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미우라 켄타로 군이 기고해주었던 타카무라입니다.
지금 많이 감상적이 되어서요.
잠시 추억 얘기 좀 하게 해주세요.
제가 첫 주간 연재를 할 때 스태프가 한 명도 없어서 곤란해 하고 있었는데 도와주러 왔습니다.
그가 열여덟이고, 제가 열아홉일 때였죠.
모 대학 예술학부 학생으로 강의를 마치고 한 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와 주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그릴 수 있는지 모르기에 직접 그린 것을 보여달라고 하며, 이것과 닮게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다 그려진 걸 본 후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너무 나이에 맞지 않았거든요.
몇 점을 더 그려달라고 한 후, 저는 이미 그에게 흥미진진한 상태였습니다.
아직 젊었던 우린 손을 멈추고 서로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케치북이 신경쓰여 보여달라고 부탁했더니, 더욱 간담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았어요.
거기에는 요정이, 낙인이, 커다란 검을 든 검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후에 등장하는 팩, 가츠였죠.
굵은 연필로 그려진 그것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이게 뭐야?" 이랬더니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입니다. 실력이 붙으면 그리고 싶어요.
언제부터 품고 있었던 것일까.
이미 거기엔 베르세르크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저는 하지메의 일보(더 파이팅!)를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베르세르크가 발표됐죠.
고생하는 얘기도 좀 들었었어요.
하지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무조건 통하는 만화가 시작됐다고.
저 켄타로군이 실력이 붙었다고 자신을 판단하고, 야심차게 연재를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죠.
매회마다 초절한 실력으로 혼신의 화면을 그려내는 그의 에너지는 존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추억담은 여기서 끝입니다.
그와는 그때 뿐이었지만 저에 대해 신경써 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와 만나게 되었던 것이 자랑거리입니다.
멋대로 떠들어대서 미안해 켄타로군.
언젠가 마지막 회 읽으러 갈게.
=====================================================
'더 파이팅!'의 작가 모리카와 죠지가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켄타로의 부고를 접한 뒤
트위터에 풀어낸 이야기가 있길래 올려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