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지않고못사는츄푸덕남편놈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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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깊이] 삶,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깊이란 - 4장 (0) 2014/12/29 AM 01:16
즐거운 때는 그 즐거움이 클 수록 언제나 빠르게 지나간다.
아버지(절름발이 사내)는 어느덧 그 때의 일을 잊고
할머니를 모시며 하루하루 기운찬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으나
아버지를 비롯한 형과 나 역시도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 형제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낙이었을 테지만
나 역시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이 인생 최대의 낙이었다.
무언가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효심을 보인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가지고 돌아오면
내심 싫지는 않으셨던 것 같은 모습에
나름 분발하고자 노력했다.

한편 고학년이 된 형은 집안의 자랑이자 학교의 스타였다.
이때의 일도 오래전의 기억이라 어렴풋이나마 떠올려보자면
당시 유행하던 IQ검사나 지능검사에서
놀라운 수치를 기록하며 학교에서 이목을 끌었고
전교1등을 놓치지 않는 반면 운동신경도 뛰어났고
배운적도 없는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초등학생이라곤 믿기지 않는 지식수준도 대단해서
학원에서는 이미 중학생을 뛰어넘었고
특별히 배우거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어도
매번 주위 사람들을 놀래킬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고작 초등학생 하나 가지고 학원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어떤 명문고에 진학시킬 것인지
의논하던 모습만 보더라도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형을 마음속의 우상 삼아 동경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질투가 나기도 했고
대단한 형에 비해 하잘 것 없는 평범한 동생이라
가끔은 패배감마저 들곤 했다.

마침 그 무렵 학교에서도 왕따를 심하게 당할때라
심적으로도 무척이나 외로운 상태였다.
대체 어딜봐서 그런 생각이 들었나 아직도 의문스럽지만
혼혈아같은 외모라고 놀림을 받거나
심한 구타와 괴롭혀대는 탓에
학교라는 곳에 아주 진절머리가 났다.

어떤날은 비오는 날 바깥에 꽁꽁 묶여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였는가 하면
어떤날은 학교 복도에서 인간다트가 되어
손에 칼날이 박히기도 하는 등
아이들 답지 못한 행동에 많이도 당하고 살았다.
여기에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형의 영재적인 재능에 열등감을 느낀 선배들마저 합세하여
학교 운동장에 묻혀서 하루를 꼬박 새운적도 많았기에
도무지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이후로도
가끔씩 수세에 몰릴 때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굉장히 예민해지거나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순간을 기점으로 형과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자신에 일에만 몰두해 자신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고 사는
내가 어떻든지 간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에 염증을 느꼈고
애초에 자신의 컴플렉스조차 버거워하는 절름발이 아버지에게
이런 현실을 얘기한 들 나아지리란 보장은 없었을 것이다.
비록 병상에 누워 계셨지만 날 이해해주고 위로해 줄 사람은
역시 할머니 뿐이다. 할머니만이 날 온전히 사랑해주고
내 아픔을 감싸안아준다. 다른 사람은 없어도 된다.
내겐 오로지 할머니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거면 된다.

그러나 왜 슬픈 예감은 좀체
비켜갈 생각을 하질 않는 것인지...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었고
머지 않아 할머니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떠나시는 길,
무엇이 그렇게도 원통한지 할머니는 도통
눈을 감지 않았다. 아버지가 야윈 얼굴을 어루만지며
할머니의 눈을 감겨드리려 했지만
할머니는 끝끝내 눈을 감지 않았다.
어른들에 말에 따르면 세상에 한이 많은 사람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30년이 넘도록 병마와 싸우면서
자식들 돌봐주신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며
이제 편히 쉬시라고 귓전에 속삭이자
할머니는 그제서야 편안히 눈을 감았다.

할머니가 떠난 이후 나는 학교에서도,
그리고 가족들과도 필요한 의사만 주고 받을 뿐
어떤 대화나 소통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닫았다.
그리고 애써 내 감정의 존재여부를 잊으려 했다.
점점 그렇게 세상의 어른들도 이해할 수 없고
가족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나 자신 조차도 모르는 스스로가 되어갔다.

내 딴에는 되려 홀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기분일때 휩싸일때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왜 그리 검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탁해보였는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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