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오픈 콧픽, 헬로 헤일로 : F1의 커다란 분수령의 순간들
1950년 시작이래 F1 챔피언쉽은 엄청난 변화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에 지나 간 큰 변화의 순간들을 정리 해 보겠습니다.
1960: Last world championship Indianapolis 500
오리지널 챔피언쉽은 6 라운드의 유러피언 시리즈에 인디애나폴리스 500경기를 던져 넣은 형식.
인디 500은 룰도 달랐으며, 별도의 8 포인트를 부가.
챔피언쉽은 서서히 유럽 밖으로 확대 됐으며, 1953년에 처음으로 아르헨티나 시합이 추가 됨.
1959년에 또 다른 미국 그랑프리가 추가 되었고, 1960년 이후 인디 500은 시리즈에서 제외 됨.
1960: Last front-engined win and last 500km race
챔피언쉽에 또 다른 큰 변화가 생김.
몇몇 초기 레이스들은 500킬로미터 거리의 시합을 했었고, 완료에 3시간 가량 걸렸음.
하지만 점차적으로 전형적인 F1 형식으로 변화가 시작됨.
현재의 305킬로미터 제한(모나코는 제외)은 1989년 전에는 정착 되지 않음.
마지막 500킬로미터 레이스는 1960년 몬자 대회. 10킬로미터 50랩으로 구성.
오벌 트랙을 싫어한 일부 영국 팀들이 빠지면서 페라리가 어부지리로 홈 그랑프리 우승.
필 힐의 페라리 카 승리가 F1에서의 마지막 프론트 엔진 차량의 승리 기록.
페라리는 전 해에 우승한 브랩햄의 리어 엔진 혁신에 저항 함.
1973: Last race with three cars on the front row
얼마전에 F1 레이스의 그리드 포맷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40년전에 사라진 한 줄 세 대의 그리드 포맷이 그 중의 하나.
1973 시즌의 네덜란드 그랑프에서 로터스의 페터슨, 타이렐의 스튜어트, 세베트의 트리오가
마지막 쓰리 카 그리드의 퍼스트 로우를 장식함.
이후 둘 씩 열을 짓는게 정착됨. 1980년 부터 일정 간격으로 앞뒷차의 간격이 유지되어
스타트 하는것이 정착되어 지금까지 유지 됨.
1976: Last race on the Nurburgring Nordschleife
안전을 모티브로 헤일로가 소개 된 것 처럼 같은 이유로
1970년대 시리즈에 레이싱 서킷들의 변화가 일어남.
하지만 길들여지지 않는 하나의 트랙이 있었으니
독일의 그 무서운 누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였다.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드라이버들의 파업 선언으로 그랑프리가
호켄하임으로 옮겨간 사이 트랙의 범프와 점프 지점들을 약화 시키고
22킬로미터 거리의 배리어를 설치 했다. 다음 해 레이스 복귀.
그러나, 그 크기와 속도에서 오는 유니크한 위험성은 레이싱을 어렵게 했고
긴 거리로 인해 마샬들의 고충이 심하고 비용도 많이 들엇다.
1976년 니키 라우다의 무섭고도 치명적이었던 사고 이후 롱 버전의 트랙에서는
두 번 다시 F1이 개최되지 않고 있다. 안전은 이제 최우선이라는 메세지 그 자체였다.
1976: Last race Ferrari did not enter
니키 라우다가 누르부르크링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후, 엔쵸 페라리는 그의 팀이
레이싱을 중단 할 것을 선언한다. 팀 매니저인 아우데토는 다음 오스트리아 시합이
취소 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고, 페라리는 약속대로 시합에 나서지 않았다.
F1 그 자체인 페라리의 지금까지의 마지막 결장 경기.
1983: Last non-championship race
오늘날엔 'F1 레이스'와 '챔피언쉽 레이스'가 동일한 의미이다.
그러나, 1950년에는 스코어가 없는 많은 이벤트 레이스가 있었고
타이틀 레이스 보다 더 수가 많은 경우도 있었다.
(1983년이후 모든 F1 레이스가 챔피언쉽 경기가 됨)
챔피언쉽이 중요도가 증가하고, 트랙의 필수 규정이 확대 되면서
비스코어 경기들은 줄어 들었다. 1980년대에는 3개의 대회가 있었으며
그중 스페인(1980), 남아프리카 공화국(1981) 대회는 정치적인 의도의 레이스.
마지막 비스코어 경기는 1983년 4월 브랜즈 해치 시합이었고,
윌리엄스의 케케 로즈버그가 우승.
올 시즌 중에 F1측의 로스 브런은 비챔피언쉽의 이벤트 경기를
캘린더에 포함하고 싶다는 발언을 했음.
1985: Last race with a three-car team
매 레이스에 참가해야 하는 최소 팀들의 제한과 더불어 (현재는 10팀 참가가 레이스 개시 조건임)
매 그랑프리에 두 대 보다 많은 차량으로 참가하는 것을 강제하던 것을 완화하게 됨.
'84시즌 라인업을 보면 3~4명의 드라이버 라인-업이 많이 보임.
50~60년대에 상위 팀들은 4대나 그 이상의 차들을 몇몇 라운드에
참가 시키는 것이 상식이었다.
세 명의 드라이버를 참가 시킨 마지막 팀은 1985년 독일 GP에서의 르노였고
1990년 까지는 단 한명의 드라이버 참가도 허용 되었다.
2014 쥴 비앙키의 사고 이후 마루시아 팀의 소치 대회 싱글 카 참여가 허락 됨.
1995: Last race with a full grid
1989년 39대를 정점으로, 비용 증가와 경제 불황으로
'90년대 초반 극적으로 그리드 수가 줄어듬. '95년 1/3로 줄어듬.
심텍의 붕괴와 함께 '95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그리드는 캐파 26 밑으로으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최후의 풀 그리드 레이스가 되었다.
2006: Last race with different engine formats and tyre suppliers
2006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모두의 눈은 은퇴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알론소의 시즌 챔프를 막기 위해 분투하던 슈마허에 모아져 있었다.
2위를 한 알론소는 타이틀을 거머 쥐었고, 혼전 가운데 슈마허는 4위를 기록.
슈마허는 그의 브릿지스톤 타이어를 타고 있었는데, 미쉘린과 함께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일본 회사의 타이어는 정말 경쟁력이 있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FIA는 싱글 서플라이어 체제를 선언했고 이 시스템은 아직까지 유지중이다.
당시는 V8 엔진이 규정이었지만, 토로로소에게는 구스펙의 디튠된
V10이 허용 되었다. 물론, 한시적 조치.
2009: Last race with refuelling
F1 초기에 팀들은 연료 재급유가 허용되어 있었다.
1982년 브랩햄의 아이디어가 히트하여 다시 유행하게 됨.
다음 해, 금지 되었다가 11년 후에 다시 소개 되었다.( 쇼 흥행이 되고, 페라리가 우위를 점함)
재급유 장비의 운반 비용이 너무 높고, 지속적으로 안전 문제가 제기 됨.
마지막 재급유 경기는 2009년 아부 다비 그랑프리. 야노 트룰리가 42랩에 재급유를 한 것이 마지막.
현재는 연료 효율 제고가 기본 아이디어 이므로 앞으로도 재급유를 보기는 힘들것.
*오역이 있을 수 있음을 양지 하시고 읽어 주세요. 양해 바랍니다.^^
*내용 누락이 있었네요. 추가 했습니다.
마치 2010년대 초반 오리주둥이 때처럼 디자인으로 여러가지로 까일꺼리로 보이는데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쩔수 없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