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한 서밋(Summit)에서는 작은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라떼를 따르고 기술 전도사들은 새로운 AI 기술을 혁신적이라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실물 크기의 시제품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사진 설명: 블룸버그 퍼팔(Firpal) 일러스트레이션
일시: 2025년 12월 19일 오후 8:00 GMT+9
실리콘밸리 컴퓨터 역사 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기대감으로 들썩였습니다. "로봇 공학이 공장을 벗어나 우리 일상으로 들어와 수천억 달러 가치의 시장을 창출할 순간이 드디어 도래했는가?"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기계 인간(Maschinenmensch)'이 등장한 지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로봇은 여전히 제조 라인이나 물류 센터에서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도구 혹은 장난감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정과 사무실에 인간 형태의 로봇이 등장한다는 개념은 여전히 공상 과학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챗GPT(Chat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범용 컴퓨터 인터페이스(코딩도 하고, 작곡도 하며, 영화도 만들 수 있는!)를 약속하면서, 로봇 공학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이와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여 어떤 작업이든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설계된 로봇은 인간이 사는 공간에 존재해야 하므로, 설계자들은 로봇 역시 인간을 조금 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간 피규어 AI(Figure AI), 1X,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 갈봇(Galbot),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 필드 AI(Field AI), 위브(Weave), 스킬드 AI(Skild AI) 등 수많은 스타트업이 이러한 기계를 현실화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닮은 로봇에 초점을 맞춘 세 번째 행사인 12월의 '휴머노이드 서밋(Humanoids Summit)'에서 실물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안전과 신뢰성 관점에서 많은 모델이 아직 대중에 공개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넘어지면 단순히 창피한 일을 넘어 구경꾼을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휴머노이드 대부분은 세계적인 로봇 제조업체 중 하나인 중국 유니트리(Unitree)가 만든 4피트(약 1.22m) 크기의 기계들이었습니다. 기업들은 이를 소프트웨어 실험용 플랫폼으로 구매합니다. 예를 들어, 휴머노이드 로봇판 '배틀봇(BattleBots)'에 대한 관심을 키우려는 스타트업 '얼티밋 파이팅 봇(Ultimate Fighting Bots)'도 이를 활용합니다. (제가 시연을 요청했을 때, 컨트롤러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였습니다.)
사진 설명: 얼티밋 파이팅 봇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참여하는 관전 스포츠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출처: Ultimate Fighting Bots
'휴머노이드'라는 정의는 꽤 느슨해서 전시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영화 <조니 5 파괴 작전(Short Circuit)>의 조니 5 같은 로봇 팔과 카메라, 개와 닮은 4족 보행 로봇, 정밀한 수작업을 수행하는 소형 자동화 공장, 그리고 수많은 기계 손들이 있었습니다. (손재주는 로봇 공학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로, 파이소닉(Pysonic)과 알트-바이오닉스(Alt-Bionics) 두 회사는 로봇 사업으로 전환하기 전 사람을 위한 첨단 의수를 개발했습니다.)
로봇 도입 비용 (The Cost of Deploying a Robot)
로봇 공학자들은 새로운 AI 기술이 혁신적일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이 기술이 적용된 기계를 언제쯤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중국과 일본처럼 정부가 로봇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한 곳에서는 이미 그런 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중국은 1,380억 달러(약 180조 원) 규모의 국영 로봇 투자 펀드를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미국 기업가들의 부러움을 샀으며, 또 다른 기술 무역 갈등의 토대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소프트웨어가 가장 큰 과제라고 확신하며 AI 시대에 로봇을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과, 오랫동안 이 분야에 종사해 온 사람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피지컬 인텔리전스의 바리스타 로봇(95% 성공률로 라떼를 만들 수 있음)과 같은 새로운 소프트웨어 모델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패널이 있는가 하면, 영화관에서 일하는 로봇에 팝콘이 끼어 고장 나거나 식당 웨이터 로봇의 배선을 쥐가 갉아먹었다는 등 고충을 토로하는 패널도 있습니다.
설령 로봇 인력이 완벽하게 기능한다 해도, 그 도입은 새로운 직장 내 관리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로봇을 관리할 인력은커녕 로봇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의지조차 부족합니다. 자동화 컨설팅 업체 로보웍스(Roboworx)의 전무 이사 제프 피텔카우(Jeff Pittelkow)는 현장에 배치된 휴머노이드 로봇이 현재 다른 직원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직원들이 로봇을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환경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두게 되는 셈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서밋은 로봇 공학이 신흥 분야임을 강조했습니다. 피텔카우는 현재를 1997년의 인터넷에 비유했습니다. 리얼맨 로보틱스(RealMan Robotics)의 미주 이사 도니 리(Donny Li)는 레벨 4 자율주행(완전 자율주행의 바로 전 단계)이 널리 보급된 후 약 10년 뒤에 로봇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또 다른 자주 인용되는 기준은 3만 4,000달러(약 4,800만 원)로, 이는 미국 여러 주(州)의 인간 노동자 최저 연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로봇 운영 비용은 이보다 비싸지만, 로봇 비용이 이 기준선 밑으로 떨어져야만 휴머노이드 도입이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경제적 우위에 서게 됩니다.
로봇 비디오 스타 (Robot Video Stars)
거의 모든 기업이 AI로 사업 전환을 시도하는 듯한 상황에서, 로봇 공학이 가진 '재정적 중력(financial gravity)' 또한 온갖 종류의 스타트업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개발 중에 만난 두 엔지니어가 설립한 모렐(Morelle)은 현재 고속 충전 로봇 파워팩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MIT 졸업생들이 설립한 라인와이즈(LineWise)는 작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 콤비네이터(Y Combinator)에서 제조 라인을 모니터링하고 AI로 공정을 최적화하는 계획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창업자들은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이 더 수익성 높은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점을 빠르게 깨닫고 그에 맞춰 회사를 재정비했습니다.
라인와이즈는 현재 로봇에게 작업 수행 방법을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 데이터를 제공합니다. 제임스 쿠자레바니치(James Kujareevanich) CEO는 "바로 여기에 큰 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AI 기반 로봇이 직면한 주요 과제, 즉 모델에 입력할 충분한 원천 데이터를 확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입니다.
거대언어모델(LLM)은 방대한 텍스트의 우주에 의존할 수 있지만, 로봇은 비디오, 인간이 원격으로 조작할 때 수집된 데이터, 그리고 시뮬레이션의 조합을 통해 훈련받아야 합니다. 새로운 로봇 제작사들이 모델을 훈련시킬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인프라는 구축되고 있습니다. 아다모(Adamo)라는 스타트업은 멕시코시티 같은 곳에서 훈련된 수백, 심지어 수천 명의 원격 조작자를 동원해 로봇을 훈련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밋에서 대부분의 로봇 활약상은 비디오를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스킬드 AI(Skild AI)의 아비나브 굽타(Abhinav Gupta)는 자사 모델로 훈련된 로봇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다른 기업들에게도 같은 것을 해보라고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1HMX의 임원 조 마이클스(Joe Michaels)는 로봇이 얼어붙은 보도를 걷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비디오가 인상적이라 해도 실제 결과가 항상 그 과대광고에 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위브(Weave)가 만든 로봇이 티셔츠를 개려다 몇 분 동안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빨래 개기를 정말 싫어하는 저로서는 실망스러운 소식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어질리티는 창고와 같은 환경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디짓(Digit) 로봇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Agility
실제로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배치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 중 하나는, 무거운 상자를 옮기고 창고에서 팔레트를 적재하는 로봇 '디지트(Digit)'의 제조사 어질리티(Agility)입니다. 어질리티의 최고기술책임자(CTO) 프라스 벨라가푸디(Pras Velagapudi)는 기업들이 로봇을 업무에 투입하는 데 따르는 실질적인 과제들을 주시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물리적 AI가 가져오는 가장 큰 장점은 구성 가능성(configurability)과 신뢰성(reliability)을 향상시키는 데 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 구성 가능성(Configurability): 여기서는 로봇이 다양한 작업 환경이나 새로운 임무에 맞춰 유연하게 설정을 바꾸거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개인용 드로이드(droid)가 상용화되기까지 아직 수년이 남았다면, 로봇 역사의 흐름에서 지금 이 시점이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이번 서밋에서 화제가 된 비유 중 하나는 우리가 휴머노이드 로봇의 'PC의 순간(PC moment)'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봇 가격은 하락하고 오픈소스 AI 모델은 클릭 한 번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되면서, 마침내 결의에 찬 마니아층(얼리어답터)이 이 기계들을 직접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과제는 이 로봇들을 어떻게 실험실 밖 현실 세계로 끌어낼지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 PC의 순간 (PC moment):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거대하고 비쌌던 컴퓨터가 개인용(PC)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소수의 '해커'와 '마니아'들이 기술 혁신을 주도했던 시기를 뜻합니다. 현재의 로봇 산업도 이와 유사하게 대중화의 초입에 와 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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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빨래도 못 개는 휴머노이드? AI 열풍과 로봇의 현주소
1. 기대와 현실의 괴리: AI 소프트웨어는 혁신, 하드웨어는 제자리
• 배경: 챗GPT 등 생성형 AI(LLM)의 발전으로 로봇이 코딩이나 예술 창작까지 가능해지면서, 물리적 노동을 대체할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급증함.
• 현실: 실리콘밸리 '휴머노이드 서밋' 현장은 기대와 달랐음. 실물 크기의 휴머노이드보다는 소형 로봇이나 로봇 팔, 단순한 장난감 형태가 주를 이룸.
• 원인: 안전성과 신뢰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 대형 로봇의 전도 사고는 부상 위험이 커 대중 공개가 시기상조임. 기본적인 가사 노동(예: 빨래 개기)조차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
2. 기술적 난관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등장
• 데이터 병목 현상: 텍스트 데이터로 학습하는 LLM과 달리, 로봇은 비디오, 원격 조작 데이터, 시뮬레이션 등 '물리적 데이터'가 필수적임.
• 피벗(Pivot) 현상: 완성형 로봇 제작의 어려움 때문에, 로봇에게 작업을 가르치는 '훈련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원격 조작 인프라를 구축하는 B2B 스타트업(예: LineWise, Adamo)이 새로운 수익 모델로 부상함.
3. 글로벌 경쟁: 중국의 약진과 미국의 위기감
• 중국의 투자: 중국 정부는 1,380억 달러(약 180조 원) 규모의 국영 펀드를 조성하여 로봇 산업을 공격적으로 육성 중이며, 이미 실생활 도입이 시작됨.
• 미국의 상황: 미국 스타트업들은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부러워하며, 이는 향후 기술 무역 전쟁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음.
4. 상용화의 걸림돌: 비용과 인간의 수용성
• 경제성: 로봇 도입의 손익분기점은 인간 노동자의 최저 연봉 수준인 약 3만 4,000달러(약 4,400만 원) 이하로 비용이 떨어지는 시점이 될 것임.
• 현장 갈등: 로봇을 동료가 아닌 위협으로 인식하는 인간 직원들과의 갈등, 유지 보수 인력 부족 등 '직장 내 관리 이슈'가 실질적인 장벽으로 작용.
5. 전망: 'PC의 순간'을 맞이한 로봇 산업
• 현재 위치: 전문가들은 현재 로봇 산업을 1997년의 인터넷 태동기나, 자율주행 레벨 4 상용화 10년 전 단계로 비유함.
• 미래: 하드웨어 비용 하락과 오픈 소스 AI 모델의 확산으로, 얼리어답터들이 로봇을 소유하기 시작하는 'PC의 순간(PC moment)'에 진입함. 이제 막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 세계 적응을 시작하는 단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