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어려운(?) 조선말을 단순한 자기들 음운에 맞춰서 표현했는데, 그 중에 「사라미(or 타라미)」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말 '사람'이 변해서 '조선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된거죠.
게다가 조선에 쳐들어온 시마즈가문 가운데, 大嶋忠泰(ooshima tadayasu)라는 무사가 있었습니다.
4명의 하인(小者)를 거느린 하급 무사였는데, 고향의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이번에 가신인 角右衛門이 일본으로 돌아가니, 「테루마」와 「카쿠세이」를 선물로 보냈소. 무사히 도착할 것인가.
「코카쿠세이」한사람은 딸에게 주고 싶소.
나도 전장에서 11살짜리 아이를 구해 곁에 부리고 있는데, 심히 병약해서 곤란하오.
여하튼 딸에게도 테루마를 하나 구해서 주려오.
拾左衛門衛도노에게도 하녀로 쓸 수 있는 아이를 하나 잡아 다음 선물로 보내겠소.
다만, 지금은 加德이라는 섬에서 지내니 먹는 것도 겨우라, 그 동안 수하들을 써서 잡는다면 선물로 보내고 싶소.
......
마치 출장 온 아빠가 선물을 자상히 챙기는 듯한 편지죠.
그 선물이 사람이며, 우리의 조상이라는게 섬뜩합니다.
여기서 カクセイ(카쿠세이)는 조선말 '각시'가 변한 거죠.
테루마(하인으로 삼을 수 있는 여자), 카쿠세이, 코카쿠세이는 여자를 자세히 구분한 것으로 왜군에서 널리 쓰였으나, 지금에 와선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당시 써놓은 진중 조선말 용례 중에, 「コブンカクセイボトラオラ(kobunkakuseibotoraora) → 고운각시를 데려와라」라는 것이 나온다 하니 후손인 우리로썬 안타까울 뿐이죠.
(コブン은 순경음ㅂ의 예. 현대로 와서는, 표준어:더운→경상도:더븐, 표준어:차가운→경상도:차븐)
참고문헌 : 후지키 히사시, 신판 잡병들의 전장, 아사히신문사(토쿄), 2005.
키타지마 만지, 임진왜란과 히데요시/시마즈/이순신, 校倉書房(토쿄),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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