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Weekly Biz 밑줄 쫙]
미국 전력 회사 비스트라의 한 직원이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한 발전소 시설을 둘러보는 모습. 인공지능 발전과 함께 전기 사용이 늘면서 최근 전력 회사 관련주가 크게 상승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AI(인공지능)가 생활에 점점 깊이 파고들고 관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AI 반도체를 가장 잘 생산한다는 엔비디아 주식이 최근 많이 올랐다. 엔비디아의 높은 수익률이 요란하게 언론을 장식하는 사이 조용하게 주가가 더 많이 오른 AI 관련주들이 있다. ‘전기 먹는 하마’라는 AI의 ‘식량’인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전력 회사들이다. CNN은 지난 16일 “’매그니피선트7(애플·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표 기술 주 7개)’은 잊어라”라는 제목 아래, 전력 회사들의 주가가 AI의 확산과 맞물려 화끈하게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력 회사를 모은 ‘S&P500 유틸리티(utility·공공 서비스)’ 지수의 연초 이후 상승률(22일 기준)은 13%로 열한 개 업종 중 둘째로 높았다. 1위 업종은 14% 상승한 메타·넷플릭스 등 ‘통신 서비스’였고 3위는 애플·엔비디아 등 ‘테크’ 업종으로 수익률은 12%였다.
지루한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졌던 전력 산업은 어떻게 화려한 첨단 IT(정보기술) 기업들과 어깨를 맞대게 됐을까. 미국을 대표하는 전력 회사 중 하나인 비스트라(Vistra)가 지난 8일 공개한 1분기 실적 보고서 및 투자자 설명회 자료, 지난 2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연례 실적 보고서(10-K) 등을 분석해 AI 시대 전력산업의 강점과 위험을 분석했다. 연초 대비 비스트라 주가 상승률은 148%로 엔비디아(97%)를 뛰어넘는다. 비스트라 외에 대표적인 전력 회사로는 NRG에너지(연초 이후 상승률 58%), 컨스털레이션 에너지(91%) 등이 꼽힌다.
그래픽=김의균
◇3개월 만에 실적 전망치 20% 상향
비스트라가 지난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지난 8일, 이 회사 주가는 9% 급등했고 다음 날 4%가 추가로 올랐다. 81.7달러였던 주가가 이틀 사이 93.2달러로 크게 상승한 것이다. 영업이익이 30억5400만달러(약 4조1700억원)로 전년 동기(44억2500만달러) 대비 오히려 줄었지만 다른 변수들이 주가 상승의 동력이 됐다. 우선, 마침 이날 비스트라가 S&P500 지수에 편입됐다는 사실이 호재가 됐다. 이날 실적 설명회를 시작하며 짐 버크 최고경영자(CEO)는 “전력 부문의 시장 역동성 개선에 힘입은 결과”라고 S&P500 지수 편입의 의미를 자평했다.
시장 전문가들이 더 주목한 지표는 미래 전망이었다. 버크 CEO는 이날 발표 때 올해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 전망을 45억5000만~50억5000만달러로 제시했다. 2023년 연간 실적을 발표했던 지난 2월 제시한 전망치(37억~41억달러)를 20% 넘게 상향 조정한 것이다. 지난해 비스트라의 EBITDA가 41억4000만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실적이 최대 22% 개선될 것으로 회사가 전망한다는 뜻이다.
◇전기 ‘하마’가 될 데이터센터
비스트라의 낙관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이날 실적 발표와 함께 공개한 파워포인트 자료 7쪽에 요약되어 있다. ‘전력 시장의 새로운 수요 패러다임’이란 제목 아래 늘어나는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전력 수요를 계속 만들어낸다고 분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란 컴퓨터 서버와 저장 장치를 모아 놓은 시설을 뜻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AI 학습·실행에 필수라고 여겨진다. 비스트라가 실적 자료에 인용한 컨설팅사 맥킨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가 지난해 대비 2030년에 추가로 필요로 하는 전력은 35GW(기가와트)에 달한다. 2023년 미 전역의 데이터센터가 약 20GW의 전력을 소비했는데, 7년 후쯤 전체 소비량의 1.5배에 달하는 전력을 어디선가 새로 끌어와야 AI 산업의 발전 속도를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력 사용 증가가 AI 때문만은 아니다
비스트라의 1분기 실적 자료엔 데이터센터로 대표되는 AI 산업 외에도 전력 사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추가 요인이 명시돼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미 정부가 공을 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미국 기업의 귀환) 및 적극적인 반도체 공장 유치 정책이다. 버크 CEO는 설명회에서 “데이터센터 관련 활동에 더해 반도체과학법(CHIPS)으로 인한 대형 반도체 공장 구축, 산업 활동의 지속적인 리쇼어링 등이 전기 수요를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적 저렴한 전기료, 낮은 세율, 넓은 땅 등의 장점을 찾아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포함한 공장이 많이 세워지고 있는 텍사스주의 경우 일자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유입돼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도 전기 수요를 늘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비스트라 등으로부터 전기를 도매로 사서 텍사스 전역에 전기를 판매하는 ERCOT(텍사스 전력신뢰도위원회)는 비스트라 매출의 60%를 차지한다. 버크 CEO는 “연간 1.5~2%씩 증가하는 텍사스의 인구 또한 전기 수요 증가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원전에 필수인 우라늄, 가격 압박 크다
친환경 규제에 맞춰 미 전력 회사들은 태양광·풍력 발전같이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발전을 늘리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또하나의 중요한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이 꼽힌다. 그런데 원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가격의 상승세는 전력 회사에 부담이 되는 요인이라고 비스트라 실적 보고서는 전하고 있다. 2022년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미국이 주도하는 잇단 제재로 러시아산 우라늄 구입이 어려워졌고, 최대 생산지인 카자흐스탄에선 반정부 시위가 반복해서 발생해 우라늄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비스트라는 이 같은 ‘우라늄 악재’가 장기화할 것을 대비해 우라늄을 가능한 한 선제적으로 구입했고 2027년 사용 예상분까지는 비축을 해두었다고 밝혔다. 우라늄 가격은 지난 1월 1파운드(약 450g)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공급 불안과 함께 원전의 증가와 전력 회사들의 적극적인 우라늄 확보가 가격 상승의 요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스트라는 “만약 2027년 이후까지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적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