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내용은 사실 크게 어려울게 없습니다.
영화 내의 몇몇 장면들이
숨겨진 뜻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개개인이 각자 해석할 즐거움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고,
대체로 연출이 명확하고 의도가 노골적이기에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관객들 모두에게 큰 차이가 없을겁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고 풀어나가는 방식과 결말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감명깊었던 건 열차 그 자체입니다.
인류와 세상 자체의 시스템을 '열차'라는 매개물을 통해 구조적, 시각적으로
나타낸건 정말이지 감탄스러운 비유더군요.
통제되고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공간에서 그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각가의 칸이 독립된 특징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효과도 있고
전진 = 진화의 의미를 부여해 칸을 넘어설 때마다 새로운 환경을
맞이해 각각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류 진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표현법도 인상깊었으며 외부와 단절된 구조 때문에 '시스템'에 어느정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만족할만한 엔딩 역시 가능했다는 점도 훌륭했구요.
그 과정에서 빛과 어둠의 시각적 대비라거나 계급과 피계급간의 투쟁,
종교와 독재 등에 대한 우회적 비판 역시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위트있게
완급조절을 통해 노련하게 담겨있는 것도 역시 감독의 역량 덕분이겠죠.
봉준호 감독 영화의 공통적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인류애적 시각과 희망적 미래를 향한 메시지랄까요.
사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던 대로 급격한 비판과 혁명은 현상태로의 귀결을 낳기에,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 채 권력만을 탈취한다는 발상은 참 허망한 것이지요.
시스템의 기관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해도,
여전히 열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해진 선로 위를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아이들은 지배자와 시스템을 찬양하는
흡사 종교와도 가까운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받을 것이며
꼬리칸의 사람들은 사회 질서의 유지와 안녕을 위해 여전히
반복되는 비참한 삶을 강요당할 겁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권력의 교체가 아닌 그곳으로터의 탈출에 있고,
커티스와 다른 방향으로 이를 모색하던 남궁민수가 실현하려 한 방법이 이것이죠.
마지막 순간 커티스는 양팔로 여자를 끌어안는 (권력을 선택하는) 대신에
길리엄이 그 자신을 희생해 식인의 아비규환, 태초 원시사회의 혼돈으로부터
진화를 이끌어 낸 것처럼 시스템 밖으로의 탈출을 돕는 진보적인 희생을 이뤄냅니다.
개인적으로 커티스의 양자택일이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부분이었는데,
역시 봉준호 감독의 결말은 어둡게 흘러가진 않더군요...
자, 이제 인류는 마침내 긴 여행을 끝내고
반복되던 패러다임의 틀에서 벗어나
눈부시게 새하얀 순백의 신세계에 도달했습니다.
아니면 이곳은 그저 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폐허일 뿐인걸까요?
추위와 황량함에 내던져진 생존자들에게 이곳이 유토피아가 될지
열차보다 조금 더 큰 새로운 감옥이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카메라가 비추는 북극곰과 아이들의 표정은 그다지 어두워 보이진 않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