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인사에 공화당도 "충격"
맷 게이츠, 털시 개버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맷 게이츠(42) 공화당 하원 의원을 법무장관 후보로, 털시 개버드(43) 전 하원 의원을 국가정보국(ODNI) 국장 후보로 지명했다. 대선 러닝메이트였던 J D 밴스(40) 부통령 당선인과 앞서 지명된 피트 헤그세스(44) 국방장관 후보 등에 이어 40대 젊은 인사들을 집권 2기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노선을 실행할 핵심 보직에 파격적으로 발탁한 것이다. 게이츠와 개버드 모두 이달 초 공개된 트럼프 캠프의 대선 다큐멘터리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전당대회 연설을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스위트룸에서 트럼프와 함께 지켜보던 최측근 그룹이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성명에서 게이츠에 대해 “재능 있고 끈질긴 변호사로, 법무부가 필요한 개혁을 달성하는 데 집중해 의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했다.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의 선봉장인 게이츠는 공화당에서도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예컨대 2020년 대선 패배에 불복한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한 ‘1·6 사태’는 비밀 요원들이 잠입해 폭력을 유발한 결과라는 음모론을 펼쳤다.
지난달 31일 미국 네바다주 헨더슨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맷 게츠 하원의원(플로리다)이 연설하고 있다. 맷 게이츠는 ‘트럼프 2기’ 첫 법무장관으로 지명됐다. /로이터
게이츠가 수사·기소 등 법 집행을 총괄하는 자리에 발탁되자 미 언론과 정가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연방수사국(FBI)과 연방 검찰을 총괄하는 미국 법무장관은 내각의 일원이지만 대통령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검찰총장 역할까지 겸해 연방 수사를 직접 지휘하기에 엄정하고 중립적인 업무 수행이 필수다. 노골적으로 ‘트럼프 친위대’를 자처했던 게이츠를 이 자리에 지명한 데 대해 미 언론들은 “수사기관을 자신(트럼프)의 직접적 통제 아래 두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시도한 혐의 등으로 네 차례 형사 기소를 당한 트럼프가 심복인 게이츠를 통해 법무부 고위 인사들을 대거 축출하거나 보복 수사를 벌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비교적 정상적으로 보이던 트럼프 내각 인선에 게이츠가 등장하자 공화당 의원들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엄청난 충격”이라고 했다. 공화당 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리사 머카우스키, 수전 콜린스 상원 의원 등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충격받았다” “진지한 지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가 나오는 만큼 상원 인준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플로리다 출신인 게이츠는 플로리다 주립대, 윌리엄앤드메리 대학 로스쿨을 졸업하고 2008년 변호사가 됐다. 2010년 플로리다주 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정계에 입문한 뒤 2016년 연방 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지난해 10월엔 미국 역사상 처음인 연방 하원 의장 해임 사태를 촉발했다. 당시 민주·공화당의 초당적 협력으로 임시 예산안이 통과되자 게이츠는 같은 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이 적(민주당)과 야합했다며 축출을 밀어붙였다. 캐스팅보트를 쥔 공화당 소수 초강경파가 민주당과 연합해 해임안이 가결됐다. 이 외에도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매매, 마약 투약, 선거 자금 유용 등 의혹으로 정계에서 퇴출될 뻔했고 지금까지도 하원 윤리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 반대 진영에 대한 발언 수위가 거침없어 ‘화염방사기’라는 별명도 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8월 29일 위스콘신주 라크로스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이날 CIA(중앙정보국), NSA(국가안전보장국) 등을 총괄하는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 국장에 지명된 털시 개버드 또한 대선에서 트럼프를 밀착 보좌한 충성파로 분류된다. 태평양의 미국령 사모아 태생인 개버드는 첫 사모아계이자 이라크전 참전 용사 출신 여성 의원, 힌두교도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어머니가 힌두교로 개종해 개버드도 10대 때 힌두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털시라는 이름도 산스크리트어로 ‘신성한 바질’이라는 뜻이다. 힌두교에선 바질을 신성한 식물로 여겨 종교 의식에 쓴다.
개버드는 원래 민주당 소속으로 민주당전국위원회(DNC) 부의장 등을 지냈다. 2019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도 출마했지만 이듬해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면서 중도 사퇴했다. 외교, 낙태, 성 소수자, 국경 문제 등에서 민주당과 의견 차이를 보인 끝에 지난해 10월 탈당하고 트럼프 재선 캠프에 합류했다. 지난 8월엔 대선 후보 TV 토론을 앞두고 상대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역을 맡아 트럼프와 토론을 연습하면서 트럼프 진영의 핵심 인사로 떠올랐다.
4년 만에 바뀌는 백악관 주인 -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오른쪽)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나눴다. 트럼프는 2020년 자신의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당시 당선인이었던 바이든을 백악관에 초대하지 않았지만, 바이든은 이날 대선 결과에 승복하고 트럼프를 맞이했다. AP 등은 이에 "(둘의 재회는) 평화적 권력 이양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라고 했다. 바이든은 내년 1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법무장관과 국가정보국장직에 관련 경험이 전무한 인사들이 지명되면서 자질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정보기관 경력이 없는 개버드에게 정보기관 총괄을 맡긴 데 대해 시사 주간지 애틀랜틱은 “국가정보국은 9·11 테러 이후 여러 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었다”며 “미국의 안보와 직결된 자리에 문외한을 앉히는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개버드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자금을 지원하는 비밀 생화학 연구소 25곳이 있고, 연구소가 파괴되면 치명적 병원균이 유출될 수 있다고 소셜미디어에서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서방이 보장했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또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미국의 적이 아니다”라고 하는 등 미국·서방의 외교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모습을 보였다. 폴리티코는 익명의 서방 정보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의 동맹국들이 워싱턴과 공유하는 정보를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게이츠 역시 변호사 출신이지만 연방 검찰은 물론 법무부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하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 장관 후보자도 장성이 아닌 예비역 소령 출신으로, 대규모 부대를 지휘한 경험이 없다.
☞美 국가정보국
미국의 모든 정보기관을 통솔하는 최고 정보기관. 2001년 9·11 테러 사건이 터진 이후 미국 정보기관들의 관할이 충돌하거나 협조가 서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지휘하기 위해 설치됐다. 실질적인 정보 예산의 결정권과 통제권까지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