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에피소드는 흐느끼는 소녀임!!!
내게는 두 번 째 여름방학, 여친에게는 첫번째 여름방학.
우리는 이 소중한 여름방학 속에 한가로이 여친 집 거실에 누워 독서를 즐기고 있었음. 여친의 다리 베개의 부드러운 감촉이 참 좋았음. 정말 평화롭고 둘이 같이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만끽했음. 나와 여친은 서로 장난치기를 참 좋아했음. 그래서 슬쩍 허벅지를 쓰다듬기도 했음. 그러면 여친은 내 볼을 꼬집음. 틈을 봐서 기습적으로 여친의 가슴을 검지로 찌르고 조낸 튀었음.
여친 : 야! 곰돌! 이 엉큼한 놈아!
나 : ㅋㅋㅋㅋㅋㅋ 나 잡아 봐라.
여친 : 니가 튀어봤자 벼룩이지!
나 : 악! 반칙! 책 던지지 마!
처음 가벼운 장난에서 시작해서 레슬링 저리가라 할 정도로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짐. 항상 여친과 내가 노는 패턴임. WWE를 하도 많이 봐서 서로 레슬링 기술도 잘 알고 있음. 이 싸움의 끝은 항상 나의 패배임. 연약한 여인네를 이겨봤자 뭐함? 그냥 지는 척하면서 여기저기 만지는 거지. 나 엉큼한 넘 맞음. ㅋㅋㅋㅋ 오늘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음.
나 : 아, 맞다. 말하는 거 잊어먹었네. 나 이번 주 토요일 강원도 가.
여친 : 강원도에는 왜?
나 : 친척들끼리 모여서 계곡가기로 했거든.
여친 : 재밌겠네.
나 : 재밌기는 무슨. 누나, 내 사촌동생 놈들 봤잖아. 난 걔네들 돌봐줘야 한다고.
여친 : 귀엽기만 하던데, 뭘.
나 : 귀엽기는 개뿔! -_-
여친이 할머니 장례식에 왔을 때 친척들과 대면했기 때문에 내 사촌동생들을 잘 알고 있었음. 초등학교 56학년 애들이 예쁜 누나 옆에서 잘 보이려고 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웃기기는 했음. 제발 여친 말에 복종했던 것만큼은 아니라도 내 말 좀 들어줬으면 싶었음.
여친 : 따라 가도돼?
나 : 잉? 따라오게?
여친 : 어차피 이번 주에 할 일도 없고 너 없으면 심심하니까. 게다가 네 친척 분들하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아.
나 : 누나가 온다면 모두 좋아하실 거야. 헤헤.
여친 : 그리고 혹시 모르잖아? 물귀신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는데.
나 : -_-.....
여친 : 정색하는 것 봐. ㅋㅋ
어쨌든 여친이 따라 온다면 친척들은 틀림없이 반겨줄 것임. 특히 울 큰삼촌이 가장 예뻐했음. 나야 여친이 따라와 준다면 그깟 사촌동생 놈들이 문제겠음? 그래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여친 끌어안고 난리를 쳤음. 어머니도 여친이 따라 간다고 하니 좋아하셨음. 덕분에 여친과 같이 입고 갈 옷을 사러 쇼핑도 하셨음.
계곡 가는데 옷은 왜 또 사는데요? -_-....
시간이 흘러 토요일 아침이 되었음. 이미 합류지점을 정해놨으니 우리는 그곳으로 가면 됨. 여친을 태운 우리 가족은 강원도를 향해 신바람 나게 달렸음. 과묵한 동생 놈도 여친이 동행하니 좋다고 노래까지 부름. 그래서 젊고 예쁜 처자가 있으면 여행기분이 업되는 거임. 이거슨 만고불변의 법칙임.
2시간을 달린 끝에 계곡에 도착 할 수 있었음.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친척들이 마중 나옴. 모든 친척들이 모인 건 아니고 가까운 친척들만 모인 터라 인원은 15명 정도 되었음. 이미 여친은 여전히 인기폭발임. 특히 사촌동생들이 좋아했음. 정신없는 초등학교 3인방임. 그래서 사촌동생12, 그리고 막내라고 하겠음.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바로 이 막내 녀석임.
나 : 누나야, 정신없지?
여친 : 아니. 다 귀여운 애들인데. 말도 잘 듣고.
나 : 내 말은 더럽게 안 들으면서 누나 말만 잘 듣고. -_-. 뭐, 누나야 원래 애들은 다 좋아했으니까.
여친 : 너도 애니까 좋아하는 거야.
나 : 우씨.
하여간에 남친을 아직도 애 취급하는 버릇은 지금도 고치지 않음. 처음엔 남친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함. 그냥 누나 동생 같은 커플임. 그래도 깨소금이 쏟아지니 별 불만은 없었음. 여친이 사촌동생들을 돌봐줘서 상당히 편하긴 했음. 사촌형들은 혹시 여친 친구들 소개시켜 줄 수 없냐고 내게 부탁하기도 함.
중계료를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가 졸라 욕먹었음. ㅋ
계곡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면적이 넓고 컸음. 깊지 않고 적당한 수온이었기에 물놀이하기엔 아주 최적이었음. 게다가 별로 유명한 곳이 아니어서 놀러온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가 전세를 낸 것 같은 기분도 들었음.
이미 수영을 신물 나게 했던 나는 물고기 잡는 것에 관심을 돌렸기에 족대를 들고 여기저기 물고기 있을 만한 곳을 쑤시며 다녔음. 여친도 사촌동생들을 데리고 내 뒤를 따라다녔음. 근데 잡힌 건 별거 없음. 작은 송사리 정도?
나 : 우씨. 잘 안 잡히네.
여친 : 잘 좀 해봐.
나 : 좀 큰 것 좀 잡혀봐야 재밌을 텐데. 어? 뭔가 걸렸다?
여친 : 뭔데?
나 : 오메, ㅅㅂ 뱀이다!
수풀 쪽을 들쑤시다가 내 족대에 걸린 것은 다름 아닌 물뱀이었음. -_-! 아직도 이때 식겁했던 기억이 남. ㅋㅋㅋㅋ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귀신과 뱀임. 나 아직도 뱀 보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림. 혐오증이 장난이 아닌 것임. 가뜩이나 싫어하던 물뱀이 족대 안에서 난리 브루스를 췄으니 졸라 놀래서 그대로 족대까지 내다버림.
여친도 나만큼이나 놀라서 쉽사리 다시 계곡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음. ㅋㅋㅋ 귀신같은 것을 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여자가 뱀 때문에 하얗게 질린 모습이 어찌나 재밌었는지 모름. 내가 자꾸 웃어대니까, 화가 난 여친이 포풍 꼬집기 신공을 발휘함.
여친은 화가 나면 마구 꼬집음. 덕분에 키스 마크 같은 것이 내 몸 곳곳에 생겨났음. 난 형들에게 이거 키스마크라고 구라쳤다고 여친에게 걸려서 또 꼬집혔음. 큰삼촌은 왜 뱀을 놓아 줬냐며 도리어 날 야단쳤음. 이 아저씨는 뱀술을 무척 좋아해서 지나가다가 뱀 보이면 환장하는 사람인 걸 잠시 잊어 먹었음. -_-;
물뱀 때문에 계곡에 쉽게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뭇에서 노는 것도 재밌음. 어머니는 이모들하고 화투판을 벌였고 아버지와 작은 이모부들은 수영하면서 노셨음. 큰 삼촌과 작은 삼촌만이 부채를 들고 한가롭게 바위에 걸터앉아 소주를 드셨음.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일가의 평범한 계곡물놀이임.
나 : 어? 얘 어디 갔어? 누나야, 막내 못 봤어?
여친 : 분명히 따라왔었는데. 어디로 갔지?
이 막내 녀석이 없어진 걸 뒤늦게 알아차렸음. 여친도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사라진 것 같았음. 나와 여친은 당황했음. 혹시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까 싶어 여기저기 뒤지고 다녔음. 하지만 아무데도 안 보임. 계곡은 조심하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곳이었기에 내 머릿속은 경고음이 심각하게 울렸음.
여친 : 잠깐만.
나 : 왜?
여친 : 이 근방에 뭔가가 있어.
나 : 뭐? 뭐가?
여친 : 물귀신은 아닌데. 귀신같은 것들이 많이 있어.
나 : 뭐야? 혹시 그게 막내를 해코지 한 거 아냐!?
평소 같으면 기겁할 일이지만 지금 막내가 없어져서 그를 경황이 없었음. 여친이 앞장을 섰고 일단 나는 사촌동생12를 어른들에게 보냈음. 계곡을 건너니 상당히 울창한 수풀이 나옴. 그리고 커다란 나무에 가려져 있던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음. 집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음. 짓다가 만 공사현장과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임.
여기저기 부서진 잔해와 바람에 흔들거리는 파란 공사현수막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음. 창유리도 없었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마치 뭔가가 불쑥 머리를 내놓을 것 같았음.
이 모든 모습이 너무 음산하고 불길해 보여,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음. 등골에 서늘한 게 이건 분명 이곳에 뭔가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경고였음.
여친 : 내 예감이 맞았어.
나 : 예감?
여친 : 사실 네가 계곡에 간다고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거든. 결국 내 예감대로 굉장한 곳이 나왔네.
나 : 그렇게 굉장한 곳이야?
여친 : 아직 이곳에 사는 귀신들의 실체가 확실치는 않지만 막내가 이곳에 있는 건 분명해.
나 : 그럼 빨리 데리고 나와야지!
내가 비록 겁이 많은 놈이었지만 귀신 따위 보다 막내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음. 미우나 고우나 어렸을 적부터 돌봐주었던 막내 녀석이 해를 당하기라도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임. 여친과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음. 안은 시멘트 먼지 투성이었음. 너무 조용했기에 나와 여친의 발자국소리가 크게 들렸음.
나 : 진짜 장난 아니게 서늘한 곳이네.
여친 : 여기 사는 귀신들이 우리보고 나가라고 경고하고 있어.
나 : 여기 진짜 귀신의 집인 거네.
여친 : 집이기 보다는 소굴이라고 해야 될 정도야.
귀신에게 눈 하나 까딱하지 않던 여친답지 않게 몹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음. 생각해보니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무기가 없었음. 벽조목은 차 안에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빨리 막내를 찾고 여기서 벗어나는 것임. 여친조차 눈에 띄게 굳은 모습이었는데 오래 있을 수는 없는 없었음. 한심하게도 여친이 앞장을 섰고 내가 등 뒤에 바싹 붙어 가는 모습이 연출되었음.
우린 귀신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 걸었음.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답답해지기 시작했음. 하지만 여친은 내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했음. 결국 얌전히 뒤를 따를 뿐임. 거실에 들어서자 방이 세 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음. 그리고 2층이 있었는데 돌계단이 너무 흉물스러워서 금세 무너질 것만 같았음. 상당히 규모가 큰 폐가임.
내가 흉가사건 이후로 두 번 다시 이런 곳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또 발을 들이게 된 게 참, 아이러니함. 어쨌든 잔해가 가득한 3개의 방을 전부 뒤져봤지만 막내는 찾아낼 수 없었음. 이제 보니 여친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음. 몹시 힘들어 보임.
여친 : 널 보호해주시는 어르신들이 아니었으면 진작 우리에게 달려들었을 거야.
나 : 괜찮아?
여친 : 속이 울렁거려. 기분도 나쁘고. 나와 상극인 곳이야, 여긴.
나 : 미치겠네.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여친 : 2층에 올라가야겠는데. 막고 있어. 올라가지 못하게.
여친은 선뜻 계단에 오르지 못했음. 하지만 아직까지 귀신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나는 용기를 내서 먼저 앞장을 섰음. 계단을 오르는 순간 현기증이 일어나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음. 귀신이 생기를 빨아들인다는 말도 있는데 진짜 같기도 했음. 그러다가 불쑥 내 발목을 잡는 무언가가 있었음.
사람 손이었음.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한 손 하나가 내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었음. 비명이 절로 튀어나오려는데 여친이 내 입을 두 손으로 막았음. 순간 헛바람 때문에 숨이 막히는 줄 알았음.
여친 : 소리 지르지 마. 무시해. 절대 관심을 가져선 안 돼.
나 : 으으.
진짜 사람이 잡은 것처럼 생생한 감촉이 발목에서 전해져 오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무시해야 하는지 몸이 너무 굳어서 어찌 할 수가 없었음.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에 용기를 내서 계단 하나하나를 밟고 올라갔음.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음.
2층은 더욱 심했음.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내부는 엉망진창이었음. 적막한 공간. 먼지 냄새와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가 공포감을 자아낼 정도로 이곳은 보통 공간이 아니었음. 1층보다 훨씬 소름끼치고 온 몸에 털이란 털이 모두 곤두선 것 같았음.
여친 : 무언가를 찾고 있어.
나 : 뭐?
여친 : 여자아이 귀신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그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어. 게다가 이 여자아이의 기운이 밑의 귀신들보다 훨씬 강렬해.
나 : 혹시 말이야 막내를 찾고 있는 거 아냐? 숨바꼭질처럼?
여친 : 그런 것 같아.
나 : 그 귀신이 막내를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헛!?
순간 작고 검은 실루엣이 낸 눈앞을 스쳐 지나갔음. 하마터면 주저앉을 정도로 깜짝 놀랐음. 비명을 지르기 전에 내 스스로 입을 막았으니 비명은 세어나가지 않았음. 아찔한 순간이었음. 여친은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는데 2층에는 그 여자아이 귀신이 유일하다고 함. 하지만 1층의 귀신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음.
여친 : 일단 우리가 먼저 막내를 찾아야 돼.
나 : 헌데 어디에 숨은 거지?
여친 : 내가 그 아이라면. 아마도 저기에 숨었을 것 같아.
여친이 손가락을 가리킨 곳은 파란색 공사용 천이 어지럽혀져 있는 방의 구석이었음. 그 구석에는 천에 뒤덮인 시멘트 포대가 쌓여져 있었음. 그때 검은 실루엣이 우리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는데 여친은 내 손을 꼭 붙잡고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했음.
몇 분 정도 지나자 그 검은 실루엣이 다시 방에서 나갔음. 그 순간 여친은 재빨리 시멘트 포대에 덮여진 천을 걷어냈음. 여친의 예상대로 그 포대 사이에 막내가 숨어 있었음. 막내는 우리가 나타난 것에 매우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음.
나 : 막내야!
막내 : 어? 형. 누나. 어떻게 찾은 거야?
여친 : 얘기는 나중에 하고 어서 빨리 나가자.
막내 : 왜? 여기서 놀건 데.
나 : 이런 곳에서 어떻게 논다는 거야?
막내 : 하지만 그 여자애하고 놀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나 : 여자애?
순간 나와 여친의 시선이 교차했음. 나는 직감적으로 더 이상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막내를 안아들려고 하는데 막내가 내 손을 피하여 문 쪽으로 달려갔음.
막내 : 미안해. 형하고 누나가 날 먼저 찾았네. 우리 다시 하자.
와, 진짜 막내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보고 그런 소리를 하니 미치고 팔짝 뛰는 줄 알았음. 난 침착하게 다가가 막내를 들어 올렸음. 막내의 몸집이 또래 비해 비교적 작기 때문에 쉽게 안아 들 수 있었음. 난 최대한 막내가 불안해하지 않게 그 여자애가 보이는 척 하면서 말했음.
나 : 막내야. 여기서 계속 놀면 어른들이 걱정 할 거야. 그러니까, 다음에 같이 놀아. 알았지? 특이 이모님이 걱정하니까.
막내 : 같이 놀기로 약속했는걸.
나 : 이 애도 이해할 거야. 자자, 먼저 간다고 인사해야지?
막내 : 응. 알았어. 약속 어겨서 미안해. 나 먼저 갈게.
그 순간 공기가 급변하는 것을 느꼈음. 지켜보고 있던 여친이 다급하게 외쳤음.
여친 : 빨리 뛰어!
마치 용수철이 된 것처럼 난 순식간에 튀어나왔고 계단을 거의 뛰다시피 하며 내려갔음. 여친의 고함소리가 뒤에서 계속 들려왔음. 난 그저 막내를 안고 앞만 보며 달렸음. 진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것 같았음. 여친이 잘 따라오나 뒤를 돌아보려고 했는데.
여친 : 절대 뒤 돌아 보지 마! 앞만 보고 달려!
와, 진짜. 그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무서웠음.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어느새 계곡에 당도했음. 일단 계곡을 건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막내를 내려놓았음. 숨이 차서 진짜 죽는 줄 알았음. A네 집 골목길에서 뛴 이후, 이렇게 심장이 터질 정도로 뛴 건 오랜만이었음.
막내 : 형. 누나가 안 왔는데?
나 : 뭐!?
돌아보니 막내 말대로 여친이 없었음.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튀어나오는데 특히 내가 여친을 버리고 도망 나왔다는 수치심이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음. 이건 귀신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님. 내가 한순간에 형편없는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음.
나 : 막내야, 넌 어서 어른들 있는 곳으로 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거야. 알았지?
막내 : 응.
막내를 보내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그 집으로 달려갔음. 제발 무사해 달라고 빌면서 당도했는데 여친이 그 집 앞마당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음.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나는 축 늘어진 여친을 사력을 다해 들쳐 메고 다시 미친 듯이 달렸음. 절대로 뒤 돌아 보지 않았기에 뒤쪽 상황이 어떤 줄 모르겠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여친의 상태였음.
여친 : 곰돌아?
나 : 어? 괜찮아? 정신이 들어?
여친 : 어. 괜찮아.
나 :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계곡을 거의 건너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엎어져 버렸음. 긴장이 풀리니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거임. 진짜 사람이 한순간에 무기력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음. 여친이 괜찮은 것에 정말 안도하고 또 안도했음. 만약 여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나 진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를 일임.
여친 :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 : 정말 다행이야. 나, 누나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여친 : 괜찮다니까.
나 : 휴. 그런데 그 귀신, 쫓아오지 않았지?
여친 : 아니. 건너편에 서있어.
여친의 말에 건너편으로 고개를 돌렸음. 검은 실루엣이 아른거리더니 끝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음. 백주대낮 한가운데에 당당히 햇빛을 받고 서 있는 새하얀 원피스의 작은 소녀였음.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틀림없이 웃고 있는 것이 분명했음. 왜 이제야 내 눈에 보인 건지 모르겠지만 내 속이 다 뒤집히는 것 같았음.
나 : 이 ㅅㅂ! X새끼야! 당장 꺼져버려!
화가 난 나머지 난 그 여자아이 귀신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음. 온 계곡에 울려 퍼질 정도로 쩌렁쩌렁한 소리였음. 아니, 근데 이 망할 귀신 년이 갑자기 소름끼치게 흐느끼는 게 아니겠음? 그것도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마치 내 옆에서 우는 것처럼 아주 선명하게 들려왔음.
흑.. 흐흑... 흑. 흑흑.... 흐흑....
진짜 더는 못 들어 주겠다 싶어 여친과 같이 그곳에서 벗어났음. 어느 정도 벗어날 때까지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음. 미치고 환장하는 줄 알았음. 여친은 매우 피곤한지 힘이 없어 비틀거렸음. 그래서 여친을 부축하고서는 어른들이 있는 곳으로 무사히 돌아왔음.
막내가 없어진 것 때문에 난리가 났었는데 다행히 막내가 돌아왔으니 진정이 된 것 같음. 나와 여친은 그 집과 여자애에 대해서는 함구했음. 막내에게도 신신당부했지만 솔직히 꼬마 놈의 입이 가만히 있을지 믿을 수는 없었음. 하지만 그런 데로 약속은 잘 지킨 모양임.
동생 : 근데 형. 표정이 왜 그래? 꼭 한 달 동안 똥 싸지 못한 것처럼.
나 : 속편한 새끼 같으니.
동생 : 뭐야? 싸우는 자는 겨?
나 : 그래, 싸우자!
그렇게 동생 놈하고 수중 레슬링+격투기를 하며 분을 풀었음. 처음에 더럽게 무서웠지만 여친이 혼절한 것에 무척 화가 났음. 그것도 지켜주지 못하고 살겠다고 도망쳐 나온 것이 정말 부끄러웠음. 여친은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괜찮지 않았음.
여친은 그런 나를 감싸 안아 주었음.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그렇게 밤을 맞이했음. 그 동안 나는 이 정신없는 삼형제를 철저히 단속했음.
차들를 방벽처럼 주차해놓고 그 안에 둥글게 텐트 다섯 개를 쳤음. 어른들하고 사촌들은 술판을 벌이며 왁자지껄 속편하게 마시며 놀았지만 여친은 텐트 안에서 잠을 잤고 나는 사촌동생12와 막내를 곁에 두어 절대 따로 행동하게 하지 않게끔 감시를 했음. 다른 사람들은 참 재밌던 밤이지만 난 전혀 재미도 없었음. 그 망할 귀신 년이 막내를 언제 꾀어낼지 몰라 전전긍긍했음. 신경이 날카롭게 섰으니 당연히 심하게 피곤했음.
나 : 너희들은 나하고 자는 거다.
막내 : 왜? 엄마랑 잘 건데.
사촌동생1 : 오늘 형, 이상하네. 아까부터 계속 감시만 하고.
사촌동생2 : 그러게. 더 놀고 싶었는데.
나 : 여친하고 같이 잘 거니까, 잔말 말아라.
여친하고 같이 잔다니까, 좋다고 왁자지껄이었음. 하여간에 조그마한 녀석들이 밝히기는. 그래서 텐트 하나는 나와 여친, 삼형제가 같이 쓰게 되었음. 여친과 나 사이에 이 세 명이 끼었는데 그중 막내가 여친의 품에 쏙 안겨서 자게 되었음. 원래대로라면 저 포근한 품에 안겨서 자고 있을 사람이 나였는데 말이지. -_-....
되도록 잠을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게 솔직히 사람 마음대로 되겠음? 결국 나도 잠을 잤는데 새벽인가? 갑자기 내 귀에 그 망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음. 순간 뭔 소린가 싶어 귀를 기울였는데 바로 낮에 들었던 그 ㅅㅂ년의 울음소리였음.
흐흑.... 흐흐흑... 흑흑. 흐흑... 흑...
와! 시발! 뉘미! 좇도! 등등 별의별 욕이 내 입에서 다 튀어나왔음. 여친 쪽을 보니 막내가 없었음. 그것을 깨닫기까지 한 10초는 걸렸던 것 같음. 진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순식간에 텐트 밖으로 튀어나왔음.
진짜 맨발에 미친 듯이 뛰었는데 저 멀리 검은 계곡 물 속으로 막내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음. 거긴 깊은 곳이 아니었기에 빠져죽을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 건너편이 바로 그 귀신 소굴이었기 때문임.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아주 무서운 장면이 있었는데 그 귀신 집으로 통하는 길목 사이사이로 뻗은 그 참나무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마구 흔들렸음.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흔들흔들 거리는데 내가 잠시 착시현상 때문에 잘못 봤나 싶을 정도였음.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음.
난 서둘러 막내를 붙잡았고 밖으로 끌어내려고 했음. 그런데 그 망할 귀신 년이 흐느끼면서 막내의 한쪽 팔을 잡는 게 아니겠음? 막내의 양팔을 붙잡고 나와 귀신 간에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이 연출 된 것임. 진짜 난 사력을 다해 막내를 지켰는데 이 귀신 년은 포기하지 않았음.
달이 매우 밝았기에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구멍이 뚫린 것처럼 두 눈이 없었음. 흡사 자유로 귀신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는데 진짜 소름끼쳐서 막내의 팔을 놓칠 뻔했음. 그러나 끈질기게 버틴 끝에 귀신은 사라졌고 난 재빨리 막내를 안고 밖으로 나왔음.
내가 시발, 다음번엔 절대 이 근처에 오지 말자고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겠다고 다짐했음. 세상모르게 퍼질러 자는 친척들과 가족을 보니 내가 진짜 눈물이 다 날 정도였음. ㅅㅂ! 이따위 세상! 내가 여친 대신 귀신과 싸워가며 막내를 살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아주 퍼질러지게 자는 구나!
의식을 잃은 막내의 젖은 몸을 대충 닦아주고 다시 텐트에 눕혔음. 그날 나는 밤을 세며 텐트 곁을 지켰음. 이제 또 나타나면 정말 한바탕 할 각오였음. 다행히 그 귀신은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음. 그 흐느끼는 소리는 정말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나를 위로한 건 여친 밖에 없었음. 이럴 때는 부모님이고 동생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음. 내 고생을 알아준 여친의 품에 안겨 꺼이꺼이 울었음. ㅠ_ㅠ. 내가 진짜 놀러왔는데 이런 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서러웠음.
여친 : 도움이 못 되서 미안해. 잔뜩 고생만 시켰네.
나 : 됐어. 누나만 날 위로해 주면 돼. 솔직히 누가 믿겠어? 간밤의 일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막내를 두고 귀신하고 쟁탈전을 벌이다니. 내가 생각해도 진짜 웃긴 일이야.
여친 : 그래도 막내를 지켜냈으니 다행이잖아.
막내를 지켜낸 것은 정말 다행이었지만 이놈은 이때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자기 목숨 구해준 사촌형님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 4가지 없는 놈으로 성장했음. 그때 그 팔을 그냥 놨어야 했는데. 라고 가끔 말하면 이 녀석은 내가 헛소리 한다고 투덜거림.
텐트를 정리하고 주변을 청소하는데 난 궁금해서 막내에게 그 여자애와 어떻게 만났는지 물어보았음. 막내는 여친 뒤를 따라다니다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함. 그래서 형들에게 여자애가 울고 있다고 말했으나 이 두 놈이 동생을 쿨하게 무시해버림.
결국 막내 혼자 떨어져 나갔는데 문제는 여친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임. 내가 워낙에 재밌게 족대 질을 했었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하심. 근데 왜 내 눈을 피하는 겨? 결국 우리들의 무관심이 막내의 위험을 초래한 것임. 여친은 예감까지 했으면서. 더 따졌다가 꼬집힐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만뒀음.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계곡을 볼 수 있었는데 앞 차에 타고 있던 막내가 갑자기 창문을 열더니 그 귀신 집이 있던 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음. -_-...... 슬쩍 보니, 그 귀신 년이 우리를 향해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음.
다음에 오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처럼.
하지만 이후로 우리 일가는 두 번 다시 이 계곡을 찾지 않았음. 아이러니 하게도 3주 뒤에 한반도를 강타한 무시무시한 태풍 매미에 의해서 이 일대가 완전히 초토화 되어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음.
아직도 그 집이 그대로 있는지 궁금했지만 절대 찾아가는 일은 없었음.
여친은 이때를 생각하면 꽤 무서웠다고 솔직히 말 할 정도였음. 나도 무섭긴 했지만 이제까지 겪어왔던 가장 무서운 사건 베스트5에 들진 못했음. 하지만 태풍 매미의 힘은 귀신 따윈 발가락에 때만도 못할 정도로 진짜 엄청났음. 진짜 살아생전 이따위로 무서운 태풍은 현재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을 정도임.
최근에 왔던 곤파스는 그냥 커피임. -_- 바람만 강력할 뿐.
흐느끼는 소녀 에피소드는 이것으로 끝임.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어지는 것에 톡커님들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첫 글을 썼을 때는 일거리가 별로 없어서 심심풀이로 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이번 달 들어 일거리가 터져 나왔고 주말만 되면 여친이 놀러 나가자고 해서 쓰기가 매우 쉽지 않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