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우드[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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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대통령을 지켜라 (0) 2012/11/23 AM 12:52


꿈에서 일어날 일을 현실에서 맞닥트려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 내가 되었다는 것은 뭐랄까…….

환장할 노릇!

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다.

“동지, 나와 같이 대통령을 암살하자.”

좌빨같은 소리를 아침부터 늘어놓는 내 앞의 사람이 바로 그 환장할 노릇이다.
겉보기에는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는 미소녀지만…….

“아침부터 머리 아픈 소리 좀 하지마.”

무려 미래에서 온 소녀다.

“아침 인사로 우리의 목적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한 가지 더!
그녀는 미래에서 지금의 대통령을 암살하러 왔다.
전혀 판타스틱 하지 않아.
꿈도 희망도 사랑도 없는 그런 전개라고!

“목적의식이고 나발이고 옷부터 바로 입으라고.”

젠장, 아침부터 눈 둘 곳이 민망하다.
헐렁거리는 티 한 장만 입고 있는 그녀의 아래쪽으로 눈이 가는 건 남자의 본능이다.
정말이지 사상이 좌빨만 아니라면 그녀에게 녹아버릴 것 같다.

“그렇군. 옷을 바로 입는 것은 중요하지.”

이래저래 수긍하며 이내 티를 훌러덩 벗어버리는 그녀를 피해 밖으로 나왔다.
하아, 나는 건전하다. 잘 참고 있지.
그런데 왜 패배하는 것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오늘도 그녀로부터 대통령을 지키자.




1.

난데없이 영어로 떠들어대는 미소녀를 만나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Yes, It's me!"라고 말할 수 있다.
아, 물론 그렇다고 이 몸이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토요일 오후.

왠지 유난히도 저녁놀이 붉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저녁놀을 배경으로 한 소녀가 청계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내 또래인 것 같았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인상 깊었다.
짙은 검은 색에 청색이 살짝 덧뿌려진 것 같아 독특했다.
그리고 무릎 위를 살짝 올라가는 빨간 스커트가 예뻤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스커트보다는 다리 곡선이 남자로서 흡족했노라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예쁘다.’

시선이 전체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 훑듯이 위로 올라갔다.
남자로서 불쑥 일어난 흑심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봤던 여자 중에서
이렇게 눈길을 끄는 경우는 없던 것 같다.
연예인을 눈앞에서 본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거다.
감상하듯이 스커트의 다리 곡선을 따라 원피스의 가슴굴곡을 거치고,
마침내 얼굴로 향하는 순간.

“You! Let's assassinate the president!"

뜬금없이 영어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전체적으로 강렬한 인상 가운데 무심한 표정의 그녀와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내가 깜짝 놀라거나 그녀의 얼굴이 정말 예쁘거나를 떠나 일단 난감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영어로 묻는다면 보통 익스큐즈 미로 시작하지 않던가?
아, 그런 문제를 떠나서 뭐라고 말했던 거지?
해석을 얼추 해보니…….

“대통령을 죽이자고?”

“그렇다.”

결의에 찬 눈빛으로 소녀는 내 손을 맞잡았다.
뭐야, 한국어 할 수 있잖아.
아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지.

“저기, 내가 잘못 해석한 것 같은데 정말 대통령을 죽이자고 말한 거야?
파란 지붕 아래 사는 그 사람을?”

“그렇다. 이 시대의 표준어적 의미로 그대가 나의 동지가 되어
같이 대통령을 죽이자고 권유했음이다.”

여기 미친 사람 있어요!
대통령을 같이 죽이자고 해요!
말로만 듣던 빨갱이란 겁니까?

“아, 미안하지만 그런데 관심 없어서”

대충 흘려버리고 가버리려는 것을 가로막으면서 그녀는 말했다.

“나는 미래에서 왔다.”

“……하?”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영화나 만화를 많이 봐야 했다고 해야 할지 단순히 미쳤는지 그 경계가 애매한 소녀였다.
뜬금없이 영어로 대통령을 죽이자고 하는 미래에서 온 소녀?
이건 꿈도 희망은 물론 재미도 없는 컨셉이다.

“증거는?”

단순히 미친 사람 취급하고 가버려도 되건만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은 딴 말이었다.
증거를 대라는 말에 잠시 고심하던 그녀는 역시나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동거하자.”

“…….”

내가 뭐라고 들은 겁니까?
동거?
보통 머릿속에 펼쳐지는 핑크빛이 넘실거리는 그 동거?

“저기 동거라고 한 것 같은데…….”

“용어가 잘못되었나? 합방이라는 단어보다는 동거라는 것이 이 상황에서 적절할 것 같은데.”

“아니, 동거고 합방이고 그게 뭔 증거가 되냐고?”

뭐, 눈앞에 소녀가 굉장히 예뻐서 같이 산다면 남자로서 사심 있게 좋지만,
그렇다고 ‘그래’라며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소녀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증거를 물건으로만 보여야 하는 건가?”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그게 동거랑 뭔 상관이 있냐 이거지.”

어이 잠깐! 설마 내가 상대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는 건가?
왜 이렇게 진지한 거야!

“같이 살면서 보여주지.”

“싫다고 하면?”

잠시 생각하던 소녀는 총으로 짐작되는 무언가를 내게로 겨눴다.

“동지가 아니면 죽음.”

“……맞아! 대통령은 죽어야 해!”

그렇게 나는 좌빨이 되었다.






남들이 언뜻 보기에는 소개팅일지 모른다.
아니 진짜 소개팅이면 좋겠다.

“이렇게 개방된 곳은 거사를 논의하기에 좋지가 않다.”

이런 익사이팅한 발언을 하는 여성과 소개팅을 한 사람 있습니까?
아무리 예뻐도 이런 상태면 전혀 무드 같은 게 안 느껴진다고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보라 동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확실하게 답해 주겠다.”

“자기 말투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음, 동지 내 말투가 이 세계의 표준어에 부합되지 않는 건가?”

표준어에 대한 개념자체가 이상한 것 같다.

“동지라고 하지 말고 이름을 불러. 김범우다.”

고개를 한번 끄덕거린 그녀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사는 시대는 더 이상 국어를 쓰지 않는다.”

“한국인데 국어를 안 써?”

“영어만 쓰게 된다. 국어 과목이 사라졌기 때문에 국어 익숙치가 않다.”

국어를 쓰지 않으면 이런 이상한 말투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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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한창때 적던 건데....
현 정권 끝나면 주욱 이어 쓸 예정이긴 한데...


이런 거 적는다고 좌빨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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