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위에 잘 눌리는 체질입니다.
가위에 눌리면 손이나 발을 움직여서 가위를 푸는데,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면
나중에는 [그래 난 잠이나 자련다] 라는 심정으로 포기하고 잠이 들어버립니다만,
친구네 집에서 가위 푸는 걸 그만두고 잠을 자다가 호되게 눌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고등학교 동창 중 혼자 사는 친구가 한명 있는데, 주위에서 우스개 소리로
두집살림 하냐는 말을 할 정도로, 서로의 집에서 이삼일 묵어가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날은 제가 친구네 집에서 지냈었는데, 친구보다 늦게 잠이 든 저는 친구가
낮에 학교에 간 사이에 친구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베개를 높게 베고 자는 저이기 때문에 친구 베게와 제 베개를 두개 겹쳐 놓고
대자로 몸을 뻗고 자고 있는데 가위에 눌리기 직전의 몸이 가라앉는 듯 한 기분이 들어서
처음에는 손을 움직여서 풀었습니다만...
매우 졸렸기 때문에 한두 번 푸는 와중에 참을 수 없이 졸려서 가위고 뭐고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몸에 느껴지는 견디기 힘든 압박감과, 귓가에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들에 정신이 든 저는 일단 가위를 풀고 세수를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움직였지만, 여느때와 달리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든
압박감에...아 뭔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몸을 힘껏 비틀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쓰윽하고 방바닥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버리는
몸과 오른쪽 손에 느껴지는 땅 속과도 같은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에 깜짝 놀라
파드득 몸을 떨며 눈을 떴습니다. 저는 잠들 때와 같이 대자로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반쯤 유체이탈 해서 땅 속을 파고 들었던 걸까요?
그리고 다음날. 집에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버스가 끊겨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친구네서 잔 저는, 아침일찍 학교에 가는 친구를 배웅하고
어제와 같은 자세으로 잠 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까무룩 잠이 들려는 순간, 몸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위다! 라는 생각에 손을 움직여 풀려 했으나 생각만 들었을 뿐,
잠이 들어버린 저는 알 수 없는 꿈에서 헤메다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짜증을 내며 눈을 떴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가위에 눌린 상황임을 알아채고
어제처럼 가위를 풀려고 손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옆에서 왠 청년이 제 손목을 잡고는 [어디 가? 나랑 같이 가야지] 라면서 제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저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 청년에게 공중으로 끌려나갔는 데,
그 느낌이 저라는 껍데기에서 알맹이만 쏙 빠져나간 느낌이랄까요?
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다행히도 눈을 떴을때 익숙한 방 안의 풍경이 보여서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아까 청년에게 잡혔었던 오른쪽 손목은 이상하게도
손목 아래도 피가 통하지 않았던 듯 차갑게 식어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절대로 그 친구네 집에서 '혼자' 잠을 자지 않습니다.
친구와 함께거나, 그 친구가 잠시 길렀던 고양이와 함께 잠들면 가위는 커녕 악몽도 꾸지 않았습니다.
저도 전에 가위 심하게 눌린날 꺼져 있는 라디오가 켜져서 헤비메탈이 나오고
베개 사이에 머리가 떨어졌는데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손끝하나 못 움직이는데 그 위로 물이 막 들어와서 숨이 막히는데 진짜 죽겠다 싶어
필사적으로 일어나서 거실로 기어가서 소파위에 앉아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가위 심하게 눌리고 나면 하루 종일 피곤해요. 저는 가위 눌리면 기도쪽이 막혀 꺽꺽
숨을 못쉬는데 나중에 나이 많아서 기력 없어지면 가위 눌리다 가겠구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