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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슈퍼컴퓨터는 주판 수준…양자컴퓨터가 펼칠 미래 [책&생각] (0) 2023/12/26 PM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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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아이비엠(IBM)이 공개한 양자 컴퓨터. 거대한 샹들리에처럼 보이는 하드웨어의 대부분은 중심부를 절대 온도 0도(0K) 근처까지 냉각시키는 파이프와 펌프이며, 연산을 수행하는 핵심 부분은 아래쪽 4분의 1에 집중돼 있다. IBM 누리집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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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의 미래

양자컴퓨터 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미치오 카쿠 지음, 박병철 옮김 l 김영사 l 2만4800



2019년 구글이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리는 연산을 단 200초 만에 해내는 53큐비트(qubit·양자컴퓨터 연산 단위) 성능의 시카모어 프로세서를 선보였다. 이듬해 중국 과학아카데미 양자혁신연구소는 자신들이 만든 양자컴퓨터가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보다 100조배 이상 빠르다고 주장했다. ‘0’ 또는 ‘1’(각각 1비트)의 이진법으로 계산하는 기존 디지털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로운 컴퓨터 혁명이 눈앞에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카쿠가 쓴 ‘양자컴퓨터의 미래’는 양자의 특이한 성질을 활용한 양자컴퓨터의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원제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다. 카쿠는 이론물리학의 세계적 석학으로, ‘평행우주’ 가설로 유명하다. 책은 양자컴퓨터의 원리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 양자컴퓨터의 역사와 종류, 개발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그리고 반도체와 디지털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양자컴퓨터가 바꿔놓을 환상적인 미래 이야기로 짜였다. 양자이론은 상대성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이상으로 물리학계의 기존 패러다임을 뒤집은 혁명이다. 양자컴퓨터를 이해하려면 먼저 양자역학의 대강을 알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끝내 인정하기를 거부했을 만큼 ‘황당’해 보이는 양자의 세계를 지은이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1921년 아인슈타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 것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광전효과였다. 금속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와 전류가 흐르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공로였다. 앞서 1887년 하인리히 헤르츠가 발견한 광전효과가 빛의 세기(진폭)와는 비례적 상관성이 없었는데, 이는 기존의 뉴턴 물리학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적용해, 빛의 파장이 아닌 빛 알갱이(광자·포톤)가 작은 덩어리(양자) 단위로 금속 표면에 충돌해 전자를 원자의 속박에서 탈출시킨다고 설명했다. 빛이 전자기파의 ‘파동’일뿐 아니라 ‘입자’의 특성도 동시에 갖는다는 사실은 물리학계에 폭탄 같은 파격이었다. 양자(量子)는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라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로, 연속값이 아닌 정수배로 나타난다. 플랑크는 우리가 일상의 경험 세계에선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양자의 크기를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플랑크 상수(h)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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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양자컴퓨터 회사 디웨이브(D-Wave) 시스템이 만든 양자컴퓨터용 단열 웨이퍼. 위키미이어 코먼스



초미시 세계의 물리법칙을 다루는 양자역학은 물체 운동의 인과 관계가 명확한 뉴턴 고전역학의 결정론으로는 설명도 이해도 할 수 없는 기이한 특성이 많다.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고(중첩), 양자적으로 얽힌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 상호작용을 하며(얽힘), 입자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에는 두 지점을 연결하는 모든 경로를 동시에 지나가며(경로합), 입자가 에너지장벽을 아무런 손상도 내지 않고 통과(터널 효과)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양자 중첩을 우주에 적용한 것이 평행우주론이다. 특히 양자 세계에선 입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확률적으로 존재하다가 외부에 관측되는 순간 ‘파동함수 붕괴’로 입자의 위치가 특정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너무나 기이해서,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개탄하고 양자 파동방정식을 만든 슈뢰딩거조차 밀폐된 상자 속 고양이의 생사 여부(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유로 조롱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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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컴퓨터는 양자의 중첩·얽힘·경로합 특성을 활용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연산 능력을 과시한다. 디지털 컴퓨터는 1비트에 ‘0’ 또는 ‘1’이라는 한 개의 정보만 저장하지만, 양자컴퓨터는 ‘0’부터 ‘1’의 중간상태인 큐비트(양자비트)에 무수히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빛의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기존의 슈퍼컴퓨터조차 양자컴퓨터에 비하면 ‘주판’ 수준이라는 비유가 나온 이유다. 양자컴퓨터는 도무지 황당해 보이는 양자 특성을 활용해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하다가, “누군가 관측하는 순간 파동함수가 마술처럼 붕괴되면서 단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는 것처럼 숫자로 된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문제는 양자역학이 작동하는 초미시세계가 너무나 예민해서, 외부의 불순물이나 교란이 조금이라도 개입되는 즉시 원자 배열의 ‘결맞음’ 상태가 깨져버린다는 사실이다. 외부의 방해 요인을 최소화하려면 양자컴퓨터의 내부를 절대온도(영하 273°C)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현재로선 그 비용이 너무 비싼 게 장애물이다. 과학자들이 다양한 방식의 양자컴퓨터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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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 물리학계 학술 회의인 제5회 솔베이 물리학회 참석자들의 기념 사진. 막스 보른(가운데줄 오른쪽 두번째)은 ‘물질 입자가 발견될 확률이 파동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해 파장을 낳았다. 막스 플랑크(앞줄 왼쪽 두번째), 아인슈타인(앞줄 가운데), 드브로이(가운뎃줄 오른쪽 세번째) 등 ‘늙은’ 물리학자들이 그 해석을 부정한 반면, 닐스 보어(가운데줄 맨 오른쪽)와 하이젠베르크(뒷줄 오른쪽 세번째) 등은 보른의 해석을 지지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가 양자컴퓨터의 엄청난 계산 능력이 바꿀 수 있는 미래 세계를 보여주는 것도 흥미롭다.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가 가능한 탁월한 검색 능력은 기본이다. 수많은 변수를 조합해 특정 요소를 최대화 또는 최소화하는 최적화 기술은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정부의 정책 결정을 뒷받침하며 금융시장의 미래를 시간 단위로까지 예측할 수 있다. 디지털 컴퓨터의 한계를 넘어선 복잡한 방정식도 거침없이 풀어내는 연산 능력을 기상학에 적용하면 초대형 태풍의 경로와 성쇠를 훨씬 정확히 예측하고 기후변화가 인류에 미칠 영향까지 내다볼 수 있다.


수많은 화학반응을 화학물질 없이 컴퓨터만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전산화학이 본궤도에 오르면 세포 단위의 변화와 상호작용을 안전하고 손쉽게 파악해 난·불치병의 근원을 밝혀내고 신약 개발의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변종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백신과 항생제의 효능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식물이 햇빛과 이산화탄소를 생명 에너지인 산소와 포도당으로 만드는 광합성의 양자적 과정을 인간이 재현하는 인공 광합성은 지구 녹화와 미래의 식량 문제에 혁신적인 해법일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또 리튬 이론 배터리 내부의 복잡한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해 전기 에너지 저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슈퍼 배터리를 개발하고, 나아가 태양 에너지를 비롯한 청정 에너지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 이 밖에도 지은이가 제시하는 양자컴퓨터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지은이가 직관적 비유와 친절한 설명으로 서술했어도 양자역학은 양자역학이다. 번역의 정확성과 친절함이 중요한 이유다. 옮긴이 박병철은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미치오 카쿠의 저서 대부분을 비롯해 100권이 넘는 과학책을 번역했다. 이 책은 매끄러운 번역뿐 아니라 독자가 갸우뚱할 법한 용어나 서술에 적절하게 ‘옮긴이 주’를 붙여 양자컴퓨터, 나아가 최신 이론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옮긴이의 글의 한 대목은 이렇다. “물론 양자컴퓨터는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디지털 컴퓨터로 할 수 없는 일은 양자컴퓨터로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디지털 컴퓨터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현실적인 시간 안에’ 해결할 수만 있어도 세상은 몰라보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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