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뒤엎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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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일본이 끝장나도 우리는 행복하다 (10) 2015/02/19 PM 04:38



2010년 말, 당시 만 26세였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한 외신 기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처럼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왜 저항하지 않는 겁니까?” 당시 일본의 세대 격차에 대한 기사를 쓰던 그 기자는 심각한 고령화로 젊은이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태연한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후루이치는 명료하게 답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최악의 경기 침체 속에서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일본 젊은이들이 행복하다니? 지난해 12월 한국에 출간된 후루이치의 저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왜 일본 젊은이들이 행복한지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신간이 아니다. 일본에선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2011년 출간돼 이미 현지 언론과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온 지 3년이나 지난 책이지만 당시 젊은이들이 겪었던 문제는 지금도 거의 변함없기에 출간 시기가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올해 한국 나이로 31세가 된 저자 후루이치는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자 게이오기주쿠대 SFC연구소 방문 연구원이다. 이미 일본에서만 5권(공저 포함 10권)의 책을 썼고, TV와 신문에 활발하게 주장을 개진한다. 한국의 한윤형, 노정태나 미국의 에즈라 클라인 같은 ‘젊은 논객’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후루이치는 대체로 기자 출신인 타 젊은 논객과 달리 본분이 학자라는 사실이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사회학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 책이다. 논문을 방불케 하는 성실함은 이 책의 미덕이다. 1장부터 6장까지, 각 장 별로 주제를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와 자료를 풍부하게 인용한다. 마치 사회학 학위 논문 한 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453개에 달하는 주석만 봐도 그렇다.

저자 본인이 말하듯 “이 책에서 다룬 소재 중에 ‘특별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인터넷에 공개된 통계 자료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어 젊은이들의 현재를 연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일본 젊은이들은 왜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이상의 통찰이 담겨 있다.


그들이 행복한 이유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 민음사 펴냄 / 1만9500원
사실 ‘일본 젊은이들은 왜 행복한가’라는 저자의 문제 의식만 놓고 보면 책 전체를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선 2장, 6장만으로도 충분하다. 먼저 후루이치가 내놓은 답부터 살펴보자. 그는 일본 젊은이들이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어울려 여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생활 방식”을 취한다고 말한다. 즉 “사회라는 커다란 세계에서는 불만을 느끼지만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작은 세계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는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보기에 세상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미래를 달성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상관 없다. 어쨌든 그들은 부모 세대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때문이다. “게임기 Wii나 PSP를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 상황, 또 이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사회관계적 자본(친구, 연인 등)을 갖고 있다면,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후루이치는 말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설령 앞날이 어두울지언정 현재 그 정도 여가는 즐길 만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현재 젊은이들에게 부모 세대처럼 열심히 일해서 집과 차를 마련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설계할 전망이 있다면, 아마 대다수 젊은이는 그런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상당 부분 희생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에겐 미래가 없다. 더 바랄 만한 미래가 없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어울려 여유롭게 자신의 생활을 즐기는 생활 방식”을 택하고, 그 결과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것이 후루이치가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하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어떻게 보면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현재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니, 젊은이로서의 패기나 도전 정신은 온데간데없어진 듯하다. 기성세대도 앞다퉈 젊은이들을 비판한다. 후루이치는 ‘사생활에 파묻혔다’거나 ‘시야가 반경 2미터에 불과한 신변제일주의’라는 등 젊은이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비판도 소개한다. 이래도 좋은 걸까? 더 나은 미래를 포기한 젊은이들이 주류인 일본에 미래가 있을까?


마법에서 풀려난 젊은이들

이 책의 진가는 이 지점에서 나온다. 후루이치는 젊은이들을 향한 기성 세대의 의견에 비판적인 시각을 곳곳에서 내비친다. 후루이치에 따르면 기성세대의 비판은 1900년대 일본이 전쟁을 벌이고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젊은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 기성세대의 헛발질에 불과하다. 20세기 일본 기성세대는 젊은이를 황국의 병사로, 고도성장 사회의 소비자로, 또는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는 트렌드 세터로 부각시키면서 ‘편리한 협력자’ 취급을 해왔다. 오늘날 일본 사회가 ‘잃어버린 20년’ 속에서 크게 변하며 젊은이들이 협력자 역할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기성세대는 다시 젊은이를 일본이라는 국가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한다.

후루이치가 보기에 ‘편리한 협력자론’은 애초에 기성세대가 만든 허구였다. 오늘날이라고 그런 허구가 통할 이유는 없다. 젊은이들의 국가관을 보여주는 3장은 그래서 빛난다. ‘젊은이들이 왜 행복한가’라는 질문과는 사실상 크게 상관없음에도 이 책의 백미라고 할 만한 부분이다. 이 장에서 후루이치는 일본이라는 국가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각이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20세기 일본은 민족주의의 광풍에 휩싸였다. ‘전쟁에서 이기겠다’거나 ‘경제 대국이 되겠다’는 국가의 목적에 따라 남녀노소 모두가 일치단결했다.

경제 성장이 멈추면서 한 세기를 풍미했던 민족주의 열기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일본 젊은이들은 일본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것은 ‘일본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는 민족주의라기보다 ‘일본 붐’과 같은 것이다. 평상시 젊은이들은 일본이라는 국가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일본 내의 정치·사회적 문제에도 거의 관심이 없다. 2005년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전쟁이 일어나면 국가를 위해 싸우겠느냐’는 설문에 그렇다고 답한 일본 젊은이(15~29세)의 비율은 고작 7.7%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월드컵 경기에선 열광적으로 일본을 응원한다. 후루이치는 이를 “일본을 빌미로 한바탕 요란하게 즐긴 데 지나지 않는다”고 평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이런 분위기야말로 오히려 환영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하다’는 주장으로 시작했지만, 후루이치가 이 책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일본이 위험하다고 주장하며 젊은이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기성 세대에 이렇게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일본이 끝장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뭐?” 더 나아가 후루이치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 사라지더라도 일찍이 일본이었던 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일본’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젊은이’들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하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끝장날지 모른다고 해서 그 젊은이들이 잘못됐다고 비판하거나 행복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지금 일본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기성 세대 아닌가? 민족주의라는 마법에서 비로소 풀려난 젊은이들, 국가에 삶을 바치는 대신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택한 젊은이들을 탓하지 마라. 후루이치가 ‘행복한 젊은이’라는 주제로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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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젠 마이스터    친구신청

저는 저게 우물안 개구리 같다고 생각되네요....
행복한 바보랄까....

밥상뒤엎기    친구신청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고 가장심한축이 우리고 일본이 그나마 조금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북유럽과 호주말고는 양상은 비슷할겁니다. 북미도 이런양상과 어느정도 비슷해요

꿈이 없는건 마찬가지

그렇게 되버린거죠

절망과 꿈이없는 현실속에 젊은이들이 열심히 살면 되겠지라는 힘을 잃어갑니다.

어릴때부터 학창시절은 길었지만 대신 예전같이 순수하게 못자란탓도 크고,

그래서 걍 이거나하면서 자기위안이나 해라라는듯이 사회는 저런 문화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신기한 IT기기들을 쏟아내지요.

그나마 차라리 일본은 저런거라도 아주 많고 내수지만 우리나라는 수입이고 저런것도 없이, 주변눈치에 술로만 떼우는 젊은 청춘도 많다는겁니다 ㅜㅜ

롤링스뎅즈    친구신청

“일본이 사라지더라도 일찍이 일본이었던 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대매신[어니스트 베델]    친구신청

히키코모리..
사회적관계라.. 일본은 뭐 어린시절 친구모임등 모임이 조직화 되어있어서 그룹당 년에 몇번, 여러그룹(취미,목적,소꿉친구) 이런식으로 정해서 사람들과 만나더군요. 그럼 외롭지 않다고.. 한국도 비슷하게 변화한거 같은데.. 이런 이런느낌이 듬.. 일본처럼 잘살게 된다고 해도 행복한건 아니구나하고..
뭐... 절식남이 등장했으니 저글에서 사회적인 관계는 이미 깨진거네요.

하마아찌    친구신청

국가, 민족주의에 한계가 온거죠.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봤자 나한테 득될 게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아다만타이트    친구신청

우리나라에도 어느정도 통용되는듯하네요

비현사빈    친구신청

우리나라의 미래네요

후요    친구신청

어릴때 집도 안 구하고 전세에 차타고 놀러다닌다는 것 듣고
이해를 못했는데.. 10년 지난 지금은 이해해요.

늑대    친구신청

진짜 백번천번 공감합니다.
어릴 때 20-30대 아저씨들보면 이해가 안갔는데..
제가 20대가 되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금발의 제니    친구신청

저책을 안읽어봤지만 저 글대로라면 저 글쓴이가 바보네요.
지금 일본젊은이들이 일본이란 국가를빌미로 자기행복한대로 즐긴다고 하면서
정착 일본이 사라져도 상관없다는건 모순이죠.
아마 일본이 식민지배를 받아본적이 없어서 저러는걸텐데
최소한 한국인이면 저 궤변에 휩쓸리면 끝입니다.
예를들어 한국의정부가 없어져도 상관없다. 그냥 한국을 빌미로 즐기면되고 설령 한국은 필요없고 그냥 내친구나 지인들이랑 즐기기만해도 상관없다?
티벳같이 그땅에있는 자원만 빼먹으려하고 거기사람들이나 다른건 없어도 그만이라는식으로 중국이 강제병합해있는데 거기있는사람들은 주권없이 고통스러워합니다.
하물며 일본이나 한국정도로 국민들이 돈도있고 기술등등이 쌓여있는곳이면 그땅에 자원이 없더라도 다 등처먹으려하는나라가 어딘가에 있죠.
그게 중국이 아니어도 미국만 하더래도 바다건너까지와서 중동등을 들쑤시며 다뽑아가는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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