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생활을 완전히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잔소리가 수 없이 이어지지만
내가 대학교 가고 싶어서 갔냐고
가라고 해서 간 거라고 변명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거 같다.
마땅히 별 수가 없었다. 집에서 그냥 얌전히 지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방학시즌 동안만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서 지냈는데
뜻 밖의 소식을 대학교 동기에게 들었다.
흥신소의 형님이 며칠 간 다급하게 나를 찾았고
연락이 되질 않아 찾아오셨다고 하더라.
일 안나와서 혼이 날까 무섭기도 하면서도
나는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수화기 너머로 여자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딸이 보고싶다는 말만 남기고
병원에서 칼로 손목을 수차례나 긋고
아무도 보는 사람없이 싸늘하게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번 일수 때문에 찾아갔던 집에서
그 집 가장이 고혈압으로 죽는 바람에
대신 딸내미 술집에 보내서 빚 갚고 있다는 말도 함께 전하면서
여자친구 소식 때문에 걱정스럽기도 하고
안부 물을 겸 전화한거니 불편해하지 말라면서...
쫄지말고 앞으로도 연락하면 받으라는 말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입대하고 나서 석달정도는
거의 반 폐인상태로 지냈던지라
군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을 뿐 더러
그 곳에서 바깥 생활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많은 시간을 후회와 함께 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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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닥치는 것일까...
제대를 앞두고 많은 걱정거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장조차 없는 내가 무슨수로
직장을 구하고 취직해서 자립을 한단 말인가...
누구 하나 도움받을 사람 없이 홀로 떠돌던 생각은
점차 어긋난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우선 제대한 후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일자리나 구할 수 있겠냐만은
일하지 않는 자 밥먹을 자격도 없다는데
사람답게 일하던 더러운 돈을 벌던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다만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단 필요성을 세삼 느꼈다.
제대한 후로는 형이랑도 마주치면 잘 싸우지 않게 되었고
아버지랑도 농담을 주고 받으며 사이좋게 지내는 중이었다.
아버지도 이제 조만간 재혼하실 준비중인 것 같았고
어느새 아주머니네 누나와 동생과도 가족같은 사이가 되었다.
나의 마음속엔 아직도 누나가 남아있었지만
누나가 나를 마음에 둘 리도 없거니와
언젠가 두분이 결혼하게 되면 가족이 될 지 모르고
정말로 나의 누나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좋아하는 마음은 가슴 한켠에 고이 간직해 두기로 했다.
사실 그 보다는 먼저 떠난 여자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까마득히 지난일인 양 기억속에서 흐려지고 있었음을 모르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