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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제자백가 (0) 2015/08/15 PM 12:51

제자백가(諸子百家, 영어: Hundred Schools of Thought) 또는 현상적 표현인 백가쟁명(百家爭鳴, 영어: Contention of a Hundred Schools of Thought)은 중국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의 여러 사상가들과 그 학파들을 말한다.(백여개의 학파가 아니라. 당시 수많은 사상가들의 집단을 지칭한다. 딱 100개의 집단이 있는게 아니라 그 수는 200 혹은 300... 어쩌면 더 많은 사상가들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나라(周)가 동으로 천도한 후의 동주(東周: 기원전 771~256 = 서주의 마지막 왕인 유왕이 견융의 침입에 의해 패망하고, 평왕에 의해 수도를 낙읍으로 옮기는 기원전 770년부터,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된 마지막 난왕(?王)대에 이르는 시기(기원전 256년)까지의 주 왕조를 일컫는 말이다.) 시대에서는 종주권이 쇠약해짐에 따라 제후들이 세력을 추구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져서 약육강식이 잇달아 일어나자 중국 천하는 소란하게 되었다. 이 시기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대는 중국사상의 개화결실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라 하며 그 학파들을 백가(百家)라 부른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 · 경제 · 정치상의 일대 변혁기였다. 이는 씨족제적인 사회의 해체기이며, 주나라의 봉건 제도와 그에 따르는 질서가 붕괴되는 시기이며, 또한, 경제적 · 군사적 실력주의의 대두기였다. 구체적으로는 주 왕조의 권위의 실추에 따르는 제후의 독립과 대립 항쟁의 시대였다. 이와 같은 배경속에서 중국의 사상계는 최초로 활발해졌다.

《사기(史記)》에서는 제자백가를 음양가(陰陽家) · 유가(儒家) · 묵가(墨家) · 명가(名家) · 법가(法家) · 도가(道家)의 6가로 분류하였다.

반면, 《한서(漢書)》 〈예문지〉에서는 《사기》의 6가에 종횡가(縱橫家) · 잡가(雜家) · 농가(農家) · 시부가(詩賦家) · 병가(兵家) · 수술가(數術家) · 방기가(方技家)의 8가를 추가하여 14가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한서》 〈예문지〉에서는 제자백가 중 대표적인 10개의 학파를 구류십가(九流十家)라고 부르고 있다. 구류십가는 유가(儒家) · 도가(道家) · 음양가(陰陽家) · 법가(法家) · 명가(名家) · 묵가(墨家) · 종횡가(縱橫家) · 잡가(雜家) · 농가(農家)의 구류(九流)에 소설가(小說家)를 더한 것이다. 즉, 소설가를 제외한 9학파는 "가(家)"와 "류(流)" 모두에 들어가지만 소설가는 "가(家)"에는 들어가지만 "류(流)"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제자백가들은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위기를 구하려는 의도와 목적 아래서 일어난 것이며, 철학사상에 특히 기여한 것은 유가 · 도가 · 묵가 · 법가 · 명가이다. 이 밖에는, 강병책(强兵策)을 편 손무(孫武)와 오기(吳起)가 걸출하였고 손빈과 범려도 유명하였는데 이들은 병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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