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작년에 구입한『풍토기의 세계』라는 책을 번역해보고 있는 중인데, 저자는 미우라 스케유키로 주로 일본 고대사에 관한 연구를 하는 양반인 듯 하다.
풍토기(風土記)가 무엇인고 하니, 8세기 무렵에 조정의 명령에 의해 각지방의 관리들에게 기록케 한 일종의 지역정보 보고서 같은 서적으로, 일본에서 현존해 있는 풍토기는 이즈모국 풍토기, 하리마국 풍토기, 히타치국 풍토기, 히젠국 풍토기, 분고국 풍토기로, 그 외의 지역의 풍토기는 다른 문헌에 인용된 부분을 통해 과거에 존재했었던 것 정도만 알지 그 전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한다. 현존하는 풍토기 중 가장 완벽한 형태로 보존 된 것은 이즈모국 풍토기 뿐으로, 편찬 명령이 떨어지고 가장 나중에서야 조정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풍토기가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고대 일본이 율령국가체제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역사서를 만들 필요가 생겼는데, 그 역사서의 자료로서 쓰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추측하며 현존하는 일본의 정사(正史)『일본서기(日本書紀)』는 미완성본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물론, 혼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연구가들의 주장도 곁들여서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이 역사서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가장 많이 참조한 것은 중국의 사서일진데, 보통 중국의 왕조를 기록한 역대 사서는 역대 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기(紀)와, 잡다한 지식을 담은 지(志), 그리고 당대에 활약한 인물들을 기록한 전(傳)으로 구성되는데, 현재 전해지고 있는 일본서기에는 지(志), 전(傳)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풍토기가 어쩌면 기, 지, 전 중 지에 속하는 자료가 될 서적이었던 게 아닐지... 그리고 현재 사람들이『일본서기』로 알고있는 이 서적의 원래 제목이『일본서(日本書)』의 기(紀) 부분이었다가 세월이 흐르고 필사하는 과정에서『일본서기』가 된 게 아닌가 하고 주장하고 있다. 즉, 나중에 지(志), 전(傳)도 편찬되어야 비로소 완성이 될 서적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미완성인 채로 현재까지 남은 게 아닌가 하고...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의 역사서 중 하나인『삼국사기』를 봐도 알 수 있는데,『삼국사기』의 경우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각 왕조의 역사를 전하는 본기(本紀), 각 나라의 풍물지 같은 성격의 잡지(雜志)와, 각 나라의 인물들을 다룬 열전(列傳)으로 구성된다. 이 역시 중국 사서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만들어졌기에 같은 형태를 띄고 있는 것이다.
그냥 나라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이 다르겠지... 하고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인데, 저자의 지적을 읽어보고나니,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되었다. 확실히 일본서기는 창세신화와 각 신화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역대 왕들 위주로만 기록되어 있고, 왕 주변 인물들 이외에는 이렇다 하게 특이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다만, 예외인 게 일본의 전래 동화 중 하나인 우라시마타로 이야기가 5세기 무렵의 일본의 왕(이 때만 해도 "텐노<天皇>"라는 칭호는 없었고, "오오키미<大王>"라 부르던 시대이다)인 유랴쿠(雄略) 시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 우라시마타로 이야기가 열전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아직은 히타치국 풍토기에 대한 연구의 막바지 부분을 읽고있는데, 이제 이 책의 1/3 정도를 읽은 듯 하다.
번역하며 읽던 도중에 재미있는 주장들이 꽤 나오길래 한번 끄적거려 봤는데, 다 읽고나면 좀 더 자세한 리뷰를 써봐야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