올라간다. 특히 10.3주에 불과한 한국의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이 OECD 평균 수준인 61.4주로 증가할 경우 출산율이 0.1명 높아져 합계출산율이 1%대로 반등할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4%에 불과한 한국의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인 2.2%로 높인다면 출산율이 0.06명, 한국의 실질주택가격지수(104)가 2015년 수준(100)으로 하락하면 출산율은 0.002명 더 올라간다. 여기에 단기간에 변화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의 도시인구집중(431.9)이 OECD 평균 수준(95.3)으로 하락하고, 혼외출산비중(2.3%)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43%)으로 상승하면 출산율이 각각 0.41명, 0.16명 올라간다. 앞서 언급한 여섯 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달성할 경우 출산율은 현재보다 0.85명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황 연구원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가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용 못 하는 문제'가 심각한데 남성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고 직장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며 "고용, 주거, 양육 여건 개선 등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출산율을 약 0.2명만큼 끌어올릴 경우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평균 0.1%포인트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