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벼의 주인일까?
옛날 시골의 한 사내가 장가든 지 10 년이 가까워도
아내에게 태기가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여러 명의
씨받이 여인까지 가까이 해 보았으나
허사인지라 , 그제야 사내 자신의 몸에
여인에게 뿌릴 씨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
낙심한 가운데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를 은밀히 찾아가 대를 잇지 못하여
조상에게 면목이 없게 된 사정 이야기를 하고서 ,
아내와 합방하여 포태를 시켜 줄 것을 간청하자 ,
이 민망한 부탁에 처음에는 몇 번이나 사양하던 친구도
간절하게 애원하는 사내의 부탁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
이윽고 친구와 약속한 날이 다가온 사내는 밤이 깊어갈 때
주안상을 들이라 해서 아내에게 몇 잔 억지로 권하여
크게 취기가 올라 깊은 잠이 들게 한 후 안방에 눕히고
집 밖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조용히 불러들여
아내와 합방을 하도록 하였다 .
아내는 바로 태기가 있어 배가 불러왔고 드디어
아들을 순산하게 되었으며 ,
이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다섯 살에 벌써 글공부가
일취월장하여 인근에 신동 ( 神童 ) 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되니 사내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어
아들을 애지중지 하게 되었다 .
그러나 사내의 부인과 합방하여 포태 시켜준 친구는
이 신동 아이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생각하며 항상 아깝고
애석하게 여기다가 ,
고을 사또에게 아들을 찾아달라고 고하기에 이르렀다 .
사또는 사내와 사내의 친구 등을 관아로 불러들여 문초를 한 바 ,
아들을 찾아달라고 고한 친구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긴 하였으나 ,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행한 일이었으며 ,
친구가 비밀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약속을 어긴 점과 ,
그간의 기른 정을 내세워 신동 아들을 친구에게
내 줄 수 없다는 사내의 주장이 워낙 드세어
사또는 이를 어찌 판결하여야 할지 난감하였다 .
사또는 며칠 간 궁리를 해보았으나
묘안이 없어 신동이라고 소문이 난 그 어린 아들의
생각하는 바를 들어보기 위해 사내와 친구 ,
신동 아들 등을 다시 관아로 불러들여
신동 아들에게 그간의 자초지종과
포태 과정을 설명하고 어찌 생각하는지
아뢸 것을 명하였다 .
그러자 신동 아들은 주저 없이 사또께 아뢰었다 .
" 사또 나으리 ! 어떤 농부가 봄이 되어
논농사를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
볍씨 종자가 없어 이웃 친구에게서 이를 얻어다
못자리에 뿌린 후 모를 길러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
그 후 벼가 논에서 탐스럽게 자라 익어 가는지라 ,
볍씨 종자를 빌려준 농부의 친구가 탐을 내어
농부의 논에 자란 벼를 추수할 주인은
볍씨 종자의 주인이었던 자신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이 벼의 주인은 누가 되겠습니까 ?
사또께서 이를 참작하시어 처결하여 주시옵소서 ."
이 말을 들은 사또는 그제야 무릎을 치며
신동 아이의 진정한 아비는 신동을 포태시킨
사내의 친구가 아니라 ,
신동을 기른 사내라 하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