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에 웹툰 팬게임인 "으라차차 둥굴레차"를 제작하고 나서 한동안 푹 쉬었습니다.
(라고는 하지만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 일은 열심히 했지요)
1월 중순부터는 다음 게임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3~4개 괜찮다고 생각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모두 자체 탈락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래픽 디자인 분량과 텍스트 분량 때문이었죠.
1년동안 제작한 착한 포커에는 그래픽 외주에 5개월이 걸렸고요.
4개월동안 제작한 둥글레차는 외주 요청하신 분이 그래픽 작업을 알아서 진행해 주셨는데요.
올 해 제가 만들려고 하는 게임은 개발비용을 절약하고자 직접 그려보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래픽 작업이 많은 아이디어들은 1순위로 걸러지고 있습니다. ㅠㅠ
그래픽을 적게 쓰면서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보니 이번에는 텍스트가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다음 게임은 안드로이드/아이폰 + 국내/해외 전부를 서비스해보려는 목표가 있어서...
텍스트가 많으면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또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도 기각.
그리고 또 한가지.
회사 다니면서도 제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병이 하나 있는데...
게임 기획을 하거나 신규 아이디어를 구상하면 자꾸 큰 그림이나 스토리로만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핵심이 되는 게임 플레이나 레벨 디자인 단계로 넘어가면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되구요.
예를 들자면 - 커피 재료를 의인화하고, 내가 경영하는 커피숍까지 여행하는 게임을 만들자 - 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제주산 물과 커피 콩, 사탕수수 설탕등 커피 재료들이 전 세계에서 비행기와 배와 기차와 버스를 타고 커피숍까지 장애물들을 피해 오는 구성으로 잡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혼자 낄낄거리며 무지 재미있을거라 생각하며 공상의 나래를 펴죠)
어느 정도 아이디어가 잡히면 그제서야 실제 게임 스테이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데요.
이디오피아에 있는 커피 콩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농장에서 비행장까지 가는 것을 스테이지로 구성해야지 생각하고는
- 고전 게임인 개구리(Frog)를 바탕으로 한 "길건너 친구들"과 비슷하게 할까?
- 팩맨 스타일의 미로/도망 게임으로 할까?
- 쿠키런처럼 점프 횡스크롤 게임으로 할까?
등을 가지고 끙끙 앓다가 결국은 답을 못 내는 것을 반복합니다.
벌써 5년 넘게 이런 저의 작업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기는 쉽지 않네요.
게임 회사를 나와서 1인개발자를 시작한 계기중에 기획자로서의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마음도 컸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른 게임들을 보며 좋은 시스템, 컨텐츠들을 가져다 붙이는 건 할 수 있겠더라구요.
하지만 그것들을 통합해서 정말 재미있게 짜맞추다던지,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신이 항상 불만스러웠거든요.
결국 한 달동안 열심히 짜낸 아이디어들이 모두 기각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내기 위해 여전히 끙끙대고 있습니다.
아마 다음 게임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옛날 플래시들처럼 잠깐 보고 즐기는 컨텐츠쪽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운로드수나 평점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접고 들어가야 하는데, 자꾸 욕심이 생겨서 그게 많이 힘드네요.
1인개발자 하면서 계속 깨닫게 되는 것은 - 게임 제작이건 사업쪽으로건 욕심을 버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네요. :)
설 연휴 지내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겠네요.
올 해 가을에는 새로운 게임 선보일 수 있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