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지는 ‘아메리카 반도체 원팀’
인텔 행사에 나델라,올트먼,러몬도 총출동
반도체 업계, ‘실현 가능한 야망인지는 물음표’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차세대 파운드리 로드맵을 소개하고 있다./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무어의 법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텔의 ‘IFS 다이렉트 커넥트’에 나타난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서구(western)의 제조업을 재건하고, 인공지능(AI) 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경쟁에서 앞서가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무어의 법칙은 고든 무어 인텔 창립자가 내세운 이론으로, 반도체 공정이 점차 미세화되며 반도체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하지만 이 법칙은 오늘날 반도체 제조 공정이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초미세 공정까지 발전하며 더 이상 공정을 미세화하기 어려운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이날 인텔은 글로벌 파운들 1,2위 기업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조차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1나노’대의 양산 계획을 공개하며 무어의 법칙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27년 1.4나노 양산…마이크로소프트 고객사로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행사에서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차세대 파운드리 로드맵을 소개하고 있다./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이날 겔싱어는 “2027년 14A(옹스트롬, 1A는 0.1나노) 공정을 양산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업계 2위 파운드리가 되겠다”고 밝혔다. 인텔이 올해 말 양산 예정인 18A 공정 이후의 차세대 공정 로드맵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TSMC와 삼성전자 역시 2027년에 1.4나노대 초미세 공정을 도입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인텔의 계획이 성공할 경우, 미래 파운드리 산업 지형은 TSMC와 삼성의 양강 체제에서 인텔을 포함한 삼국지로 고착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텔은 오리건주 생산라인에 ASML의 ‘하이 극자외선(EUV)’ 장비를 업계 최초로 도입해 14A 공정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14A 공정에는 미세화에 따른 반도체 성능 저하를 극복하고,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이는 차세대 리본펫(RibbonFet) 기술을 적용한다. 이는 삼성전자가 3나노 이하 공정에 사용하고 있는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공정의 일종이다. 인텔은 이어 “특히 후공정에서 장기간의 서버 제조 경험이 있는 인텔은 장점을 갖추고 있다”며 “14A에는 3D 첨단 패키징 기술을 적용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행사에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인텔 18A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이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였다. 나델라는 사전 녹화된 영상을 통해 “MS는 미국에서 강력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인텔의 노력을 적극 돕겠다”며 “MS는 인텔의 18A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델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반도체를 인텔에 맡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첨단 AI반도체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MS가 AI분야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만큼, 인텔이 TSMC·삼성을 앞지르는 대형 고객을 잡은 것이다. 겔싱어는 이날 “18A 공정에서 MS를 포함해 유의미한 고객사 4곳을 확보했고, 올해 제조를 시작해 내년에 본격적으로 제품을 출시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2025년에는 업계 리더십을 되찾겠다”고 했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행사에 나타난 르네 하스 ARM CEO(왼쪽)./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이날 행사 키노트에는 르네 하스 ARM CEO가 무대에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스튜어트 팬 인텔 부사장 및 파운드리 서비스 총괄은 “파운드리 사업을 하는데 ARM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ARM과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이유”라고 밝혔다. 양사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경쟁사로 여겨지고 있다. 하스 CEO는 “ARM과 인텔의 협력은 마치 애플 아이튠스를 윈도우에서 굴리는 것과 비슷하다”며 “맞춤형 반도체를 설계하는 ‘ARM 토탈 디자인’에 인텔이 파트너사로 들어온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반도체 굴기…'아메리카 원팀’ 만드나
겔싱어는 “현재 전세계 반도체 생산의 80%가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은 그 어떤 지역, 국가, 항구에만 의존해선 안된다”며 “10년 안에 반도체 생산 비율을 서구와 아시아가 각각 50%씩 가져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른바 ‘넥스트 50′이라고 불리는 인텔의 밑그림인 것이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의 IFS 행사에 화상으로 참여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이날 현장에서는 이 같은 ‘미국 제조 부흥’에 대한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키노트에 화상으로 참여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오늘날의 반도체 제조 경쟁은 과거 우주경쟁에서나 볼법한 열기를 갖추고 있다”며 “특히 AI 시대에 있어서 ‘실리콘을 실리콘밸리로 돌려주는’작업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겔싱어가 이미 527억 달러가 배정돼 있는 반도체 보조금법의 후속 지원법이 없는지 묻자, 그는 “미국 제조를 안정화하기 위해선 물론 지원이 끊이지 않게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러몬도 장관은 구체적으로 인텔에 반도체 지원금을 얼마나 지급할지 밝히지 않았으나, “곧 큰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인텔에 100억 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지원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날 현지 시각 오후 4시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MS에 이어 AI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오픈AI도 인텔에 반도체를 맡기겠다는 발표를 할 가능성이 크다”며 “‘아메리카 원팀’이 조성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2위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한 목표일까
다만 업계에선 인텔의 원대한 야망에 여전히 의문점이 많다는 반응이다. 인텔은 아직 초미세 공정에 도입되는 극자외선(EUV) 장비로 실제 양산에 나서본 적이 없다. 실제 양산이 가능하다 해도 수율이 과연 제대로 나올지도 의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인텔은 자사 반도체 이외의 외부 반도체를 실제로 생산해본 경험도 아직은 없다. 고객 서비스는 TSMC가 파운드리 산업의 강자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의 기밀 유지부터 강력한 고객 유치팀, 맞춤형 설계, 풍부한 IP제공, 사후관리 등 원스톱 서비스를 인텔이 빠르게 따라잡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