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번 방중 앞두고 FT "'中 정찰풍선' 관계 최악에 설리번 '은밀한 임무' 착수"
작년 5월 빈∼올 1월 태국 4차례 회동…설리번 "미중 역학구도 바꾸는데 중요 역할"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중을 앞두고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 간 비밀 채널이 그동안 어떻게 가동됐는지를 조명한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미국-중국 간 비밀스러운 막후채널(backchannel)의 내부 이야기'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양국의 최고 외교 책사인 두 사람 간의 회동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고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상공을 지나가며 양국 관계가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한 지 3개월 후, 설리번 보좌관은 자신만의 은밀한 임무에 착수했다.
제이크 설리번(왼쪽 세번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오른쪽 네번째)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023년 5월 1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동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0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왕이 주임과 첫 비밀 회동을 추진한 것이다.
두 사람을 포함한 미중 관리들은 보안을 유지한 채 이틀간 호텔에 머물며 8시간 이상 대만 문제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등 양국 갈등 현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대만을 둘러싼 갈등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며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왕 주임은 "대만 독립이 양안 평화에 가장 큰 위험이며 중미 관계에 가장 큰 도전"이라며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설리번 보좌관이 양국이 경쟁 관계에 있지만 협력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자, 왕 주임은 미국이 양국 관계를 경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며 미국의 수출통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당시 회동으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양국 관계를 재부팅(reboot) 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고 FT는 전했다.
회동을 통해 지난해 6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방중하고 또 다른 고위급 간 상호 방문이 재개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제이크 설리번(왼쪽)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023년 9월 16일 몰타에서 회동하고 있다.
그로부터 넉 달 뒤인 같은 해 9월 설리번 보좌관과 왕 주임은 2번째 회동을 위해 몰타에 도착했다.
몰타 회동에서 두 사람은 두 달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성사된 양국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데 주력했다.
큰 틀에서의 합의 이후 왕 주임은 다음 달인 10월 워싱턴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예방하고 설리번 보좌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최종 조율했다.
마약 펜타닐 생산 억제 조치와 양국 간 고위급 군사 소통 채널 복원 등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들은 설리번-왕이 채널을 통해 도출됐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외교부장 겸직)이 올해 1월 26일 태국 방콕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남을 가졌다.
두 사람 간 가장 최근 회동은 올해 1월 태국 방콕에서 있었다.
방콕 회동에서 미국은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와 러시아에 대한 지원 문제를 제기했고 중국은 "미국이 작은 뜰에 높은 담장'(small-yard, high-fence) 전략으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 한다"고 맞섰다고 FT는 전했다.
두 사람 간 채널은 우여곡절 속에 갈등 현안을 쉽게 해결하지는 못했음에도 양국 간 갈등 수위를 낮추고 상대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설리번 보좌관은 FT에 "이 채널이 중국이 정책을 바꾸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중 관계 역학 구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 우리가 정책을 취하고 그것을 관리해 양자관계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의 중국 전문가인 로리 대니얼스도 "이러한 비밀 채널이 경쟁하는 두 강대국 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양국 관계를 단기적으로 안정화하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FT는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간 소통 채널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2021년 3월 미국 알래스카 회동에서 미국과 공개 설전을 벌인 양제츠 전 주임에 비해 덜 논쟁적인 왕 주임 스타일이 회동 성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