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바이오 기술 격차 위해 규제 완화” 전망도
최근 반등하는 듯했던 국내 바이오 업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미국 대선 승리 이후 흔들리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약속한 정책이 금리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여기에 트럼프가 ‘백신 회의론자’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한 점도 바이오 투자심리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자가 지난 10월 미국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9일 코스닥시장 대장주 알테오젠은 37만6000원에 장을 마쳤다. 전날보다 주가가 7.73%(3만1500원) 내리며 8거래일 만에 40만원 선을 내줬다. 알테오젠은 지난 11일 장 중 45만5500원까지 뛰며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으나, 이후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스닥 시가총액 5위 리가켐바이오도 이달 11일 장 중 14만3600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찍은 다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리가켐바이오의 고점 대비 이날 종가(10만6300원) 기준 하락률은 26%(3만7300원)에 달한다.
부진한 주가 움직임은 다른 바이오주도 마찬가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12일 황제주(1주당 주가 100만원 이상)에서 밀려난 뒤 현재는 90만원 초반대에 머물러 있다. 셀트리온, HLB, 삼천당제약, 펩트론 등도 최근 주가 수익률이 신통치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약·바이오 업종은 조선·방산 등과 함께 흔들리는 반도체 자리를 대신할 유망 업종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미 대선 금리가 다시 들썩이자 투자심리가 급격히 약화했다. 통상 바이오 업종은 연구·개발(R&D)을 위한 차입 규모가 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질수록 불리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고, 재정 적자로 채권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진 점이 바이오 주가 조정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세계 채권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4.4% 선을 웃돌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은 금리 인하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한 점도 바이오 업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가 ‘백신 회의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반(反)백신 단체를 설립한 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와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을 이어왔다. 백신뿐 아니라 에이즈, 항우울제, 줄기세포 등과 관련한 음모론도 신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화이자, 사노피, 머크앤드컴퍼니 등 글로벌 백신 제약사 주가도 케네디 주니어 지명 이후 약세다. 케네디 주니어가 약물을 통한 비만 치료도 부정적으로 보는 탓에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 주가도 급락했다.
케네디 주니어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앞으로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근희 삼성증권 연구원은 “케네디 주니어가 펼쳐 온 주장이 의료 정책에 반영될 경우 미국 헬스케어 시스템에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케네디 주니어는 식품의약국(FDA) 운영에 직접 개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약물 승인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위험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당선인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발탁한 비벡 라마스는 FDA의 규제 완화 등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헬스케어 산업 투자에 직접 나선 경험도 있다.
미국이 중국과 바이오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무작정 규제를 강화만 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헬스케어 규제를 완화한 가운데 미국도 과학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규제 완화를 논의할 것”이라며 “반독점 규제를 강조했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교체로 바이오 업체나 바이오텍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