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5장 -싸움의 종식
一. 텐노(天皇)・죠코(上皇)의 탈출
◇ 로쿠하라(六波羅) 행행(行幸)
~ 25일의 밤이 깊어지자 니죠 텐노(二条天皇)의 탈출이 감행되었다. 축시(牛刻)라 기록하고 있으니, 오전 2시 무렵이었으며, 엄밀히 말하자면 날이 25일에서 26일로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미리 타이라노키요모리(平清盛), 코레카타(惟方), 타다아키(尹明)들이 짜놓은대로, 오오미야 니죠(大宮二条)에서 화염이 피어오르고 무사들이 여기에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에, 니죠 텐노들을 태운 뇨보구루마(女房車)는 어렵지 않게 다이리(内裏)를 출발하여 로쿠하라(六波羅)에 있는 키요모리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때, 탈출이라는 밀명을 받은 타다아키는 홀로 두 장의 왕골을 들고 텐노가 걸어다닐 때마다 두 장의 왕골을 번갈아 가며 바닥에 깔아 걷기 편하게 해주었다. 동시에 이요노나이시(伊予内侍)와 쇼유노나이시(少輔内侍) 두 사람이 짜맞추듯 3종 신기(神器) 중 신지(神璽)와 보검(宝剣)을 수레에 실었다. 수레가 나간 뒤에 타다아키는 비와의 겐죠(琵琶の玄象), 와고토의 스즈카(和琴の鈴鹿), 고후에(御笛) 같은 텐노케 누대(累代)의 보물인 악기류, 셋토(節刀)와 행군(行軍)에 따른 계(契)를 담은 다이토케이의 카라비츠(大刀契の唐櫃), 히노오마시의 타치(昼御座の太刀), 덴죠의 의자(殿上の椅子)까지도 준비해 긴 궤짝에 넣어 가지고 나왔다 한다.
신속한 행동으로 텐노 탈출의 입역자가 된 타다아키는, 니죠 텐노의 토구우가쿠시(東宮学士)인 토모미치(知道)의 자식으로, 학자, 관료 계통에 속한다. 누이들이 모두 코레카타의 아내였을 뿐만 아니라, 신제이(信西)의 사촌이자 아내의 모친이 타다모리(忠盛)의 딸이었다. 그가 로쿠하라 행행(行幸)에 위험을 감수하고 활약한 배경에는, 이러한 인간관계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나중에, 딸이 안토쿠 텐노(安徳天皇)의 여관(女官)이었던 관계로 헤이시(平氏)와 같은 길, 안토쿠의 쿠로도(蔵人)로 임명되었다. 다양한 전투나 사건이 있었을 때마다 다양하고도 위험한 일에 굳이 몸을 던졌던 인물이었다.
또,『愚管抄(구칸쇼)』도 말하고 있듯이, 여관들도 커다란 역할을 맡았었다. 두 사람 중에 이요노나이시는 야마토 겐지(大和源氏) 출신의 무장인 미나모토노치카히로(源親弘)의 딸로, 나중에 로쿠죠 텐노(六条天皇), 타카쿠라 텐노(高倉天皇) 양대에 걸쳐 코토노나이시(勾当内侍)로서 임관하게 된다. 코레카타는 타다아키 뿐만 아니라, 여관들까지 조직해 있었다는 뜻이다. 니죠 텐노의 토구우 시절부터 가까이서 모셔왔던 만큼, 텐노 주변의 인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여관인 쇼유노나이시는 타이라노타다모리(平忠盛)와 연고(縁故)가 있는 후지와라노치카모리(藤原親盛)의 딸로, 이미 타이라노시게모리(平重盛)와의 사이에서 스케모리(資盛)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헤이시 역시 여관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平治物語(헤이지모노가타리)』에서는 수레가 나갈 때에 무사들이 이를 수상히 여겨 코레카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수레 내부를 들여다보려 하자, 아직 열일곱 살이었던 니죠 텐노를 뇨보(女房)로 착각하도록 변장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구칸쇼』에는「아무렇지 않게 나갈 수 있었다(サリゲナシニテヤリ出シテケリ)」라 나와있기 때문에, 무사들의 심문 같은 건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세상이 세상인 만큼, 심야에 뇨보 등을 태운 수레가 들락날락 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심야에 젊은 여성이 허둥지둥 하고 있다고 친다면 어디 시부야(渋谷) 근처의 광경을 상상해버리겠지만...
노부요리(信頼)의 입장에서 보자면, 설마하니 동지라 여겼던 숙부 코레카타가 배신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당시, 니죠 텐노가 탈출하는 일 따위는 생각지도 못 했을 것이다. 또, 니죠 텐노는 특별히 구속되어 있던 것도 아니라서, 평상시대로 다이리에서 정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변이 엄격하게 경계되고 있지 않았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리하여, 죠코(上皇)에 이어 텐노도 다이리를 탈출한다. 그리고 텐노는 로쿠하라로 들어갔으며,『구칸쇼』에 따르면, 연이어 각 뇨인(女院)이나 고시라카와인(後白河院)도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한다.
여기로 셋칸케(摂関家)의 큰 어르신인 타다미치(忠通)와 칸파쿠(関白) 모토자네(基実) 부자가 들어왔다. 모토자네가 노부요리의 사위였기에, 노부요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만큼,『구칸쇼』에 따르면 로쿠하라에 미묘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킨노리가 키요모리에게 칸파쿠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어찌할지를 물었다. 키요모리는 이렇게 답했다.「摂籙ノ臣ノ御事ナドハ議ニ及ブベクモ候ハズ。マイラレザランヲゾワザトメサルベク候。参ラレ給ヒタランハ神妙ノ事ニテコソ候」라고. 칸파쿠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이제와서 왈가왈부 할 필요도 없고, 오지 않으려 한다면 부를 필요야 있겠으나, 이미 들어와버렸으니 상관 없다 라는 뜻이다.
키요모리의 도량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일화인데, 동시에 노부요리에게 의존하여 같은 취급을 받았던 셋칸케의 입장이 명백해졌다고 할 수 있다. 또, 이제와서 왈가알부 할 필요까지 없다는 말은, 셋칸케의 정치적 지위나 중요성이 저하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리하여, 키요모리 이하의 헤이시 이치몬(平氏一門)은 관군(官軍)이 되었다. 반대로, 텐노와 죠코를 잃은 노부요리와 요시토모들은 적군(賊軍)으로 전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