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연원호 대외경제硏 박사가 예측한 ‘트럼프노믹스 2.0′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내년 세계 전망을 분석한 특별호에서 ‘2024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라고 했다.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세계 경제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집권 2기가 현실화되면 지난 2017~2020년 트럼프 집권 1기 때 보여준 미국 중심주의, 보호무역 정책, 대중 관세 전쟁 등이 더 정교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경제 안보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경제안보팀장)를 지난 6일 만나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정책) 2.0′은 어떤 모습이 될지 가늠해 봤다. 마침 연 박사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고위직으로 활동했던 인사를 최근 만나 ‘트럼프노믹스 2.0′ 구상에 대해 들었다며, 그 내용도 인터뷰에서 살짝 소개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경제안보팀장)가 6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트럼프노믹스 2.0의 전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한때 美정부 수입의 80%가 관세
◇ 트럼프노믹스 2.0은?
- 트럼프노믹스 2.0을 파악할 자료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우선 헤리티지재단이 낸 920쪽에 이르는 ‘맨데이트 포 리더십 2025(mandate for leadership 2025)’ 책자다. 트럼프 정부 관련 인사들이 참여해 보수주의 관점에서 각 부처가 할 일과 정책 제안을 정리했다. 트럼프 진영 싱크탱크인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가 낸 ‘패스웨이 투 2025(Pathway to 2025)’란 보고서도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가 직접 관여한 ‘어젠다 47′이란 웹사이트다. 여기엔 정책 과제마다 트럼프가 직접 출연한 영상이 붙어 있다. 이런 자료를 보면 트럼프 2기는 1기와 달리 굉장히 세밀하게 준비하는 걸 알 수 있다.”
- 트럼프 때 무역대표부(USTR) 대표 라이트하이저의 책도 화제다.
“라이트하이저가 출간한 ‘자유무역이란 없다(No Trade is Free)’에 대해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재집권했을 때 무역 정책을 알려면 이 책을 보라’고 했다. 라이트하이저는 ‘보수주의자라고 반드시 자유무역을 지지해야 한다고 연결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다. 보수주의는 가치를 보호하고 국민 삶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고 생산이 우선이다. 생산을 늘리기 위해 보호무역이나 보조금 활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트럼프 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출간한 '자유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의 표지. /브로드사이드북스
- 트럼프노믹스의 핵심은.
“세금 감면, 규제 철폐, 그리고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공정한 무역은 미국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다른 나라에서 볼 땐 보호무역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플로리다에서 선거운동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모든 나라에 10% 관세를 매긴다는 말도 나온다.
“‘어젠다 47′에서 ‘보편적 기본 관세(universal baseline tariff)’를 언급한다. 트럼프는 폭스 비즈니스에 나와 모든 수입에 자동적으로 10% 세금을 매기겠다고 한 적이 있다. 작년 미국의 단순 평균 관세율은 3.3%다. 주목할 점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느냐는 것이다. ‘어젠다 47′을 보면, 과거 연방정부 수입의 80%를 관세에서 얻었다고 한다. 저도 그 부분을 읽고 깜짝 놀라 자료를 찾아봤다. 19세기부터 2차 세계대전 전까지 그런 적이 실제 있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처럼 국민한테 세금을 걷어서 중국을 돕는 게 아니라, 중국이나 외국에서 세금을 걷어서 미국을 더 잘살게 하겠다’는 취지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 그 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만난 트럼프 때 NSC 고위 관계자는 첫째 우선순위는 대중 정책이라고 했다. 중국에 최혜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다음은 남쪽 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일 등 이민 정책이라고 했다. 미국에 도움 될 만한 이민만 받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무역 체제를 바꾸겠다고도 했다. WTO(세계무역기구)에서 탈퇴하겠다고까지 했다. 바이든이 추진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정책은 거의 축소해 철폐하고, 자동차 산업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린 뉴딜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세계무역기구 탈퇴까지 거론
◇ 트럼프 1기와 차이
- 트럼프노믹스 2.0은 1.0과 어떻게 다른가.
“큰 기조는 같고, 강도와 준비에서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된다. 1기 집권 땐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젠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굉장히 잘 준비한 내용과 인력으로 강력하게 정책을 펼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2025′란 웹사이트에서 트럼프 철학에 맞는 사람들을 모집해 인력 풀도 만들고 있다.”
- 미 공화당 전통 정책은 자유무역인데, 트럼프는 아니다.
“지금 공화당엔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수주의 그룹이 있고, 보조금과 보호무역을 활용하자는 트럼프 그룹이 있다. 트럼프 그룹은 보조금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반도체법’ 같은 걸 여러 가지 만들 수 있다고도 하고 있다.”
- 트럼프노믹스 2.0이 한국에 미칠 영향은.
“우선 트럼프노믹스 1.0은 한국에 크게 세 가지 이슈를 만들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철강 관세 부과, 그리고 주한 미군 전면 철수 검토와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이다. 트럼프노믹스 2.0에서 우선 한미 FTA를 보면 이는 트럼프 때 개정한 것이고 트럼프도 자기 업적으로 계속 선전하고 있다. 그래서 한미 FTA는 더는 안 건드릴 것 같다.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해도, 무관세인 한미 FTA는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철강 관세는 미국의 국가 안보 차원에서 매긴 것이다. 그래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서 생산하는 제품이나 한국과 경쟁하는 제품엔 별도로 관세를 매길 우려가 있다. 주한 미군 철수와 방위비 분담금 이슈도 반드시 다시 제기할 것이다.”
◇ 바이든과 트럼프의 경제정책
-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을 계승했나, 안 했나.
“크게 보면 트럼프 정책이 바이든 때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중 정책을 예를 든다면, 트럼프는 일방적 대중 견제를 했다면 바이든은 동맹국 연대를 활용해 대중 견제를 했다. 무역 정책도 트럼프 때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동맹국까지 추가 관세 부과 등을 했는데, 바이든에 와서도 실제 TPP가 다시 돌아간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유무역협정에 나설 의사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내세웠던 미국 우선주의도 이어지고 있다.”
中, ‘딜’ 가능한 트럼프 당선 환영
- 대중 ‘디리스킹’ 정책은 어떻게 될까.
“지난 4월 바이든 정부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식적으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을 언급하기 전까지 미국은 한 번도 ‘디커플링(decoupling·분리)’이란 단어를 백서나 주요 연설에서 사용한 적이 없다. 제가 보기엔 트럼프가 시작한 중국에 대한 ‘디커플링’ 정책을 바이든에 와서 ‘디리스킹’으로 묘사한 것에 불과해 보인다. 설리번은 디리스킹을 ‘좁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with high fence)’이라 표현한다. 달리 말하면 선택한 영역만 디커플링하는 ‘선택적 디커플링’이 미국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설리번은 ‘컴퓨팅, 바이오, 클린 테크란 세 분야에서 중국과 기술 격차를 최대한 벌리는 게 미국의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좁은 마당이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어젠다 47′을 보면, 의약품에서부터 철강, 전자제품까지 모든 핵심 품목에 대해선 중국과 완전히 디커플링하겠다고 하고 있다.”
- 중국은 트럼프노믹스에 어떤 입장일까.
“여러 경로로 들어 보니, 두 가지 이유로 중국은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말이 나온다. 첫째, 트럼프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딜(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일 자체가 미국에는 손실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우리로선 첫째 이유가 의미 있어 보인다.”
-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국내에서 미리 논의를 많이 해야 한다. 트럼프 진영이 과거와 달리 준비를 많이 하기 때문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건 트럼프 진영도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제가 만난 트럼프 때 NSC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 조언하자면, 어떻게 협상할지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는 트럼프노믹스 2.0이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비해서 "어떻게 협상할지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트럼프노믹스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가리킨다. 트럼프노믹스는 감세, 규제 완화, 보호무역 등을 정책 기조로 삼는다. 대통령 등 정치인 이름에 경제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이코노믹스(economics)’의 어미인 ‘노믹스’를 결합해서 그들의 경제 정책을 뜻하는 말로 쓴다.
☞연원호 박사는
연세대 출신으로 UC샌디에이고에서 국제관계학 석사를 하고, 스토니브룩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으로 작년 4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에 경제안보 담당으로 참여했다.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북미국 및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