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타개 비상 계획 준비
한때 ‘반도체의 제국’으로 불리던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독일에 짓기로 한 공장 투자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존을 위해 미래 핵심 사업부와 사업을 폐기하기로 한 것이다. 167억달러(약 22조)를 주고 사들인 자회사 알테라 매각, 300억유로(약 44조원) 투자를 약속한 독일 공장의 투자 백지화 등의 안이 검토되고 있다.
2일 로이터통신은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이 이달 중순 본격적인 비상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16억달러(약 2조 2000억원)라는 대규모 적자를 밝힌 인텔이 인적 구조 조정에 이어 사업 구조 조정까지 단행하며 재무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당초 인텔은 전체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1만5000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텔이 최근 암울한 실적을 보고한 이후 이 같은 구조 조정 논의가 더욱 시급해졌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투자 은행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와 함께 사업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에 직면한 인텔이 자회사를 매각하고 직원들을 무더기로 잘라내는 등 역사상 가장 추운 겨울을 앞두고 있다. 인텔 제국이 추락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핵심 사업 매각
로이터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 3월 자회사로 분사한 FPGA 업체 알테라를 매각할 계획이다. 앞서 인텔이 이 2015년 이 회사를 인수한 지 9년 만이다. FPGA는 추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로, 용도에 맞게 회로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의 한 종류다. 이 같은 특징으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활용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지만 당장 사정이 안 좋은 인텔은 눈물을 머금고 재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당초 이 사업부의 IPO(기업 공개)를 고려했지만 다른 반도체 기업에 완전히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잠재적 인수자 중 하나로 마벨 테크놀로지가 거론된다”고 전했다.
인텔이 유럽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규모 공장 투자도 잇따라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게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300억유로(약 44조5000억원)를 투자해 짓기로 한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장이다. 지난해 인텔은 1.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급 공정을 도입해 독일을 인텔의 유럽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내놨는데 1년 만에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인텔은 프랑스 파리 인근에 추진하기로 한 AI와 HPC(고성능 컴퓨팅) 연구·개발 허브 설립 계획을 접었고, 이탈리아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계획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 투자를 줄줄이 보류하는 건 인텔도 기업의 존망을 두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심정으로 단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파운드리 사업부를 매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인텔은 현 겔싱어 CEO가 2021년 수장 자리에 앉은 뒤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다. 수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총 53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업계에선 내년에도 막대한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다만 로이터는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구조 조정안에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은 아직 포함돼 있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선을 그었다.
◇반도체 호황 때 홀로 몰락하는 인텔
인텔의 실적 부진은 다른 반도체 기업들이 지난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올해 들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엔비디아는 AI 가속기로 역대 최대 실적을 쓰고 있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매출이 지난해 대비 100% 안팎 개선되고 있다. 반면 인텔은 올해 들어 부진한 실적을 내며 주가가 50% 이상 하락했다. 30일 기준 주가는 22.04달러로 한창 잘나가던 시기인 1997년 수준이다.
인텔의 끝없는 부진의 원인을 두고 무사안일주의와 관료주의가 고착화된 인텔의 기업 문화가 꼽힌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인텔 이사회에서 립부 탄이 사임했다고 전하며 “반도체 베테랑인 탄 이사가 사임한 것은 인텔의 위험 회피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문화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탄 이사는 세계 3대 전자 설계 자동화 업체로 꼽히는 케이던스 회장 출신이다. 로이터는 “탄 이사는 파운드리를 보다 고객 중심으로 만들고 불필요한 관료주의를 없애고 싶어 했지만 관철되지 않자 좌절감을 느꼈다”며 “특히 비대해진 인력 구조, 위험 회피적인 문화, 뒤떨어진 AI 전략 등에 실망하고 회사를 떠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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