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올해 초 출시한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가 기대보다 저조한 성과를 내면서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을 아우르는 확장현실(XR) 시장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R·MR·XR 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역량을 인공지능(AI)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29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 등 메타 경영진은 최근 제품 검토 회의 후 프리미엄 MR 헤드셋 개발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메타는 당초 2027년 출시를 목표로 애플 비전 프로와 경쟁할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해 왔으나, 비전 프로의 판매 성과 등을 보면서 쉽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타는 AR 스튜디오 ‘메타 스파크’도 내년 1월부로 종료한다. 메타 스파크는 AR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으로, 페이스북 등에 연동시켜 AR 필터와 효과를 제작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왔다. 블룸버그는 “메타는 VR·AR 사업에서 올해 1월까지 약 500억달러(약 66조원)의 손실을 본 상황”이라면서 “철저한 검토 끝에 회사(메타)는 다른 우선순위(AI)로 방향을 돌려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메타는 앞으로 AI 관련 기술 투자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저커버그 CEO는 올해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도 연말까지 AI 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한 300억달러에서 370억~400억달러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몇년간 과도기에 있었던 메타가 AI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태세로 스스로를 전환시키고 있다”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거대언어모델(LLM) 라마를 개발한 데 이어 AI 산업에 핵심인 전력 확보를 위해 관련 신기술에 베팅하고 있다”고 전했다.
‘1세대 구글 글래스’를 출시하면서 가장 먼저 AR 시장을 개척했던 구글 역시 사업 방향을 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구글이 수년째 스마트 글래스 등 컨슈머용 디바이스에 주력해 왔지만 지금은 AI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대화형 AI 챗봇 바드(Bard)에 투자하면서 챗GPT와의 본격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라고 했다.
구글은 지난 2013년 스마트 안경을 처음 선보인 후 2014년 제품을 정식 출시했다. 그러나 2015년 1세대 구글 글래스를 단종시켰고, 이후 기업용 엔터프라이즈 버전을 판매해 왔다. 이 역시 지난해 단종됐다. 일부 외신에선 구글이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 레이밴의 모회사인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에 스마트 글래스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아직까지 확정된 사안은 없는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올 초 MR 플랫폼 ‘윈도우 MR(Windows MR)’의 지원을 공식 종료했다. 지난 2017년 처음 공개된 이후 7년 만이다. 당시 레노버, 에이수스, 델, HP, 삼성 등 여러 하드웨어 기업이 윈도 MR 지원 헤드셋을 앞다퉈 출시했으나, 제한된 콘텐츠와 부진한 판매 실적으로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CNBC에 따르면 MS는 지난 6월 MR 조직을 포함해 약 1000명을 해고했다.
MS는 AI 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말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와의 파트너십을 공식 발표한 이후 100억달러(약 12조35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부터 MS는 오픈AI와 함께 약 1000억달러(약 134조원)를 투자해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 이 곳에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에 활용할 슈퍼컴퓨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한편, 애플이 올해 2월 출시한 XR 헤드셋 비전 프로는 3500달러(약 462만원)라는 가격 등으로 예상보다 저조한 판매 실적을 기록 중이다. 블룸버그는 시장조사업체 IDC를 인용해 “비전 프로 헤드셋이 지난 2월 미국 출시 후 분기당 10만대도 팔리지 않았다”면서 “이번 분기(3분기) 역시 판매량이 75%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