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혈관연구단
림프관 퇴화로 뇌척수액 배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알츠하이머 등 신경퇴행성 뇌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한 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이 이번에는 뇌척수액을 조절할 수 있는 경로를 발견, '뇌척수액 배출 경로 지도'을 완성했다.
고규영 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가 이끄는 IBS 혈관연구단은 비인두 점막에 넓게 분포된 림프관망이 뇌척수액의 주요 배출 통로이며 림프관망과 연결된 목 림프관을 수축·이완해 뇌척수액 배출 양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11일 온라인 게재됐다.
뇌에서는 대사활동의 부산물로 생성된 노폐물이 뇌척수액을 통해 중추신경계 밖으로 배출된다. 만약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고 축적되면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뇌의 인지기능 저하, 알츠하이머 등 신경퇴행성 뇌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뇌척수액을 통한 노폐물 배출 기능은 노화에 따라 현저히 감소한다. 앞서 2019년 연구팀은 뇌 후방부위 뇌척수액이 뇌 하부 뇌막 림프관을 통해 목 부위 안쪽 림프절로 배출되고 노화에 따라 림프관이 퇴화하면서 뇌척수액 배출 기능이 저하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뇌의 앞쪽과 중간 부위의 뇌척수액 배출 경로가 밝혀졌다. 특히 코 뒤쪽 부위인 비인두(목 안쪽) 점막 림프관망이 뇌척수액이 모이는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며 림프관망과 목 림프관, 목 림프절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배출됨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생쥐의 척수액에 형광물질을 소량 주입했다. 형광물질을 주입한 1시간 뒤 생쥐의 두뇌를 과찰한 결과 뇌척수액은 목 안쪽 점막 내에 있는 정교한 림프관망으로 모였다. 이 림프관망의 존재는 이전까지 알려진 바 없다. 말 안장을 뒤집어놓은 모양인 비인두 림프관망에 모였던 뇌척수액은 연결된 목 림프관을 경유해 목 림프절로 배출됐다.
이처럼 비인두 림프관망으로 배출된 뇌척수액의 양은 두개골 후측방 뇌막림프관을 통해 배출되는 양보다 1.8배 많았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비인두 림프관망이 뇌척수액 배출의 주요 경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인두 림프관망은 노화와 함께 위축되고 퇴화됐다. 림프 판막 수가 감소하고 림프관의 외피세포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비인두 림프관망이 수행해오던 뇌척수액 배출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비인두 림프관망과 연결된 목 림프관은 노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 목 림프관을 둘러싼 근육세포인 평활근세포가 노화에도 유지되는 것을 확인한 연구팀은 평활근세포를 인위적으로 수축·이완해 뇌척수액 배출량을 조절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목 림프관에 약물을 주입해 림프관의 직경 변화와 이에 따른 림프관 내 뇌척수액 농도를 관찰한 결과 근육이 수축·이완을 반복하며 '펌프질'할수록 목 림프절로 배출되는 뇌척수액 배출량이 올라갔다. 연구팀은 이같은 결과에 대해 "두개골 바깥에서도 기계 자극 등을 통해 뇌척수액의 배출을 조정할 수 있는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팀은 이번 실험 결과를 영장류에 적용해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나는지 확인 중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영장류 3마리 대상 실험 결과 이번 발견과 유사한 림프관막과 판막이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을 때까지 실험을 지속할 예정이다.
고규영 IBS 혈관연구단 단장은 "뇌 속 노폐물을 청소하는 비인두 림프관망의 기능과 역할을 규명한 것은 물론, 뇌척수액의 배출을 뇌 외부에서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며 "향후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뇌척수액 배출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비인두 림프관망. a) 뇌척수액을 붉은 형광 표지자로 염색한 뒤 뇌척수액 배출의 흐름을 관찰한 모습. b-e) 비인두 림프관망 안의 림프관에 뇌척수액이 다량 검출됨./기초과학연구원(I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