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기술적 산만함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게으름은 창의성을 낳습니다.
연말연시 축제 기간 중 지루함이 찾아올 때, 끝없는 스크롤이나 단기적인 만족을 쫓아 스마트폰이라는 '토끼굴(rabbit hole)'로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합니다. © Getty Images
작성자: 편집위원회 (The editorial board)
작성일: 3시간 전 (현지시간 기준)
루이스 캐럴의 고전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는 언덕 위에서 언니 옆에 앉아,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상태에 매우 지치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소설 속 어린 앨리스는 이 지루함 덕분에 하얀 토끼부터 하트 여왕에 이르기까지 환상적인 생명체와 캐릭터들이 가득한 꿈의 풍경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연말연시, 우리 역시 지루함을 '재앙(blight)'이 아닌 '덤(bonus)'으로 여기고, 앨리스와 같은 영감을 얻어 따분함에 맞서야 합니다.
한 해의 이맘때가 되면 높은 기대감과 흥분이 피할 수 없는 축제 의식과 결합하여 종종 지루한 순간을 유발하곤 합니다. 가족 모임에서 아이들이 뾰로통하게 "나 심심해"라고 외치며 놀 거리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장면이 빠진다면, 그 모임은 완성된 것이 아닐 정도입니다.
기술이라는 미봉책
너무나 자주 우리는 이런 아이들의 요구를 '스크린 타임'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크리스마스잖아, 애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둬"라면서 말이죠.) 캐럴의 소설 첫 문단에서 앨리스는 언니의 책에 "그림도 대화도 없다"며 불평했지만, 오늘날의 스마트폰, 태블릿, TV는 무한한 이미지와 대화를 제공합니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까지 더해지며, 지치지 않는 앱들은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해 '독창적'인 이야기와 노래, 심지어 가상의 놀이 친구까지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기술에는 경이로움이 있지만, 이것이 지루함에 대한 지속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사실,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사람들을 전보다 더 지루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0년부터 2017년 사이 미국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및 소셜 미디어 보급이 늘어남에 따라 학생들이 "자주 지루함을 느낀다"고 답하는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과도한 사용은 주의력 지속 시간을 파괴하고 무의미함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화면 기반의 콘텐츠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위는 더 큰 자극을 갈망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지루함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지루함의 두 가지 얼굴: 멍청함 vs 결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훨씬 전,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지루함을 '멍청하게 만드는(stultifying)' 지루함과 '결실을 맺게 하는(fructifying)' 지루함으로 구분했습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속 엠마 보바리는 전자의 전형으로, "그녀 마음의 어두운 곳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처럼 조용한 지루함"에 시달립니다. 권태(ennui)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약물 남용, 폭식, 말다툼, 불륜과 같은 환영받지 못할 무모한 행동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대안들과 비교하면, 잠시 빛나는 직사각형의 오락거리(스마트폰)를 쳐다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러셀이 말한 두 번째 정의, 즉 '비옥한 마음의 상태'로서의 지루함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앨리스가 발견했듯, 지루함은 상상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아이작 뉴턴은 강제된 게으름(idleness) 덕분에 걸작을 만들고 혁신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경과학자들은 끊임없이 흥분만을 추구하는 것은 인지적 번아웃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합니다. 지루함의 시간은 과부하 된 뇌의 압력을 덜어주고 창의성에 반가운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AI가 없애겠다고 약속하는 단순 반복적인 업무조차 영감을 위한 공간을 남겨둡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스위스 특허청에서 했던 단순한 업무가, 그가 상대성 이론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마음의 자유를 주었던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결론: 지루함을 경작하라
1930년, 러셀은 저서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little men)들의 세대가 될 것이다. 자연의 느린 과정과 부당하게 단절된 사람들, 마치 화병에 꽂힌 잘린 꽃처럼 모든 생명력이 서서히 시들어가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지루함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많은 유혹에 직면해 있습니다. 하지만 따분함이 찾아올 때, 끝없는 스크롤이나 단기적인 만족이라는 '토끼굴'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십시오. 대신, 제대로 경작하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지루함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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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스) 지루함은 '발명의 어머니'… 기술적 산만함 대신 창의성의 기회로 삼아야
1. 도입: 연말연시의 불청객, '지루함'과 기술적 도피
• 연말연시 휴가철, 높은 기대감 속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지루함은 가족 모임의 익숙한 풍경입니다.
•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디지털 기기를 허용합니다.
• 과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이 지루함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과 달리, 현대인은 생성형 AI와 무한한 디지털 콘텐츠가 제공하는 즉각적인 자극으로 지루함을 덮으려 합니다.
2. 진단: 디지털 미디어의 역설 (지루함의 심화)
• 기술의 한계: 디지털 기기는 지루함에 대한 일시적 처방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 역효과 발생: 2010~2017년 미국 고등학생 대상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미디어 사용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자주 지루함을 느낀다"는 응답이 증가했습니다.
• 부작용: 과도한 미디어 사용은 주의력을 파괴하고 무의미함을 유발하며, 끊임없는 자극 추구는 오히려 지루함을 악화시킵니다.
3. 분석: '멍청한 지루함' vs '결실을 맺는 지루함'
• 철학적 구분: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지루함을 나쁜 행동(약물, 일탈 등)으로 이끄는 '멍청하게 만드는(stultifying) 지루함'과 창의적 영감을 주는 '결실을 맺게 하는(fructifying) 지루함'으로 구분했습니다.
• 창의성의 원천: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위대한 지성들은 강제된 게으름과 단순 반복 업무 속에서 걸작과 과학적 돌파구를 찾아냈습니다.
• 뇌과학적 관점: 끊임없는 흥분 추구는 '인지적 번아웃'을 초래하지만, 적절한 지루함은 과부하 된 뇌에 휴식을 주고 창의성을 자극합니다.
4. 제언: 도파민의 '토끼굴'에서 벗어나라
• 러셀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세대를 "화병에 꽂힌 잘린 꽃처럼 생명력이 시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지루함이 찾아올 때 끝없는 '스크롤링'이나 단기적 만족이라는 기술적 토끼굴로 도피하지 말고, 그 지루함을 온전히 받아들여 창의적인 결실을 맺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