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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설국열차 감상 후기 (스포) (20)
2013/08/08 AM 08:52 |
영화의 내용은 사실 크게 어려울게 없습니다.
영화 내의 몇몇 장면들이
숨겨진 뜻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개개인이 각자 해석할 즐거움으로 남겨두면 될 일이고,
대체로 연출이 명확하고 의도가 노골적이기에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관객들 모두에게 큰 차이가 없을겁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고 풀어나가는 방식과 결말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네요.
무엇보다도 제가 가장 감명깊었던 건 열차 그 자체입니다.
인류와 세상 자체의 시스템을 '열차'라는 매개물을 통해 구조적, 시각적으로
나타낸건 정말이지 감탄스러운 비유더군요.
통제되고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공간에서 그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각가의 칸이 독립된 특징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효과도 있고
전진 = 진화의 의미를 부여해 칸을 넘어설 때마다 새로운 환경을
맞이해 각각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인류 진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표현법도 인상깊었으며 외부와 단절된 구조 때문에 '시스템'에 어느정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만족할만한 엔딩 역시 가능했다는 점도 훌륭했구요.
그 과정에서 빛과 어둠의 시각적 대비라거나 계급과 피계급간의 투쟁,
종교와 독재 등에 대한 우회적 비판 역시 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위트있게
완급조절을 통해 노련하게 담겨있는 것도 역시 감독의 역량 덕분이겠죠.
봉준호 감독 영화의 공통적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인류애적 시각과 희망적 미래를 향한 메시지랄까요.
사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던 대로 급격한 비판과 혁명은 현상태로의 귀결을 낳기에,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 채 권력만을 탈취한다는 발상은 참 허망한 것이지요.
시스템의 기관장이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해도,
여전히 열차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해진 선로 위를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아이들은 지배자와 시스템을 찬양하는
흡사 종교와도 가까운 주입식 교육을 계속 받을 것이며
꼬리칸의 사람들은 사회 질서의 유지와 안녕을 위해 여전히
반복되는 비참한 삶을 강요당할 겁니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권력의 교체가 아닌 그곳으로터의 탈출에 있고,
커티스와 다른 방향으로 이를 모색하던 남궁민수가 실현하려 한 방법이 이것이죠.
마지막 순간 커티스는 양팔로 여자를 끌어안는 (권력을 선택하는) 대신에
길리엄이 그 자신을 희생해 식인의 아비규환, 태초 원시사회의 혼돈으로부터
진화를 이끌어 낸 것처럼 시스템 밖으로의 탈출을 돕는 진보적인 희생을 이뤄냅니다.
개인적으로 커티스의 양자택일이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본 부분이었는데,
역시 봉준호 감독의 결말은 어둡게 흘러가진 않더군요...
자, 이제 인류는 마침내 긴 여행을 끝내고
반복되던 패러다임의 틀에서 벗어나
눈부시게 새하얀 순백의 신세계에 도달했습니다.
아니면 이곳은 그저 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폐허일 뿐인걸까요?
추위와 황량함에 내던져진 생존자들에게 이곳이 유토피아가 될지
열차보다 조금 더 큰 새로운 감옥이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카메라가 비추는 북극곰과 아이들의 표정은 그다지 어두워 보이진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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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노무현 대통령 단상.txt (4)
2013/06/24 PM 11:41 |
지금이야 대통령 씹는 게 ‘국민 스포츠’지만, 한때 그는 희망이었다.
그의 지지자들이 비주류이던 그를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아가 대통령으로 만드는 드라마에는 감동적인 구석도 있었다.
케네디가 TV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면,
인터넷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최초의 인물이 노무현.
그의 당선엔 역사적 의미까지 있다. 노회찬 의원의 말대로
“노 대통령의 유일한 업적은 당선된 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큰 희망을 걸었던 이들은 크게 환멸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에게 희망을 걸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들은 실망할 것도 없었다.
그 역시 미국의 명령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할 것이고, 재계와 관료들의 권고대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여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동참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민생을 파탄시키는 중요한 정책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늘 공범이었다.
사실 순수한 지표를 놓고 보자면,‘경제를 살리겠다.´는
한나라당의 구호는 무색해 보인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에 달하고, 주가지수가 2000을 넘나든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한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야 자기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나,
10년 전에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분들이
버젓이 그런 얘기 하는 것을 들으면,
그 얼굴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고 싶은 엽기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
우울한 얘기지만, 앞으로 경제가 성장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1인당 GDP가 늘어날수록 삶은 불안정해지고,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다.
때문에 올해 대선에서 누가 권력을 잡든,
삶이 크게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다.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고, 환상이 크면 환멸도 큰 법.
서민의 삶이 힘든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나아가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정책의 필연적 결과다.
별로 인기는 없지만, 노무현 정권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권위주의’를 무너뜨린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바꿔야 한다.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삽질하던 시대의 권위주의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곧 생산력이 되는 미래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계급장 떼고 토론하려 드는
대통령의 체통 없는 태도에는 평가해줄 만한 구석이 있다.
사실 대통령 씹기가 국민스포츠가 된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은 너무 서운해할 것 없다.
사실 노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무시당한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그를 향해 쏟아 부은 정치권의 험담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들은 자신을 뭐라 평가할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여야를 통틀어 노무현만 한 교양 수준을 갖춘 사람은
유감스럽지만 단 한명도 없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수준을 보라.
여당은 대통령 보고 탈당하라 해 놓고,
정작 탈당을 하니 자기들까지 덩달아 탈당하는 코미디를 연출한다.
한나라당은 삽질하던 시대의 흘러간 유행가를
경제회생의 비책이라고 내놓고 싸움질에 여념이 없다.
2007년 대선은 2002년에 비해 수준이 대폭 떨어질 모양이다.
행사장에서 피켓 들고 폭행을 하는 행각.
적어도 2002년 대선에 그런 추태는 없었다.
초기 노사모에는 건강함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을 ‘감시’하겠다는 약속을 깸으로써
노사모는 친위대 수준으로 타락해 갔다.
과거에 인터넷은 그의 가장 든든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거기서도 괜찮은 지지자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황우석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정신 나간 이들만 남아
그들 특유의 고약한 매너로 주위 사람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악감정만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의 신세가 참으로 한심해졌지만,
그는 언젠가 다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무려 6년 전에, 진중권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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