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만에 軍 시설만 보복 공격 단행
공습 前 네덜란드 통해 표적 미리 전달
‘군인 4명 사망’ 이란 “제한적 피해” 발표
양측 美 대선 앞두고 ‘약속대련’ 가능성
이, 트럼프 승리 땐 추가 타격할 수도
이란, 시간 끌면서 정권 안정 등 도모
26일(현지시간) 새벽 이스라엘이 ‘회개의 날’ 작전을 통해 이란의 테헤란, 후제스탄, 일람 등을 타격하며 전 세계가 우려해온 두 국가의 재충돌이 현실화됐다. 그러나 전황을 바라보는 국제사회는 오히려 걱정을 덜었다는 표정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예상보다 훨씬 제한적이었고, 이란도 강경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란 타격한 이스라엘 전투기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가 26일(현지시간) 이란에 보복 공격을 하기 위한 출격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군 제공,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이달 1일 이란으로부터 탄도미사일 약 200기 공격을 받은 뒤 줄곧 재보복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이후 25일 만에 예고했던 대로 전투기와 무인기(드론) 100여대를 동원해 26일 세 차례에 걸쳐 테헤란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 테헤란 외곽 군사기지와 탄도미사일 및 드론 생산공장 등을 파괴했다. 국제사회가 우려했던 이란의 핵시설과 석유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란의 핵시설이 공격받을 경우 중동 전체가 핵전쟁의 위협 속으로 급격히 휩쓸려들어 가게 되고, 석유시설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파괴될 경우 유가 불안 등으로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들 시설이 아닌 군사시설만 이스라엘이 타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재보복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공습에 앞서 이란 측에 미리 표적 등에 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알려줬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날 공격에 앞서 카스파르 펠트캄프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포함한 여러 제3자를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이란에 전달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공습 이후 이란군 총참모부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란에 제한적인 피해만 줬다”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이날 공습으로 인한 이란의 인명 피해는 군인 4명 사망이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을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막아낸 것이다. 이란군은 이어 “이란은 적절한 시기에 침략에 합법적이고 정당하게 대응할 권리를 갖는다”며 이번 공습에 대한 추후 대응이 있을수 있다고 밝혔다.
폭파되는 헤즈볼라 땅굴 이스라엘군이 26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에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건설한 대규모 땅굴을 폭파하고 있다. 이 땅굴은 헤즈볼라가 지난 15년에 걸쳐 건설한 길이 1.5㎞에 달하는 지하 군사시설로 무장대원 수백명이 장기간 머물 수 있도록 식량과 무기 등이 구비돼 있었다.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른 후 전체 길이가 수백㎞에 이르는 땅굴망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이란의 추후 대응 천명이 내부단속용일 뿐 실제 실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앞선 이스라엘과의 충돌 때 ‘복수의 불길’, ‘피의 대가’ 등 강경한 표현을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날 이란의 성명이 최대한 절제된 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 파이낸션타임스(FT)는 이란이 곧바로 재보복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고 전했다.
마치 ‘약속대련’처럼 보이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이번 공방에 양측의 이해관계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이 이번 작전 과정에서 이란의 원유나 핵 시설을 피해 공격하라고 주문해온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압박을 고려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역대급 접전 중인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꺾고 승리한다면 그 이후 언제라도 이란을 추가 타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란의 경우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이스라엘과의 충돌 수위를 가능한 한 낮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란 역시 미국 대선을 주의 깊게 지켜보며 가능한 한 시간을 끄는 전략으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가안보실로부터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보고받고 “현지 교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상황악화에 대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또 27일 안보·경제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금융시장과 유가·원유 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