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이민욱 칼럼니스트] 유로바스켓은 국제농구연맹(FIBA)이 주관하는 대륙별 지역예선 중 가장 경쟁이 치열한 대회다. 세계대회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전력의 강팀들이 나서다보니 오프시즌 최고의 관심사가 될 때도 있다. 팀간 격차도 크지 않아 이변도 많고, 이를 발판으로 NBA나 유럽 명문리그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데렐라’ 팀도 많이 등장한다. 2011년 마케도니아가 대표적으로, 미국서 귀화한 보 맥칼렙(182cm)의 활약으로 4강까지 진출했다.
2015년에는 체코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간 체코는 여자농구로 유명한 나라였지만, 정작 남자농구는 힘을 못 썼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는 달랐다. 16강에서 크로아티아, 8강에서 세르비아 등을 꺾으면서 리우올림픽 최종예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체코 농구, 앞에서 끄는 베테랑들
체코의 선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16강에서 크로아티아를 21점차(80-59)로 꺾은 건 하나의 사건과도 같았다. 또 5~8위전에서는 이탈리아에게 졌지만, 7~8위 결정전에서는 라트비아에게 이기면서 분리 독립 후 처음으로 올림픽 최종예선 티켓을 따냈다. 본선 직행은 아니지만 약체였던 그들에겐 귀중한 성과였다.
특히 1980년대 동갑내기인 이리 웰시(201cm, 가드 겸 포워드)와 루보스 바턴(202cm, 포워드)이 갖는 감정은 남달랐을 것 같다. 오랫동안 체코 농구를 대표해온 두 선수는 전직 NBA리거이자, 체코 대표팀내 최고참들이다. 10대 시절부터 농구 수재로 정평이 났던 두 선수는 1999년부터 줄기차게 유로바스켓의 문을 노크해왔지만, 워낙 팀이 약해 유로바스켓에서는 명함조차 못 내밀던 터였다.
그러다 간신히 유로바스켓 토너먼트에 나서게 됐는데, 첫 진출에 올림픽 최종예선이라는 성과까지 얻어냈으니 그야말로 겹경사였다.
특히, 유로바스켓 2015에서는 웰시의 경기력이 상당히 좋았다. 득점보다는 노련하고 이타적인 플레이로 베테랑의 품격을 보였다. 대회에서 기록한 평균 어시스트는 4.3개로 팀내 2위였는데, 특히 크로아티아와의 16강 경기에서는 어시스트 8개로 팀 승리를 주도했다. 라트비아 전에서는 17분을 뛰면서 5어시스트를 기록, 체코의 최종예선을 도왔다.
이러한 체코의 선전 뒤에는 로넨 긴즈버그 감독의 지략도 있었다. 긴즈버그 감독은 이스라엘 국적이다. 그러나 2006년 체코 명문 프로팀인 님부르크(Nymbu가)의 코치로 부임해 체코 농구와 연을 맺은 후 지속적으로 체코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체코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체코 농구, 뒤에서 밀어주는 유망주들
또한 지금 소개할 체코 대표팀의 ‘미래’ 3인방도 빼놓을 수 없다. 점프볼은 이미 4년 전에 이들을 다룬 적이 있다.
▷ 2012년 체코 유망주 소개 기사
http://sports.news.naver.com/nba/news/read.nhn?oid=065&aid=0000053195
사실, ‘체코 슬로바키아’ 남자 대표팀은 유로바스켓 대회에 나설 때마다 최소 3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강팀이었다. 그러다 1985년 2위를 기점으로 슬슬 하락기를 걷게 됐는데, 1991년 분리 독립 이후부터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전력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강등되어 디비전 B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늘 떨어지기만 하라는 법은 없었다. 2009년 8월, 체코 농구팬들은 한줄기 희망을 보게 된다. 8월 20일, 우크라이나와의 경기가 바로 그 희망을 안긴 경기다. 이 경기는 유로바스켓 2009 강등라운드 경기였는데, 우크라이나에게 비록 70-82로 지면서 디비전 B로 떨어지게 됐다.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기량을 보인 1990년생 유망주 얀 베슬리(211cm, F, 세르비아 프로팀 파르티잔)와 동갑내기 데이비드 옐리넥(196cm, G, DKV호벤투트), 1991년생 토마스 사토란스키(201cm, G, 세비야) 덕분에 체코 팬들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었다.
‘강등’이 걸린 경기에서 10대 선수들을 내세운 것은 일종의 도박이자 모험이었다. 당시 체코 대표팀 감독이었던 미카엘 예즈딕(Michal Jezdik)은 당장의 성적보다는 미래를 내다봤다. 그리고 소신대로 유망주들을 비중있게 내보내며 나중을 준비했다.
사토란스키는 이 경기에 출전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유럽 전역이 주목하던 유망주였다. 만 16세였던 그는 2008년 유로바스켓 예선에서부터 성인대표팀에 발탁될 정도였고, 지금도 체코 대표팀의 뼈대는 그가 맡고 있다. 베슬리와 옐리넥도 마찬가지. 베슬리의 경우 평균 25.7분이란 긴 시간을 뛰며 평균 11득점을 기록했고, 옐리넥도 12.8분을 소화하며 7.0득점 3.0리바운드를 올렸다. 사토란스키도 평균 7.5득점 3.9리바운드 2.6어시스트로 주목을 받았다.
▷ 얀 베슬리의 강등라운드 하이라이트(2009년)
https://www.youtube.com/watch?v=3zlB5w08_Es
▷ 데이비드 옐리넥의 강등라운드 하이라이트 (2009년)
https://www.youtube.com/watch?v=bKcwMgrrlpU
▷ 사토란스키의 체코리그 프로시절과 국가대표팀 하이라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9wnv1GyuK48
디비전 B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온 체코는 2013년에 열린 유로바스켓 2013 본선 때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세대교체의 성과’를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팀은 사토란스키와 베슬리를 정점으로 점차 강해지고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 와중에 단발성 사고도 일으키곤 했다.
2012년에 열린 유로바스켓 2013 지역예선 경기가 대표적이다. 당시 체코는 F조 3위로 유로바스켓 2013 본선 진출에 성공했는데 지역예선 경기에서 만만치 않은 터키를 꺾었다. 슬슬 대표팀 세대교체의 성과가 수면 위로 떠오르던 시기였다.
그리고 2015년 9월에 열린 유로바스켓 2015 본선. 체코는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1991년 분리 독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최종예선(7위)에 진출한 것이다. 특히 경쟁이 심한 유럽 대륙이기에 체코가 거둔 업적은 빛이 났다. (※ 또한 베테랑과 유망주들이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체코는 평균 76.9점을 기록했는데, 어시스트는 22.7개로 2위였다. 1위 세르비아와는 0.3점 차이였다. 그만큼 팀플레이가 의도한 대로 잘 이뤄졌다는 의미다. 사토란스키와 웰시의 역할이 컸다.)
많은 이들은 앞으로 체코 농구는 사토란스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cm의 장신가드로 전문가들은 ‘전력의 반’이라고까지 말한다. 몇 해 전, 점프볼에 소개됐을 때보다 슈팅 능력까지 좋아진 덕분에 수비가 더 까다로워졌다.
옐리넥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유로바스켓 2015에서의 평균득점은 4.8점이었지만, 크로아티아와 라트비아를 꺾는 과정에서는 사토란스키와 함께 반짝반짝 빛났다. 크로아티아와의 16강전에서는 13득점을 올렸는데, 특히 점수차를 벌리던 2쿼터에서 11점을 몰아넣으면서 팀 상승세를 도왔다. 또 최종예선 티켓이 걸린 7~8위전에서는 10득점과 3어시스트로 분투하며 체코의 27점차 대승(97-70)에 기여했다. 그 활약을 지켜보던 체코 팬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 옐리넥의 아버지 조제프는 체코의 레전드엿다.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프로리그 최다득점인 11,526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옐리넥은 폴란드(PLK) 리그에서 뛰고 있다. 현재 평균 20득점을 기록하며 소속팀 앤빌의 정규시즌 선전(4위)을 이끌고 있다. 만일 상위팀을 상대로도 꾸준한 활약을 보인다면 옐리넥은 좀 더 수준 높은 유럽리그로 이적할 수 있을 것이다. (※ 폴란드 리그는 1928년에 만들어져 1995년에 프로화가 됐다. 16팀으로 구성되어 TOP8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폴란드 리그는 경기 중 꼭 2명의 폴란드 선수가 코트에 있도록 규정해두었다. 또 12명 중 6명이 폴란드 선수여야 한다.)
한편, 유로바스켓 2015 본선 명단에는 없었지만 온드레 발빈(218cm)의 이름도 기억해둬야 한다. 스페인 리그 세비야 소속의 센터로, 2011년부터 체코 대표팀 명단에 오르내리며 높이를 더해주었다. 유로바스켓 2015에는 지역예선까지만 출전했다. 1992년생인 발빈은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221cm, 뉴욕 닉스), 윌리 에르난고메즈(211cm, 레알 마드리드)보다 한 발 먼저 세비야 성인팀에 등록됐던 선수다. 이때 나이가 겨우 만17세였다.
그러나 포르징기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투박함’에 있었다. 키에 비해 팔이 짧고, 스피드와 점프력이 평범한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기술도 그리 화려하진 못하다. 다만 기백만큼은 무시할 수없다. 저돌적이며 과감한 몸싸움이 팀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2대2 공격 수행도 일품이다. 스크리너 역할은 거의 기계적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세비야에서 발빈은 조금씩 비중을 높여가며 미래를 기대케 하고 있다. 1월 10일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는 덩크슛 7개와 함께 20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만약 그가 대표팀에 승선한다면 베슬리의 골밑 수비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다. 리바운드 실력도 괜찮아 유로바스켓 본선 당시 뒤에서 네 번째(16위)에 그친 체코의 빈약한 리바운드(34.7개)를 메워줄 수 있을 전망이다.
작년 유로바스켓 2015 본선에서 체코 남자농구 대표팀은 분리 독립 이후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유로바스켓의 심한 경쟁을 뚫고 올림픽 최종예선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체코의 성과는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이들이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도 지금의 선전을 계속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유로바스켓 2011 본선무대에서 최고의 이변을 일으켰던 마케도니아도 결국 최종예선을 통과 못 하면서 2012년 런던올림픽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과연 체코가 마케도니아도 해내지 못한 위대한(?)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매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지켜보자. 만약 체코가 유로바스켓 2015 본선 때처럼 다시 한 번 바람을 일으킬 경우 체코의 경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팀이라는 뜻인데.. 미국 대학농구 최정상팀
켄터키 대학교 주전을 상대로 세르비아 국가대표가
단 7점차이로 진게 바로 작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