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8%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평균 28.6세의 젊은 인구. 여기에 탈중국이란 지정학적 기회까지. 인도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 관심이 뜨겁습니다. 급기야 인도증시 시가총액이 지난 6개월 동안 약 1조 달러 늘어나면서, 지난주 사상 처음 5조 달러를 돌파했죠(세계 5위, 미국·중국·일본·홍콩 다음).
하지만 잘 나가는 주식시장 분위기와는 달리 인도 경제에 대해선 경고음이 이어집니다. 빛나는 인도 경제에 결정적으로 부족한 게 있어서인데요. 바로 일자리이죠. 오늘은 인도 경제 성장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인도 경제이지만 그림자도 짙다. 사진은 2022년 독립 75주년 행사에 참석한 모디 총리.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인도를 선진국으로 도약시킨다는 게 모디 정부의 목표다. 로이터
인도 공무원 시험이 난리인 이유
인도의 공무원 선발 시험인 UPSC(연합공공서비스위원회) 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 불립니다. 매년 100만명 넘게 지원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1000명 이내. 최종합격률이 0.1%도 되지 않죠. 워낙 전 국민의 관심이 뜨거운 시험이라 합격자 발표 날 인도 모디 총리가 SNS에 불합격자 격려 발언을 올릴 정도입니다(“좌절은 힘들지만, 인도엔 여러분 재능이 빛날 기회가 풍부합니다”).
이 도박에 가까운 확률을 뚫기 위해 인도 전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수재들이 몰려듭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7~8년씩 시험 준비만 하는 공시족이 넘쳐나죠. 2년 전 뉴델리의 공무원 시험 학원가에 입성한 공대 출신 라훌 싱(26세)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무원 직업을 얻으면 내 인생뿐 아니라, 가족 인생 전체가 순조로울 거예요.”
십여년 전 한국의 공무원 시험 열풍(한창때 합격률 1%대)은 저리 가라 할 수준인데요. 인도 청년들이 이렇게까지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졸자가 갈 만한 괜찮은 일자리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죠.
인도의 연령대와 학력별 실업률 통계. 25세 미만 연령층 중 대학 졸업자 실업률이 42.3%로 가장 높다. 인도는 실업률 산정에서도 빠지는 청년 니트(NEET)족 비율도 매우 높기 때문에(20~24세 중 36%), 실제론 실업률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백수 상태이다. 아짐프렘지대학
인도에선 학력이 높을수록 청년 백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통계만 보면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벵갈루루의 아짐프렘지 대학(Azim Premji University) 보고서에 따르면 25세 미만 대졸자의 실업률은 42.3%나 됩니다. 글은 읽지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청년층 실업률(10.6%)의 네 배이죠. 문맹자를 빼고는 학력이 높아질수록 실업률이 올라갑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으로 연령대가 높아지면 고학력자 실업률이 이보단 좀 낮아지지만, 기본 추세(고학력=고실업)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공부를 많이 한 대졸자들은 월급 150달러짜리 소규모 조립공장 일자리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또래들처럼 시골에서 가축을 돌보거나 인력거 운전이나 아이스크림 노점상으로 나설 리도 없죠. 그래서 남은 선택이 공무원입니다. 기본 월급은 5만6100루피(93만원)로 아주 높진 않지만, 복지혜택 좋고 직업 안정성도 최고이니까요. 게다가 사회적 엘리트로 인정도 받고요. ‘인구 잠재력의 막대한 낭비’(뉴욕타임스 기사 인용)라는 말이 나오지만, 청년들에겐 그게 그나마 열려있는 문입니다.
연 8% 경제성장 스토리의 큰 약점
인도는 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지난해엔 GDP 성장률이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8.2%를 기록해 경제학자들을 놀라게 했고요. 올해도 연 7% 성장을 기대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앞다퉈 인도 증시로 몰리는 이유이죠. MSCI 인도 지수의 PER(주가수익비율)은 약 23배. 세계에서 가장 고평가된 주식시장입니다(참고로 중국은 10배). 거시경제도, 주식시장도 그 어느 나라보다 밝게 빛나는데요. 이런 인도를 가리켜 ‘세계 경제의 빛나는 별’이라고도 부르죠.
그래서 인도의 높은 청년 실업률을 보면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그 성장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분야는 서비스업이다. 국제노동기구 보고서
지난 20년 동안 인도의 경제성장을 이끈 분야는 서비스 부문(예-콜센터 같은 아웃소싱 기업)입니다. 서비스 분야는 부가가치는 높을지 모르지만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죠. 이에 비해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성장은 저조합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년 전 17%에서 2022년 13%로 오히려 떨어졌죠. 이는 196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여전히 인도엔 제조업 취업자(12%)보다 농업 종사자(46%)가 훨씬 더 많습니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은 연 700만~800만명인데, 제조업 일자리는 10년 동안 고작 500만명 늘었습니다(현재 총 6500만개).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모디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메이크 인 인디아’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제조업 유치를 위해 도로·공항·철도 같은 기반시설에 엄청나게 투자했고요(10년 동안 국도 길이가 60% 증가). 통신망 확충 덕분에 이제 노점상도 QR코드로 결제할 정도로 스마트폰 이용을 보편화했습니다. 2020년엔 ‘생산연계 인센티브’라는 보조금 제도를 도입해 휴대전화와 반도체 산업을 밀어주고 있죠. 덕분에 애플과 마이크론 공장도 유치했고요.
하지만 생각만큼 국내외 기업의 제조업 투자가 팍팍 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들춰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도 해치워야 할 걸림돌이 수도 없이 널려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대표적인 대못 규제인 토지수용법이 그 예이죠. 인도에선 너무 까다로운 토지수용법 때문에 땅을 사서 공장 하나 짓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요. 이거 모디 총리가 10년 전부터 고치려고 했는데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땅을 헐값에 뺏길까 걱정한 농민들의 대규모 반대에 부딪히자 정부가 두손 든 거죠.
인도 최대도시이자 상업 중심지인 뭄바이 도심의 모습. 게티이미지
게다가 보호무역주의는 또 얼마나 강한지. 관세는 점점 높아지고(2014년 평균 13.5%→2022년 18%), 무역 규제가 수시로 생겨납니다. 지난해 8월엔 인도 정부가 노트북·태블릿·올인원PC 수입을 갑자기 금지한다고 발표해서 해외 기업을 대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죠(반발이 커지자 이후 철회). 친 모디 정부 성향의 현지 대기업만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인데요. 브라운대학의 경제학자 아르빈드 수브라마니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약 당신이 아다니(인도 대기업 아다니그룹 회장인 고탐 아다니)나 암바니(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인 무케시 암바니) 같은 ‘두 A’가 아니라면 인도의 규제 우회로를 탐색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사법 시스템은 심각하게 취약한데요. 소송이 한번 시작되면 최종 판결까지 수십년 걸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20년은 보통이고, 최대 72년 걸린 사건도 있다고 하죠. 계류 중인 사건은 넘쳐나는데(5000만 건 이상) 판사 수는 너무 적고(인구 100만명당 2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 절차의 디지털화도 되지 않아서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사법 리스크도 엄청난 겁니다.
그래도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죠. 만약 전반적으로 소득이 늘어나고 중산층이 커진다면 그 소비시장을 노리고 진출하려는 기업이 점차 늘어날 수 있을 텐데요. 바로 그 점이 인도 성장 스토리의 약점입니다. 놀랍게도 인도의 근로자 실질임금이 지난 10년 동안 오히려 감소한 거죠(ILO에 따르면 2022년 상용 급여 소득자 실질임금이 10년 전보다 14% 감소). 직장인조차 인플레이션 타격으로 점점 지갑이 얇아지고 있는 건데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빛나는 경제의 수혜는 결국 소수의 부자만 누리고 있는 겁니다.
경제발전 공식과 인도의 길
역사적으로 모든 저개발국 경제 도약엔 공식이 있습니다. 먼저 노동집약적인 제조업 공장이 농촌에 있던 비숙련 노동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고요. 값싼 인력 덕분에 가격경쟁력을 갖추면서 수출이 빠르게 증가합니다. 1970년대 한국의 미싱공들이 그랬고, 1990년대 중국과 지금의 베트남 공업화가 그렇죠. 이후 경제성장이 본격화하면 자본집약적인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요. 그 성장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탈산업화’가 나타납니다.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점을 찍고 꺾이는 건데요.
1960년부터 2022년까지 국가별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 그래프. 위에서부터 하늘색 선은 중국, 남색은 한국, 분홍색 베트남, 초록색 인도이다. 인도는 유독 제조업 비중이 낮을 뿐 아니라(13%), 1960년대 이후 거의 변화가 없고 오히려 최근엔 꾸준히 떨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세계은행
지금까지 인도 경제의 성장 궤도는 이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제조업 단계를 아예 생략했고요. 이미 IT와 서비스업이 성장을 이끄는 탈산업화 단계가 진행 중인 걸로 보이는데요. 궁금합니다. 혹시 인도는 기존 공식을 깨고 새로운 경제발전 경로를 개척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당연히 그게 되겠냐, 그런 전례가 없다는 회의론이 주류입니다. 제조업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는 경고가 점점 커지죠. 이런 식입니다.
“앞으로 30년 정도 지속될 인구 보너스 기간 동안 공업화를 실현할 수 없다면 모디 총리가 내세우는 선진국은커녕 중국 수준의 상위 중소득국이 되기도 어려워집니다. (…) 인도의 선진국화를 위해서는 경공업에 힘을 쏟아 노동 집약적인 제조업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 칼럼)
“총선 결과는 인도국민당에게 굴욕을 안겨주었습니다(단독 과반 의석 확보 실패). 그들이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낸다면 인도의 성장 스토리는 계속되고 심지어 개선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인시아드대학 푸샨 더트 교수)
지난 4일 총선 승리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디 총리. 하지만 그가 이끄는 여당은 단독 과반의석 확보엔 실패했다. 의외의 결과를 두고 인도의 심각한 실업난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
모디 정부도 역시 제조업 육성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모디 총리는 이달 초 총선 직후 이런 메시지를 냈죠. “적절한 정책과 투자를 통해 인도가 선진적인 제조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세계무대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와도 경쟁할 수 있습니다.” ‘포스트 차이나’라는 지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셈입니다. 이는 전 세계 투자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인프라 투자+제조업 육성’이라는 인도 증시의 익숙한 스토리가 계속 이어질 거란 안도감을 주니까요.
그런데 이와 다른 참신한 의견도 있어서 소개합니다. ‘제조업 버스는 이미 놓쳤으니, 서비스업 열차에 올라타자’는 주장인데요. 전 인도중앙은행 총재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책과 인터뷰, 칼럼을 통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는 베트남, 중국과 경쟁할 낮은 곳(제조업)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지만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없습니다. 인도가 집중할 곳은 서비스업입니다.” 영어를 쓰는 인력이 풍부하고, 중국처럼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민주주의 사회라는 인도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는 서비스업이라고 보는 겁니다. 따라서 휴대전화 조립공장에 줄 정부 보조금을 차라리 교육에 투자하라. 이런 결론이죠.
물론 가난했던 나라가 그런 식으로 성공한 사례를 한번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판단은 어려운데요. AI와 로봇의 시대엔 경제발전 공식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흔히 인도를 20년 전 중국과 비슷하다고 얘기하죠. 그만큼 고성장의 초입에 있다는 기대가 큰데요. 하지만 막연하게 ‘중국이 그랬으니까, 인도도 그럴 거야’라고 보기엔 무엇보다 정치 체제 차이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인도의 미친 공무원 시험 열풍은 청년 실업난의 심각성을 드러내줍니다. 인도에서 25세 미만 대졸자 실업률은 42.3%, 25-29세도 22.8%에 달합니다. 생산가능인구는 점점 늘어나는데 괜찮은 일자리가 모자랍니다.
-제조업 성장이 부진한 게 그 원인입니다. 정부가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보조금도 뿌리지만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해외기업이 공장 짓는 걸 가로막는 규제와 관료주의가 한둘이 아닙니다.
-‘경공업-중공업-서비스업’이란 발전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인도 경제는 도약할 수 있을까요. 노동집약적 제조업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미 제조업 버스는 떠났다는 소수의견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