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봉요원 52권
적벽대전 중반 챕터가 진행되는 52권.
원작과 다르게 조조는 황개의 사항계와 화공을 모두 간파했고,
화공에 당한 척 가짜 불을 질러 손권의 육군을 유인했다.
여몽은 화공 성공을 믿고 자신만만하게 진격하지만
여몽이 마주친 것은 화공에 당한 패잔병이 아니라
조조가 직접 지휘하는 대군.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여몽이 내뱉은 한 마디는...
"↗같네!"
??? 이게 뭐야.
아무리 만화라도 삼국지 캐릭터 입에서 '↗같네'가 나오는 게 자연스럽나?
비속어 문제를 떠나서 그 시대에 쓸만한 말도 아닌 거 같은데?
무슨 번역이 이따구야?
라고 생각해도 웬만해선 할 말 없는 번역이지만,
사실 내막을 알아보면 이 '↗같네' 3글자는 화봉요원 52권...
아니 전권을 통틀어 최고의 초월번역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원서에서 작가가 여몽에게 준 실제 대사는 '我操'.
영어로 번역하면 'Holy F**K!' 또는 'Shit!'에 해당하는 비속어로,
한국어의 'X발!', '이런 미1친!' 정도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저 操라는 한자, 삼국지 팬이라면 어딘가 익숙할 텐데?
그렇다.
삼국지의 주연인 조조(曹操)의 이름 글자. '잡을 조(操)' 자다.
잠깐 뭐야. 그럼 조조 부모는 아들한테 'F**k'이란 뜻의 이름을 지어줬어?
근데 한자사전에 검색해봐도 '操'가 비속어적 의미를 갖고 있단 얘긴 없는데?
전말은 이렇다.
사실 한자에서 진짜 'F**k'의 의미를 갖는 한자는 '성교할 조(肏)' 자인데,
이게 웹상의 필터링 문제인지, 상용한자 배제의 문제인지,
어쨌든 이 글자를 상시 사용하기 어려웠던 중국의 네티즌들이
발음이 비슷한 '操'를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국내 웹에서 'X발'을 필터링으로 막자 중간에 1을 쓰거나, 앞글자를 바꿔 쓰는 현상과 비슷.
즉 삼국지 시대에는 조조 이름이 비속어로 쓰일 일은 전혀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여몽이 '操'를 비속어로 뱉는 것 자체는 고증에 어긋나지만,
1) 욕설을 입에 달고 산다는 화봉요원 여몽 설정
+
2) 하필 매복상대로 마주친 게 조'조(操)'인 상황
+
3) 현대 독자 감성을 저격하기 좋은 비속어 감탄사의 요건이 충족되어
'我操'라는 짧지만 굵은 임팩트의 원서 대사가 만들어졌고,
국내 정발판 번역자는
'그 시대에 쓰일 법하진 않지만, 조조의 이름과 비슷한 현대 비속어'란 조건을 고려해서
"↗같네!"라는 초월번역을 선보이기에 이른 것이다.
'쬬'라는 별명이 정착하기 전 한국 커뮤에서 조조를 부른 별명들 중에
'↗공'이란 별명이 유명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적절성이 2배.
원문의 뉘앙스와 내력을 정확하게 살리는 동시에
웹에서 유행하는 한국어 비속어란 속성으로도 완벽한 선택을 한...
정말이지 최고의 현지화 그 자체였다.
아쉽게도 루리웹에선 이 또한 필터링돼서 적을 수 없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