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개봉한 영화 ‘백투더퓨처2’. 미래인 2015년으로 간 주인공이 가장 먼저 본 건 질서정연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였습니다. 그리고 영화 속 미래보다도 9년이 지난 지금. 흔히 ‘드론 택시’ 또는 ‘플라잉카’로 불리는 eVTOL(전기수직이착륙기)의 상업용 비행이 이제 머지않았는데요.
이러한 미래 항공 모빌리티의 선두주자 중 하나가 이항 인텔리전트(亿航·EHang)라는 중국 기업입니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여럿 따내며 이 분야에서 ‘중국식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데요. 한국에선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가 투자한 회사로 유명하죠. 논란도 많은 이항을 중심으로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산업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이항의 수직이착륙기 대표 기종인 EH 216 이미지. 이항 홈페이지
드론택시 팝니다. 단돈 4.4억원!
하늘을 나는 자동차, 이제 누구나 살 수 있습니다. 중국 기업 이항이 18일 중국의 대표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에서 2인용 드론택시 ‘EH216-S’ 판매를 시작했거든요. 판매가격은 239만 위안(약 4억4000만원). 무료 배송해주고, 7일 안에 반품이 가능합니다.
그냥 ‘쇼’ 아니냐고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EH216-S는 지난해 10월 중국민용항공총국(CAAC)이 발행한 표준 감항인증서를 획득한 모델입니다. 실제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거죠. 드론택시로 불리는 eVTOL(전기수직이착륙기)를 만드는 전 세계 수백개 기업 중 감항인증서를 획득한 건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참고로 EH216-S는 조종사 없이 자율비행하는 무인기입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EH216-S를 239만 위안에 판매 중이다. X 화면 캡처
모든 항공기는 안전성과 성능을 검증하는 감항인증을 받아야만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사람을 태우는 유인기 성능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 인증 기준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죠. 사실 eVTOL이 상업용 운항을 위한 감항인증을 받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히 인증 기준을 맞추냐, 못 맞추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예 마땅한 기준이 없다는 게 큰 문제이죠. 전기로 충전하고,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2~6인승짜리 작은 항공기는 너무나 새롭고 낯선 신문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eVTOL 대표 기업인 조비(Joby)에비에이션 사례와 비교해볼까요. 조비는 이미 군사용 감항인증을 받아 미국 공군에는 지난해부터 항공기 납품을 시작했죠. 하지만 상업용 서비스는 아직입니다. 아직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감항인증 절차 5단계 중 3단계까지만 마친 상태라는데요. FAA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초의 eVTOL 상업 운항이 2025년에나 가능할 거라고 전망한 적 있습니다. 즉, 내년에나 인증을 내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중국은 절차 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 산업을 키우기 위해 그만큼 팍팍 밀어주고 있다는 뜻이죠. 이항의 허톈싱 부사장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3년 동안 중국민간항공국과 함께 감항성 표준을 완료했다”고 설명하는데요. 비유하자면 자기네가 시험 문제를 출제(표준 구축)한 뒤, 대학 입학시험을 봐서 합격한 셈입니다.
이항 창업자인 후화즈 CEO는 이러한 속도전 덕분에 “미국에 비해 선점자로서 이점을 얻게 됐다”고 말합니다. 일단 중국에서 상업용 운항으로 실적과 수익을 올리면, 이를 기반으로 다른 국가에서도 인증받기 수월해질 수 있어서죠. 이건 과거 중국이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썼던 전략과 비슷해 보입니다. 좀 설익은 기술이라도 일단 빨리 시장에 내놓고 보조금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수요를 창출해내는 거죠. 그러면 기업은 그 돈으로 기술개발에 더 투자할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나갈 수 있고요.
일찍 뜨긴 뜰 텐데
이항은 엔지니어 후화즈가 2014년에 설립한 기업입니다. 항공 매니아인 후화즈는 ‘조종사가 필요 없는 유인항공기’를 목표로 삼고 이 산업에 뛰어들었는데요. 201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첫 eVTOL ‘EH184’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과거 이 회사의 매출 대부분은 항공미디어 사업(드론쇼)에서 나왔습니다. 사실 UAM(도심항공교통)용 항공기는 언제 시장이 열릴지 모르는 돈 먹는 하마였는데요. 최근엔 얘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지난주 이항이 지난해 실적을 공개했는데요. 매출(1억1700만 위안, 약 1550억원)이 전년보다 165% 증가했는데, 2인용 항공기 EH216 시리즈 판매량이 전년도 21대에서 52대로 늘어난 덕분이었습니다. 이항에 따르면 EH216-S가 중국민용항공총국의 인증을 받은 뒤 수요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죠.
이항은 지난해 4분기에 매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4분기에 인도한 항공기는 23대, 연간으로는 52대였다. 이항 4분기 실적발표 자료
이제 이항은 ‘세계 최초 감항인증 eVTOL’이란 타이틀을 내세우며 올해 중 가장 먼저 일반인 대상 서비스에 나설 기세입니다. 이를 위해 중국 지방자치단체와 잇따라 판매 계약을 맺고 있죠. 아직 중국민용항공총국의 감항인증을 받지 못한 중국 내 다른 경쟁사(자동차업체 샤오펑의 ‘샤오펑후이톈’과 지리차의 ‘웨페이창콩’)보다는 한발짝 앞서 나가고 있는데요.
그런데 궁금합니다. 과연 일찍 날면 멀리 날 수 있을까요. 후화즈 CEO는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가까운 미래에 “EH216-S이 도시 위의 항공택시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데요. 이항에 투자한 이수만 전 SM엔터 총괄 프로듀서의 안목이 맞아떨어진 걸까요.
정말 도심을 날 수 있을까
물론 UAM(도심항공교통) 시장은 아직 열리지도 않은 초기 시장이라 섣불리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현재까지만 봐서는 이항의 원대한 이상이 실현될지엔 많은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유명 공매도 업체 힌덴버그 리서치(수소전기트럭 스타트업 니콜라 저격으로 유명)가 이항 주식을 매도하라는 보고서를 냈죠. 그중 눈에 띄는 내용이 있는데요.
후화즈 창업자는 이항의 사업모델을 ‘테슬라와 우버의 혼합’으로 설명해왔습니다. ‘자율 항공 택시’ 사업을 하겠다는 비전이죠. 그래서 지난해 10월 이항이 중국민용항공총국의 인증서를 최초로 받았다고 발표했을 때, 다들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 도심에서 교통체증 없이 하늘을 날아 출퇴근한다는 꿈이 현실이 되는구나’라고요.
지난해 12월 EH216-S의 광저우시 상업 비행 시연 모습. EH216-S 중국민용항공총국의 감항인증을 받았지만, 비행 제한 조건이 많다. 이항 홈페이지
그런데 힌덴버그 리서치 확인 결과, 이는 실제와 차이가 큽니다. 인증에 수많은 비행 제한 사항이 따라붙었기 때문인데요. 야간, 악천후, 물 위, 인구밀집 지역, 다른 항공기와 동일한 공역 등에선 비행할 수 없다는 조건입니다. 결국 인구가 많은 도시가 아닌 농촌 지역에서 관광용으로만 띄울 수 있다는 뜻이죠.
이에 대해 이항 측은 “안전을 위해 초기 단계에선 작동이 제한된다. 앞으로 이러한 제한을 점차적으로 해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힌덴버그가 밝힌 내용을 사실상 인정한 거죠. 아울러 초기엔 후난성의 아이자이 현수교 같은 유명 관광지가 운항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죠.
우리가 꿈꾸는 ‘드론 택시’보다는 경비행기 투어에 가까운 건데요. 인증에 제한 조건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를 투자자들에게 처음부터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이겠죠. 명색이 나스닥 상장사인데 말이죠.
아울러 힌덴버그 리서치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이항이 도시 지역에서 여객운송 사업을 하려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 항공기를 재설계해야 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전합니다. 최대 비행시간 30분, 비행범위 30㎞의 2인승 항공기인 EH216-S는 스펙 면에서 다른 회사 경쟁모델보다 많이 뒤지는 게 사실인데요. 현금 보유액이나 연구개발 투자금액이 훨씬 큰 국내외 경쟁사(미국 조비, 독일 볼로콥터, 중국 샤오펑후이톈 등)를 앞서나갈 수 있을까요. 물론 후화즈 CEO는 “앞으로 상업 운영을 꾸준히 확장하면 현금흐름이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요.
미국 조비에비에이션의 eVTOL. 이항의 경쟁사는 몇배의 자금을 가진 미국과 유럽의 스타트업, 또는 중국 자동차 기업 자회사들이다. 조비 홈페이지
그래서 결론은? eVTOL, 즉 하늘을 나는 전기자동차는 조만간 현실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초기 단계의 맨 앞줄엔 중국기업, 특히 이항이 서게 될 확률이 현재로선 높아 보이죠.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수준의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충전시설과 소음 문제, 배터리 화재 가능성 등 고려할 점이 많고요. 무엇보다 ‘정말 그 수요가 있는가(또는 비용이 얼마나 드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하죠.
미국 연방항공청은 2028년이면 대규모로 드론택시가 운행하게 될 거라고 내다봅니다. 1차원(선)이던 도심 교통이 3차원(입체)으로 바뀔 걸 상상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는데요. 하지만 아직은 그 승자를 가늠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점, 함께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이항 주가가 한달 새 71%나 뛴 걸 보면 서둘러 베팅하는 투자자들도 많은 듯하지만 말이죠. By.딥다이브
나스닥 상장사인 이항은 한때 한국 서학개미들 사이에서 유명했죠. 2021년 초 주가가 불과 서너달 만에 15배 가까이 뛰면서 시장을 흥분케 했던 적 있는데요. 하지만 당시 공매도 보고서를 얻어맞으면서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지금은 그때만큼의 주가 급등락은 아니지만, 여러 뉴스들로 다시 주목 받는 기업이라 한번 들여다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중국 eVTOL 제작사 이항이 드론택시를 온라인쇼핑몰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감항인증을 받은 eVTOL 임을 과시하기 위한 이벤트이죠.
-이항은 ‘중국식 속도전’으로 세계 최초 상업 비행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쟁쟁한 국내외 경쟁사보다 먼저 치고 나가고 있는 건 확실해보이죠.
-그런데 일찍 날면 멀리 날 수 있을까요. 이항이 받은 감항인증은 도시지역은 날 수 없는 제한이 있어 사실상 관광용이 될 거라는데요. 우리가 꿈꾸는 ‘도심항공모빌리티’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엔 역부족입니다. 누가 이 시장의 테슬라가 될지, 판단은 아직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