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껏 이어온 이야기는 모두
주인공의 아버지(절름발이 사내)가 겪은 이야기,
지금부터 이어져 갈 이야기는
주인공이 살아온 이야기가 될 것이다. -
대게 어린아이들이라고 하면
흔히들 많이 먹고 많이 싸고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큰다고 하는데
6살 때 12kg 남짓이었다는 기억으로 볼 떄
나는 그 중에서도 유독 작으면서도
성장이 느린 편이었던 것 같다.
다소 허약한 체질이었던 기억과
또래에 비해 느릿느릿한 몸짓과 어눌한 말투,
특유의 뒷짐지는 자세로 어른들에게도 서슴없이
흐느적거리는 손짓을 썼다는 이야기로 들어보면
영락없이 애늙은이 그 자체였다는 말로 들린다.
여느 아이들처럼 노는 걸 좋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내성적이고
말이 적으면서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다.
다행인 건 한살밖에 터울이 나지 않는
형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노는 것 밖에 모르던 내게
형의 존재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나를 가장 잘 아는 이해자였던 것이다.
한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연년생 형제이니
옷은 물론이고 배움이나 생각하는 수준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공유하고 물려받을 수 있으니
형을 가진 동생에 입장에서 보면 상당한 혜택이었던 셈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이니 만큼 그런 걸 이해할 턱도 없지만
설사 자주 다투는 사이이더라도 그만큼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였으리라.
이처럼 나이 차라는 것은 인간관계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가진다.
나이차가 많아지면 서로의 생각이나 인식이
세대차에 가로막혀 원활한 소통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나의 부모도 그로부터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차는 9살이었고
잘 지내다가도 격한 다툼이 상당히 자주 있었다.
얼핏 보기엔 과거에야 그 정도 나이차는 흔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지만
첫 임신할 때 나이가 17살, 그러니까 형이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의 나이가 고1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나이에 맞지 않았던 아버지의 철 없는 행동과
나이에 비해 많은것을 담아두고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행동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내가 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절름발이 사내)와
어머니,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을 맺었고
나는 아버지를 따라 다시 도시로 상경하고
형은 어머니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할머니(절름발이 사내의 수양모)가 계신 곳으로 올라와
나는 그 곳에서 어찌 어미 가슴에 못을 박느냐며
매일같이 아버지를 붙잡고 오열하는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기껏 모은 재산도
전부 포기하고 어머니쪽에 넘겨주었고 도시로 넘어오며
힘들게 취직했던 직장도 포기했던 상태였다.
웃음이 넘쳐나던 집안이,
행복을 말하던 시간들이
눈물과 고통과 무기력의 시간으로 탈바꿈하던 순간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있는 세 식구의
좁은 단칸방에는 씁쓸한 고요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가장 먼저
입이란 건 오직 닫기 위해 뚫려있음을 배웠고
머지않아 마음의 문도 닫았다.
어머니쪽의 생활도 나름의 문제를 떠안고 있었는지
마치 평생 만날일이 없을것만 같던 형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살게 되었고
마침내 우리 형제는 어린 나이에
인생의 차가운 첫 이별의 순간과
뜨거운 재회를 경험하는 영광아닌 영광을 누린 셈이다.
비록 가족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어도
끝날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비록 어린 두 사내아이에게 어머니의 빈자리가 생겨버렸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대신하고도 남을만큼
여러 소중한 것들과 감정의 풍요를 가져다 주었다.
할머니의 존재는 우리 형제에게
이별의 아픔도 잊고 견뎌내게 할 만큼
커다란 것이었고,
기쁨이었고,
세상의 전부였다.
할머니와 영원히 함께이길 바라며
찬 바람에 거칠어진 손길에 볼을 부비며
매일매일을 온정이 가득한 그 품에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