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티 벨 ~쇼팽의 꿈~ : 레프리제 / 이터널 소나타 (トラスティベル 〜ショパンの夢 〜 ルプリ ーズ / Eternal Sonata)
플레이 시기 : 2009년 1월
플레이 타임 : 1회차 34시간. 전체 약 50시간.
트러스티 벨 -쇼팽의 꿈- 레프리제, 트라이 에이스에서 독립한 트라이 크레셴도에서 제작한 게임입니다. 우리나라엔 일어판이 정식 발매되었으며, 북미, 유럽쪽엔 이터널 소나타란 이름으로 일어/영어 음성을 모두 포함해서 발매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제가 플3을 구입하고 처음으로 플레이한 RPG로 제겐 꽤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 게임인데, 일단 게임 내적인 모습에 대해 다루기 전에 그 여러가지가 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면..
첫째로는 현세대기로 플레이해본 최초의 RPG란 점.
이 게임은 현세대기 초기 2007년에 처음 발매된 게임이지만, 최소한 미려하고 동화적인 연출이란 점에선 아직도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로 훌륭한 그래픽을 보여주는 물건이라 현세대기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실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로, 지역코드 조건을 초월해 플레이한 최초의 '북미판' JRPG 였다는 점.
아직 일본어가 많이 약했던 시절, PS2는 아시아쪽과 북미쪽 발매 타이틀의 지역코드가 호환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들, 특히 RPG를 플레이하면서 언어 장벽 때문에 상당히 고생을 했죠.
플3을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지역코드 조건이 완화되서 일본어가 싫으면 북미판 게임을 구입해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바로 이 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그 장점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관심범위 안에선) 엑스박스 진영으로 발매되었다가 플3판으로 완전판이름 이름을 달고 이식된 최초의 타이틀로서, 제가 현세대기 중 플레이스테이션3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계기라는 점이랍니다.
플3 초기는 온갖 PS2 시절 타이틀의 멀티 플랫폼화와, 질도 양도 부족한 퍼스트 타이틀로 처참했던건 물론이고, 심지어는 JRPG들마저 블루 드래곤이니 이 트러스티벨이니 베스페리아니 스타오션이니 하며 엑스박스 쪽에 더 몰려있는 상황이었죠.
제 경우 JRPG가 주 플레이 장르이기 때문에 둘 중 뭘 선택할지 엄청나게 고민했고, 이 트러스티벨은 처음 정보가 공개될때부터 정말 관심이 많았던 작품이라 마음이 엑박쪽으로 기울던 때에 이 작품의 완전판이 플3으로 발매된다는 정보가 올라온겁니다.
물론 겨우 이 작품 하나 넘어오는 것 만으론 여전히 전체 숫자에선 비교가 안됐지만 전 이 정보를 봤을때 "이게 (엑박->플3 이식의) 시작이다!"라고 직감하고 플3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아떨어졌죠.
아무튼 완전판이란 이름을 달고 이식되면서 두 명의 (원랜 NPC였던) 플레이 가능 캐릭터와 그 둘에 관련된 짧은 시나리오 이벤트가 추가되었으고, 파고 들기 요소도 늘어났고, 색깔놀이에 가깝긴 하지만 코스튬도 추가되었으며, 무엇보다 최종보스전 구성의 변화를 포함해 전체적인 전투 난이도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갔습니다.
덤으로 아직 제작사의 플3쪽 이해도가 영 좋지 못했는지 세이브-로드의 대기 시간이 무지막지하게 길며, 그러면서 정작 세이브 파일은 RPG 주제에 여섯개까지밖에 만들 수 없다는 악화점도 존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역시나 이 최초의 배신의 주역도 뒤이은 베스페리아, 그레이시스f, 아이돌 마스터2로 이젠 이미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 있는 반다이남코 게임즈.
개인적으론 '동화적 분위기'라는걸 정말 좋아하지만 정작 이게 정확히 어떤 것이라고 설명하긴 좀 힘든 애매한 개념이죠.
하지만 설명하긴 힘들어도 이번 세대에서 그 동화적 분위기를 가장 잘 살려낸 게임으론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따라올 게임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연출로는 개인적으론 2D 게임 중에선 쯔바이!!를 최고로 치는데, 3D 게임 중에선 바로 이 작품에서 그런 감동을 느꼈지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최초 엑박360 발매는 2007년 6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게임인데도 이 게임의 그래픽은 지금 봐도 훌륭한 수준입니다. 표현이 비슷한 테일즈 현세대기 세 작품, 최신작인 엑실리아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질 않아요.
조금 칙칙한 산맥이나 늪지대같은 필드, 던젼을 제외하고는 정말 게임 플레이 하는 내내 감탄할 정도. 과장하자면 게임을 시작해서 클리어 할 때까지 모든 장면이 스샷감입니다.
덤으로 때론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때론 웅장하기도 한 BGM 역시 OST로 따로 놓고 들어도 버릴게 없을 정도인데다 실제 게임 내에서의 장면과도 정말 잘 어울려서 게임 분위기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진행은 마을-필드-던젼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RPG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전투는 심볼 인카운터로 이루어지고 세이브는 지정된 세이브 포인트에서만 가능합니다.
게임에 미니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긴 하지만 그나마 극초반의 던젼 하나를 제외하면 크게 구성이 복잡한 맵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렇게까지 크게 문제되진 않습니다.
단, 자유도라곤 눈꼽만큼도 없어서 일반적으로는 스토리가 진행되면 이전의 필드로 돌아가는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숨겨진 요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공략을 보면서 플레이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NPC 한명 한명, 맵 구석구석을 잘 살펴야합니다.
기본적인 전투 시스템은 실시간과 턴제를 섞어놓은 형태를 띠는데, 각 캐릭터와 적들에게 시간 게이지가 주어지고 이 게이지는 '기본적으론' 플레이어가 이동, 공격, 기술, 아이템 사용 등의 행동을 하면 하면 소모되며 게이지가 바닥나면 다른 개체의 턴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공격 형식은 대부분 개별 근접 공격이지만 캐릭터에 따라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기도 하며, 기술의 경우 공격 외에도 회복이나 버프/디버프 효과가 존재하기도 하며 일반 공격으로 콤보 수치를 누적시킬 수록 강력해집니다.
전투가 끝나면 경험치를 배분받으며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캐릭터에게도 경험치가 돌아가기 때문에 파티 멤버의 구성은 상당히 자유로운 편입니다.
전투에 대해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우선 적을 정확히 타게팅 했다고 알려주는 표시같은게 없고 그저 눈으로 봐서 확인해야 하는데, 카메라 움직임이 자유가 아닌지라 시야가 애매해지는 상황이나 캐릭터를 너무 멀리 잡아주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적이 아니라 허공에다 헛손질을 하게 되는 상황을 꽤나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남은 체력이나 속성 등 적에 대한 정보를 전투 화면에서 전혀 얻을 수가 없어서 전투, 특히 보스전에서 언제 회복을 하고 언제 몰아쳐야할지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이 게임 전투의 특징으로는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파티 레벨, 양지와 음지, 하모니 체인, 그리고 가드 입니다.
전투 필드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는데 플레이어 캐릭터는 양지와 음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종류가 다르며 이에 맞춰서 기술을 최소 두개 이상 장비하고 있게 됩니다.
또한 플레이어에 미치는 영향 뿐만 아니라 몇몇 몬스터의 경우 형태 자체가 변화하면서 패턴이 달라지므로, 위치 선정에도 신경써서 싸워야 합니다.
하모니 체인은 같은 공격범위에 있는 캐릭터끼리 기술들을 콤보로 사용하는 것으로 중~후반부의 보스전과 2회차 이후 플레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스템인데, 콤보가 일정 수치 이상 누적이 되면 정해진 횟수만큼 발동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파티 레벨은 위에서 설명한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전투 요소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인데, 스토리가 진행될 수록 레벨이 올라가며 높은 레벨로 갈 수록 하모니 체인 콤보 횟수 증가 등 혜택이 늘어나는 대신 행동을 하지 않고 대기하는 도중에도 시간 게이지가 소모되거나 심지어는 커맨드에 할당되는 버튼이 제멋대로 바뀌는 등 패널티도 늘어납니다.
파티 레벨이 상승해도 설정에서 이전 파티 레벨을 여전히 선택할 수는 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하모니 체인의 중요성이 엄청나게 커져서 결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높은 파티 레벨을 선택해서 재주껏 적응하는 수 밖엔 없게 되죠.
정면에서의 공격은 타이밍을 맞춰서 가드를 이용해 데미지를 줄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 가드 입력 타이밍이 엄청나게 빡빡한데다, 보스는 물론 일반 몬스터도 보통 공격 패턴이 최소한 두 가지는 되고, 모든 공격에 가드 타이밍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근데 문제는 이 게임, 엑박판에서 졸면서 플레이해도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고 엄청나게 까인 적이 있어서 그런지 플3판은 난이도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가드할 수 있는 공격은 가능한한 전부 가드하면서 플레이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습관을 들이면서 진행하지 않으면 당장 중반부터 상당히 고전하게 되며, 게다가 적들 중엔 가드가 불가능하도록 플레이어 캐릭터의 배후로 돌아가서 공격을 하는 몬스터도 있기 때문에 위치 선정이나 방향 선정에도 신경써야합니다.
심지어 2회차 이후엔 전투 관련으론 파티 레벨을 제외한 어떤 요소도 계승되지 않는데, 적들의 공격력이 엄청나게 올라가기 때문에 정말 모든 공격을 가드한다는 생각으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보스전에선 진행 자체를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프레드릭 쇼팽이 프랑스 파리에서 중병에 걸려 누워있으면서 마지막으로 꾸는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며 쇼팽은 꿈 속의 세계에서 주인공보다는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다른 인물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됩니다..
제 2의 모차르트라고 불릴 정도의 음악가였던 쇼팽의 꿈을 다루는 만큼 캐릭터나 마을 등 게임 내의 거의 모든 용어가 음악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심지어는 이 게임의 모든 장 이름은 '빗방울', '혁명', '야상곡', '영웅' 등 쇼팽의 악곡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에선 그 장에 해당하는 악곡을 들려주면서 그에 얽힌 쇼팽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게임의 세이브 슬롯이 부족해서 이벤트샷 대신 정보 화면으로 대체하긴 했는데, 아무튼 이 게임의 동료로서 여행을 같이하게 되는 캐릭터는 상당히 많은 편이며 캐릭터 하나 하나가 정말 개성있고 매력적입니다. 과장 안보태고 정말 모든 캐릭터가 마음에 들기 때문에 전투 때 쓸 캐릭터 세명을 고르는 것도 무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플레이 가능 캐릭터는 물론 왈츠 백작을 포함한 여러 악당 캐릭터도 비록 하는 짓 때문에 정은 안가지만 설정이나 디자인이 상당히 잘 되어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캐릭터들을 잘 만들어놓고, 그렇게 신선한 소재를 사용했는데도 스토리의 완성도는 제가 이번 세대 플레이해본 RPG 중 최하위라 느낄 정도로 엉망입니다.
표면적인 스토리는
'꿈 속의 세계로 들어온 프레드릭 쇼팽이 마법의 힘을 가졌지만 그 때문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소녀 폴카와 만나 마을을 나서고, 왈츠 백작의 과세 정책에 항의를 하러 길을 나선 소년 알레그레토와 비트를 만나 함께 같은 목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는다'
라는 평범한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이런 평범한 스토리조차 제대로 풀어내지 못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캐릭터들 사이 관계의 묘사부터가 쇼팽과 폴카 사이의 이벤트를 제외하면 굉장히 부족하고, 인물들의 논리가 엉망이라 행동에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엔딩에선 캐릭터 각각, 혹은 서로 좋은 분위기를 만든 캐릭터 사이 이야기의 결말도, 일행이 이루려던 목적의 성취 여부도, 최종보스전 이벤트 후 달라진 세상의 모습도 전혀 보여주질 않습니다.
게임 전체를 관통하는 메인 스토리쪽은 문제가 이것보다 더 심각한데, 이야기 자체의 구성도 왜 이런 형식을 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형식을 띠는데다, 그냥 게임만 플레이해선 전체 스토리를 어지간해선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게임 내에 힌트나 복선이 부족하며, 이야기의 결말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두 인물의 행동은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이 부족합니다.
마음만 같아선 정말 스토리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링하면서 하나 하나 지적해보고 싶은데, 일단 스포일링 없이 쓰려고 마음먹은 글이라 그건 다음 기회로 넘기겠습니다.
아무튼 이 게임의 스토리는 신선한 소재, 잘 만든 캐릭터, 아름다운 세계관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살리는 것이 없으며 도대체 게임의 주제가 무엇인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는 최악의 구성을 보여줍니다. 정말 말 그대로, 죽기 직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환자의 머릿속을 잘 나타내는 스토리랄까요.
정말 스토리 하나를 제외하면 캐릭터도, 그래픽과 음악이 합쳐진 분위기도, 조금 까다롭지만 적응되면 굉장히 재미있는 전투도 모두 마음에 들지만 RPG를 평가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스토리가 심하게 엇나간 작품이라 절대로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트라이 크레셴도는 이후에 위로 '프레자일 -안녕, 달의 폐허-'라는 특이한 작품을 만들었다가 영 재미를 못보고 한동안 관심에서 사라졌다가, 최근에 디지몬을 소재로 PSP 게임을 하나 낸 것 같더군요. 프레자일 저 작품 자체도 분위기 하나만큼은 정말 마음에 들어서 기종 문제로 플레이 할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쉬웠는데 말이죠.
이터널 소나타도 괜찮은 작품이지만 워낙 결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작품이기에 뭔가 이걸 더 다듬은 신작을 보고 싶었는데, 프레자일 이후의 행보를 봤을 때 이 회사에선 그런 게임을 더이상 기대해볼 수 없을것 같아 슬프군요.
그저 그게 언제가 됐든, 언젠간 다른 게임에서 '동화적 분위기란' 면으로 이 게임을 뛰어넘는 작품이 나오길 기대할 뿐, 그리고 그 때까진 제게 있어 이 게임은 그런 분위기를 가장 잘 연출한 게임으로, 때문에 충분히 플레이한 보람이 있는 게임으로 기억될겁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사족 하나를 덧붙이면, 이 게임은 영어 음성이 더 훌륭합니다. 다른 캐릭터도 다 괜찮지만 특히 프레드릭 쇼팽만큼은요. 딱 하나, 왈츠의 음성이 일어 음성과 컨셉 자체가 달라서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만한데, 일본쪽은 변성기 안지난 머리좋고 냉정한 소년 군주란 컨셉이라면, 영어 음성쪽은 변성기 지나고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며 이기적이고 더러운 성질을 자랑하는 청소년 군주라는 느낌. 연기 자체는 영어 음성쪽도 충분히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