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곳을 자주 찾아왔던 너를 보고 첫 눈에 반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이렇게 얼마예요?"
라고 물어보던 네게서 영화『4월 이야기』속 니레노 우즈키의 모습을 겹쳐보고는 혼자 네게 반해 몇달을 애태우다 네 연락처를 알게 되고 네게 전화를 걸었었지.
그렇게 시작된 관계에서 약 5년여의 시간동안 친구도 연인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오다 "나 좀 데리러 오면 안 돼?"라고 울먹이며 말하던 네 전화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팠지만,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을 얻어 출발하려 할 때에 너는 "더는 사는 게 힘들어. 나 죽을거니까 안 와도 돼"라는 전화를 끝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너.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서 어머니께서 하시는 가게에도 가보고, 네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해보았지만 다들 네 소식을 몰라 해서, 사고라도 난 게 아닌지... 한동안 신문이나 뉴스 사건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지. 어쩜 그렇게 네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습을 감출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게 마지막 연락이 될줄 알았다면 정말 뒤도 안 보고 달려갔을텐데... 하고 몇년동안을 후회했는지 몰라.
오늘 낮술을 한 잔하며 영화를 보고 있자니, 한동안 잊고지냈던 네가 생각났어.
내가 네게 처음 반한 날, 내가 끓여주는 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말한 거나, 여자사람 친구와 길을 걷다가 거리에서 너의 연인과 함께 있는 모습을 마주치고는 서로 어색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모르는 채로 스쳐간 뒤에 연락을 주고 받고서는 낄낄거리던 일이나, 반농담삼아 꺼낸 말에 함께 보낸 밤이나, 마지막으로 만난 날 밤에 네가 내게 들려준... 네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나서 내가 네게 청혼했을 때, 네가 울면서 고맙다고 말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
이 글을 쓰면서 이제는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
누군가에게는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지만(한때는 내게도 그런 영화였듯이), 내게는 어쩌면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너를 또 떠올려야 하는 아픔을 주는 영화가 되어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