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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열람] 삼국지 인물 열전 '이엄(李嚴)' (2) 2015/10/12 AM 12:57

촉한의 넘버3(사실상 넘버2)

이엄(李嚴)

생몰년도 ? ~ 234년

자는 정방(正方) 남양군 출신으로 삼국지연의에서는 일관되게 이엄이라 이름을 쓰고 있지만 제갈량의 북벌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이평(李平)으로 개명했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정사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이엄과 이평이 서로 다른 인물로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엄전(李嚴傳)

젊었을 때 군의 관리가 되었고, 재간으로 인하여 칭찬받았다. 형주목 유표는 그를 파견하여 여러 군현의 장을 역임하도록 했다. 조조가 형주로 진입했을 때, 이엄은 자귀현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쪽의 촉나라로 달아났다. 유장은 그를 성도의 현령으로 임명했고, 그는 또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건안 18년(213년)에 유장은 이엄을 호군으로 임명하여 면죽에서 유비를 막아내도록 했다. 그런데 이엄은 병사들을 이끌고 유비에게 투항했다. 유비는 이엄을 비장군으로 임명했다. 성도가 평정된 후, 건위태수 흥업장군(興業將軍)으로 임명되었다.

건안 23년(218년)에 도적 마진(馬秦)고승(高勝) 등이 처(?)에서 모반하여 수만 명을 모아 자중현(資中縣)으로 진격했다. 그 당시 유비는 한중에 있었고, 이엄은 다시 병사를 징발할 수 없었다. 단지 그 군의 병사 5천 명을 이끌고 토벌하러 가서 마진과 고승 등의 머리를 베었을 뿐이다.
잔여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져 전부 민적(民籍)으로 회복되었다. 또 월수(越?) 만족의 우두머리 고정(高定)이 군대를 파견하여 신도현(新都縣)을 포위하자, 이엄은 기병을 이끌고 달려가 구원하여 적은 모두 달아났다. 보한장군(輔漢將軍)의 관직을 더했으며, 건중군을 관리하는 것은 이전과 같았다.

장무 2년(222년)에 유비는 이엄을 불러 영안궁(永安宮)까지 오도록 하여 상서령으로 임명했다. 3년(223년)에 유비의 질병이 악화되자, 이엄은 제갈량과 함께 어린 유선을 보좌하라는 유조(遺詔)를 받았다. 이엄을 중도호로 임명하고 안팎의 군사를 통솔하며 영안(永安)에 주둔하도록 했다.

건흥 원년(223년)에 도향후로 봉하고 가절로 삼고 광록훈을 더했다. 건홍 4년(226년)에 전장군으로 전임됐다.

제갈량은 한중으로 출병하려고 하면서 이엄이 반드시 뒷일을 맡아 줄 것으로 생각하고 강주(江州)로 옮겨 주둔시키고, 호군 진도(陳到)를 남겨 영안에 주둔시켜 모두 이엄의 통솔하에 두었다. 이엄은 맹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 저는 제갈공명과 함께 유비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책임이 막중한 것이 걱정입니다. 좋은 동반자를 얻고 싶습니다. ―

제갈량 역시 맹달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치 물흐르듯하여, 해야 할 일과 버려야 할 일을 결정할 때 주저함이 없는 것이 정방(이엄의 자)의 성격입니다. ―

이엄이 귀하게 존중받는 것은 이와 같았다.

건홍 8년(230년)에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 조진이 세 갈래 길로 나누어 한천(漢川)으로 진격해 왔으므로, 제갈량은 이엄에게 2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가도록 명령했다.

제갈량은 표를 올려 이엄의 아들 이풍(李豊)을 강주도독독군(江州都督督軍)으로 임명하고, 이엄의 후방 일을 담당하도록 했다. 제갈량은 다음해 출병을 확정짓고 이엄에게 중도호의 신분으로 승상부의 일을 맡도록 명령했다. 이때 이엄은 이평(李平)으로 개명했다.

건홍 9년(231년) 봄에 제갈량의 군대는 기산에 주둔하였고, 이평이 수송 업무를 재촉하며 감독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계속 장마비가 쏟아져 식량 운반이 지속되지 못했으므로, 이평은 참군 호충(狐忠)과 독군(督軍) 성번(成藩)을 파견하여 그의 뜻을 설명하고 제갈량에게 후퇴하여 돌아오도록 하라고 했다. 이평은 군대가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으로 놀란 체하며 말했다.

“군량미는 아직 충분하거늘, 어찌하여 돌아옵니까?”

이평은 이렇게 하여 자기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나고 제갈량이 진군하지 않은 잘못을 분명하게 나타내려고 했다. 또 유선에게 표를 올려 말했다.

― 우리 군대가 거짓으로 퇴각한 것은 적을 유인하여 함께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

제갈량이 이평이 앞뒤로 쓴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공개했으므로, 이평의 잘못은 분명해지게 되었다. 이평은 힘껏 변명하고 죄를 자백하고 사죄했다. 그래서 제갈량은 이평의 일을 상주하여 말했다.

― 선제께서 붕어하신 이후부터 이평은 임지에서 기산을 다스리며 작은 은혜를 베푸는 일을 하기를 원했고, 자신을 지키고 명예를 추구하며 나라의 일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이 북방으로 출병을 하면서 이평의 병사들에게 한중을 지키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이평은 이 일을 직접 하기에는 어려우며, 올 의사가 없었으므로 다섯 개 군을 주어 파주자사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작년에 신은 서쪽으로 정벌나가려고 하면서 이평으로 하여금 한중을 관리하도록 했는데, 이평은 사마의 등이 관서를 설치하여 자신을 초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신은 이평의 계산으로 출병한 기회를 틈타 신을 핍박하여 자신에게 이익을 얻도록 하려고 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때문에 표를 올려 이평의 아들 이풍에게 강주를 관리하도록 하고 융성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한 시기의 정무를 처리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평이 한중에 있을 때, 모든 일을 그가 책임지도록 했으므로 신하들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모두들 신이 이평을 너무 후하게 대우한다며 질책했습니다. 그때는 국가의 대사가 아직 확정되지 못했으며 한나라 왕실이 기울어 위험하였으므로, 이평의 잘못을 문책하는 것은 그를 칭찬하는 것만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평의 마음은 영예와 이익에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 이평의 마음이 시비를 전도시키는 데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만일 일의 처리를 늦추게 된다면 재화와 실패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이 민첩하지 못한 결과이며, 설명을 많이 할수록 허물은 늘어날 것입니다. ―

곧바로 이평의 관직을 폐하여 서민이 되게 했으며, 재동군(梓潼郡)으로 방축시켰다.

건흥 12년(234년)에 이평은 제갈량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병에 걸려 죽었다. 이평은 항상 제갈량이 자신을 다시 복권시켜 줄 것으로 기대했으며, 제갈량의 후계자는 이런 기회를 주지 않을 것임을 헤아렸기 때문에 격분하여 결국 병들어 죽은 것이다. 이풍의 관직은 주제태수(朱提太守)에까지 이르렀다.


이평도 탁고대신이었던 만큼 제갈량도 이평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만큼 제갈량은 이평을 탄핵할 때 당시 종군했던 거의 모든 무장, 문관들을 모아서 연명 상소를 냈다. 물론 그 중심이 된 것이 제갈량이라는 것은 틀림없지만, 아무튼 제갈량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연명하여 탄핵해서 물러나게 했으니 이평을 탄핵한 조치의 의의는 그 만큼 컸다.

그리고 이 조치를 되물릴 수 있는 정치력도 제갈량만이 가지고 있었다. 제갈량의 뒤를 이은 장완, 비의는 여러 모로 제갈량의 권위를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제갈량의 정책을 답습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제갈량이 생전에 직접 주도한 탄핵 조치를 되돌릴 수 있는 정치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느 정도 정책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제갈량은 촉한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으므로 제갈량의 정책을 정면으로 거르를 수는 없었다. 그렇긴 해도 제갈량도 제어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이들이 이엄을 다시 복권시키기란 요원한 일...

비록 위험분자이기는 했지만 그는 뛰어난 인재였고 후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였으니 강유의 북벌에 종군했으면 좋았겠지만 역사에 만약이란 것은 의미가 없고 강유가 북벌을 할 때면 이엄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활동연대를 봤을 때 이엄은 잘해봐야 할아버지.(…)

다만 능력만큼은 그래도 출중했다. 하다못해 이엄에 대해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서술하는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는 동안 유선과 다른 신하들이 손제리의 뒷치기를 걱정하자 "육손에 필적할 수 있다."란 평을 하였고, 맹달을 달래어 5로 군사중 하나를 물리치기도 했다. 실제로 황충과 호각으로 일기토에 임할 정도로 무력도 출중했다.


마속에 이어 촉한의 북벌 훼방꾼 의 자리를 당당히 차지고 하고 있는 자... 이지만 여러사료들이나 야사에선 그렇게 까지 야심이 있던 인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제갈량을 견제하기 위한 내부 정치의 희생양이라는 설도 있다는데... 개인적으로 이엄을 주인공으로 한 삼국지 만화를 그리고 싶기도 하다...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장수 이지만 이엄은 그래도 촉한을 든든하게 버티게 있게 해준 개국공신의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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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    친구신청

등용 과정을 보니 라인타기의 달인이군요.
막판에 제갈량 상대로 파워게임 걸다가 망한듯.

느낌이 딱 콩라인 이사가 대표이사 엿먹이려다 이사회에서 해임당한 느낌이네요.

뭐 능력이 있으니 거기까지 올라가긴 했겠지만 위인은 못 되겠습니다...
만성인재부족의 촉한이니 빛을 볼 수 있었던 인물인듯.

神算    친구신청

촉한같은 환경에서는, 먼치킨스러운 천재들도 물론 필요했지만...
요소요소에서 사를 버리고 공을 위해 헌신하는 타입이 많이 필요했을겁니다.
이엄의 재능이 출중했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런 타입은 아니었던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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