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융(?融)
생몰년도(?~195)
중국 후한 말의 관원이자 삼국지의 등장인물이다. 불교의 전파자이며 중국에서 불교의 이미지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인물.
말이 관원이지 하는 짓은 산도적이나 다를 바 없었으며, 삼국시대에 불교를 널리 퍼트린 인물이긴 하지만 덕분에 삼국시대의 불교 이미지가 안드로메다로 날라갔다...
처음에 도겸에게 자신의 병력 수백과 함께 귀의를 하자, 이에 감복한 도겸이 그에게 꿀보직인 광릉, 하비, 팽성의 식량 수송 자리를 맡긴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착융이 노렸던 바였다.
그는 곧바로 세 군의 식량을 끊고 그 식량으로 생긴 돈을 이용 성대한 불교 사원을 건립하여 위로는 금괴를 쌓고 아래로는 탑을 세우며 본전은 삼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건립하며, 그 안에는 황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비단옷을 입혀놓은 다음 불교를 포교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욕불을 할 때면 노상에 4~5리에 걸쳐 자리를 펼치고 수만의 돈을 들여 거기에 많은 음식을 풀어놓으니 거기서 밥을 먹거나 구경거리를 즐기는 자들이 일만이나 되었다. 참고로 저 불상을 금동불상(金銅佛像)이라고 하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기록된 금동불상이다.
그러다 193년에 그 유명한 조조의 서주 대학살이 시작하니 착융은 '야, 이건 위험하다' 싶어 남녀 일만 명과 말 삼천 필을 이끌고 광릉으로 도망쳤다. 그때 광릉태수 조욱은 인간막장 착융을 그래도 빈객으로 대접하는데, 착융은 거기서도 광릉의 재화에 눈이 멀어 조욱이 자신을 위해 주연을 벌이자 그것을 이용해 조욱을 참살하고 병사들을 풀어 재물을 약탈한 후 유요를 의지하러 떠났다. 이런 막장 행보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끄는 군사가 있다보니 하비의 상으로 임명된다.
195년에 손책이 유요를 공격할 때 설례가 말릉 성을 맡고 자신이 현 남쪽을 지키고 있었는데, 손책한테 공격 당해 500명이 죽자 농성으로 들어간다. 이에 후방의 걱정이 없어진 손책은 말릉을 공격, 설례는 말릉을 버리고 도망치지만 우미, 번능과 힘을 합쳐 빼앗겼던 우저를 다시 되찾는다.
손책은 분노해 우저를 다시 공격하여 포로 만 명을 사로잡는 등 대승하지만 화살을 허벅지에 맞아 수레에 실려서 우저의 본채에 들어갔는데, 그러자 이를 본 병사가 손책이 유시에 맞아 죽었다고 착융에게 알리자 착융은 또 이 말을 믿어 부장 우자를 시켜 손책을 공격한다.
그러나 손책은 그것을 이용해 적을 끌어들인 다음 복병으로 적 천여 명을 죽인 다음 착융의 성 앞으로가 병사들에게 "손랑이 마침내 어찌되었다고 하더냐!"라고 소리지르게 한다. 착융이 이에 우주방어 모드로 들어가 그가 있는 곳은 지키는데 성공하지만 그 틈에 유요의 본군이 털린다.
이렇게 유요의 군대가 초토화되자 유요는 착융에게 먼저 예장으로 가서 예장을 지키라고 하는데, 착융은 더 이상 유요에게 있다가는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 유요의 부하 설례와 예장태수 주호를 살해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유요가 공격하자 한 번은 이겼지만 결국 다시 공격할 때 패해 산속으로 쫓겨났다가 착융은 거기서 백성들에게 살해당한다. 그 후 유요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병이 들어 사망하니 정사에 따르면 진정한 걸어다니는 사망플래그.
《삼국지연의》에서는 그의 이 막장 행보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유요의 무장 D 정도로 등장하며 장영이 우저를 지키다 패배하자 그를 죽이려는 유요를 말리려는 상식적인(!?) 사람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웃긴 것은 정사와는 반대로 말릉을 공격하는 사이 우저의 빈틈을 노려 공격한 것이 착융과 유요로, 손책이 다쳤다는 말에 설레발치며 공격하는 것은 설례로 되어 있다. 마지막에 유요와 함께 우저를 되찾으나 손책이 박테리아 소패왕 포스를 내뿜으며, 번능과 우미를 죽이자 유요와 함께 달아나 원술에게 의지하러 가는 것이 그들의 등장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