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돌아온 전장의 발큐리아의 후속작인 4편을 클리어. 먼저, 일본어판을 한정판으로 주문했지만 배송 오기까지를 못 참고
한글판을 먼저 플레이해서 엔딩을 본 후 일본어판도 마찬가지로 클리어해서 각각 1번씩 클리어.
이전에 플레이한 체험판으로 시스템면에선 90%이상 똑같아서 재미면에서 보장될거라 생각했는데 본편을 클리어하고 돌아보니
1편만큼의 카타르시스는 부족했다. 그렇게 느낀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지만 일단 시나리오가 상상 이상으로 구리다는 점.
시작부터 맛이 간 전개부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국토의 3분의 1이나 빼앗길 정도로 열세인 국가가 전 병력을 투입해서 적 수도까지 1500km를 뚫는 작전」은 이 게임
최고의 개그씬. 애초에 이 방면 게임에서 전쟁물을 기대하면 안되는 건 알고 있었다. 되도록이면 스토리의 빈약함 같은건 신경
안 쓰고 전투만 재밌으면 커버가 된다는 주의지만 진행하면 할수록 흔한 전쟁물 클리셰 범벅에, 저열한 라노벨스러운 전개가
이어져서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시나리오부터가 이렇게 엉망진창이니 캐릭터 인물 설정이 제대로 성립될리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자연스럽지 못하고 급전개로 통째로 썩둑 잘린듯한 느낌을 받는 건 전형적인 묘사
부족인데 이런 게임에서는 분량 채우기에 급급해서 일어나는 의외로 흔한 현상이다. 덕분에 적군이고 아군이고 간에
아무런 매력도 못 느끼고 특별한 인상도 받지 못한 채로 캐릭터가 죽어버려도 솔직히 아무런 감흥도 없다. 뭔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고 한 거 같기는 한데 그 수법이 너무 뻔하고 클리셰대로만 흘러가니 감정이입은 제대로 안되는 듯.
디자인 상으로는 제법 훌륭한 적군 사이드인 크라이 마리아, 니콜라, 키아라에게서 나는 아무런 감흥도 못 느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던 발큐리아 셀베리아와는 다르게 크라이 마리아는 그냥 지나가는 중보스A 같은 취급이라 인상에
남지 않는 보스. 아군 쪽 캐릭터도 카이 말고는 전부 미묘했던 게 억지로 짝 지어줄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레일리와의
갈등도 너무 빨리 해소되서 캐릭터 디자인은 좋지만 매력은 전혀 안 느껴졌다. 오히려 크라우스 볼츠가 주인공 같달까.
이런 미묘한 스토리텔링과 캐릭터는 그렇다치고 이 시리즈의 메인 컨텐츠인 전투 부분은 어떠할까.
사실 4편의 시스템은 1편의 거대한 DLC라 불러도 될 정도로 정말 기분 나쁘게 똑같이 만들어졌다. 이제까지 계속된 실패가
두려웠던 결과, 1편으로 회귀한 것인가. 개인적으로 새로 만들어서까지 망할 거라면 이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고 이 방법은
먹혀든 것처럼 보인다. 기준은 1편의 시스템이지만 기존 작품에서 호평이었던 리더 행동, 장갑차를 도입해 보병을 효율적으로
운용, 새로운 병과가 생겨 전술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한층 더 높아졌으며 여전히 전투 파트는 직접 공략 루트를 짜서
클리어하기까지의 과정이 최고의 재미를 선사해준다.
(혹시나 공략을 미리 보고 하는 플레이어라면 재미가 반감되니 처음엔 직접 클리어하길 추천한다)
게임 클리어 후의 즐길 요소도 풍부해서 유격전투가 제법 재밌음.
그렇지만 역시 10년이란 세월은 무시 못할 시간이라 이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기엔 너무 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신 게임이라면 좀 빠릿빠릿한 인터페이스가 필요한데 이벤트 대화의 템포가 너무 느리고 UI 속도가 느릿느릿한 덕분에
적지 않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새로 생긴 시스템인 쉽 오더는 생각을 안하고 만들었는지 연출 스킵이 불가능.
전투에서 자주 쓸 요소라면 당연히 스킵 기능을 넣어줘야 할텐데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쉽 오더는 굳이 쓰지 않아도
클리어하는데 지장은 없기에 거의 사용을 안했는데 때때로 스킵이 안되는 이벤트 연출 (전차 등장이라던가)이 나와서 짜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번작에선 전투 중 적과 대치한 상황에서 선제공격이 불가능하다는 점.
1편에선 랙이 발생해 타이밍을 맞춰 누르면 선제가 가능했고, 2나 3에선 연타하면 적보다 먼저 선제 공격이 가능했는데 이번엔
그게 불가능해서 굉장히 불합리한 인상을 받는다.
스토리가 초절 구린 반면에 그래도 전투만큼은 살아있어서 호평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건으로 세가에 완전히 실망해버린 게
있다. 거지같은 한정판 판매방식과 정신나간 DLC 시즌패스 가격 책정으로 이 게임의 평가를 많이 깎아내려야 할 듯.
한정판에만 들어가는 「제 7소대 합동훈련」이란 미션은 오로지 한정판을 구입한 사람만 플레이가 가능하고 PS 스토어에서
풀 생각이 없다고 한다. ...물론, 나중되면 염가판에 평범하게 넣겠지만 대놓고 한정판 사라는 괘씸한 얘기라서 짜증. 게다가
이 한정판은 어처구니없이 가격이 높은데 실제로 받아보니 내용물도 별거 없고 문제의 저 미션도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어서
기분이 꽤 더러웠다. 시리즈 팬으로서, 제 7소대 멤버를 다시 볼 수 있는 것 자체는 반가웠지만 그에 상응하는 가격인가 묻는다면
대답은 NO. 미묘하게 바뀐 모션과 표정도 좀 그렇다.
(알리시아라면 적병을 쏴 죽인 다음 해맑은 미소로 응! 이라고 해야 되는데 그것도 변경되서 슬픔)
2번째로 분노했던 건 말도 안되는 시즌 패스 가격인데 전부 해서 5000엔 정도 한다. 이 모든걸 포함하는 시즌 패스를 구입하면
1000엔 할인이라는 선심 쓰는 척하는 게 역겨움. 1편의 DLC 2배 가격이라 얼마나 대단한 걸 추가하길래 한 달만에 끝나는
시즌패스를 게임 가격에 준하는 가격에 받아먹을까 궁금해서 지금까지 나온 2개의 DLC 시나리오를 플레이 해본 결과, 요즘의
세가가 돈 밝히는 정도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분량은 좋게 쳐줘도 1편의 셀베리아 DLC 정도인데 그다지 가치있는 이야기도 아니라서 그것의 2배라는 건 납득이 되지 않음.
1편 DLC가 좋았던 이유는 그 캐릭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줌으로써 시나리오상으로도 하나가 되는 일체감이 있었던 반면에
여기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만 풀고 있어서 돈 아깝단 생각만 들고 앞으로 전개될 컨텐츠도 기대하긴 힘들 것 같다.
시스템 면에서 조금 더 다듬어서 나와야 했을 게임인데 완전 실패작은 아니니 다시 돌아온 게 이 정도라면 일단 너그럽게
다음 작을 기다려봐야 하지 않나 싶다. 다음엔 제발 이런 전쟁 놀이하는 스토리 갈아치우고 그래픽, 시스템을 많이 갈아
갈아엎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월급타면 사야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