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만에 원더걸스가 컴백했습니다.
기존 레트로풍의 곡을 춤을 추며 부르던 아이돌 가수였던 탓에, 이번 밴드 컨셉은 나오기 전부터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티저가 하나, 둘씩 공개되면서, 멤버들이 그동안 밴드로 나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대중들은 알 수 있었고, 그리고 기대하는 분들도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했죠.
타이틀곡의 티저가 공개되고, 또 수록곡들을 맛보기로 들어보면서 기대감은 더욱 더 커졌을거예요.
그리고 이번주에 가요 방송을 통해 활동을 시작한 뒤의 반응은 제 예상을 깨지 않았다고나 할까...
원더걸스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어요. 원래부터 라이브에서 강세를 보여주던 팀도 아니었고(원년 멤버인 선예와 현 멤버 중 한 사람인 예은은 실제로는 노래를 굉장히 잘 하는데, 어째 라이브에서만 그리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데뷔전부터 지켜봐온 입장에선 안타까운 마음도 큽니다), 우리나라 가요 방송의 특성상,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요 방송에 대한 각 방송국의 제작비 투자액이 현저하게 줄어 밴드로 나오는 팀의 경우 라이브 연주는 꿈도 꿀 수 없어 핸드싱크를 여의치 못 하는 그런 상황에 있음에도, 핸드싱크 한다고 그게 무슨 밴드냐 욕하시는 분들도 늘어나는게 보였어요.
뭐, 욕할 수도 있습니다. 기존에 밴드 하시는 분들에 비하면 그 실력이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몇일전 유스케에 나왔을 때 그녀들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죠.
그럼 한가지 예를 들어볼께요.
뉴 키즈 온 더 블럭이나 테이크 뎃, 엔싱크나 백 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아이돌 가수들은 기억하나요?
이들은 흔히 아이돌로 치부되기에 앞서서 팝음악계에선 이런 스타일의 팀을 분류할 때 보이 그룹이라느니, 아이돌 그룹이라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보이 밴드라 부르죠.
그렇다면 그들이 라이브 무대에서 악기를 연주 하느냐? 그건 아닙니다. 물론 멤버에 따라서는 개개인이 다룰줄 아는 악기 한 두가지 정도는 있겠죠. 그럼에도 그들은 주로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 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들에게 "너네가 무슨 밴드냐?"라고 욕한 사람들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현재 활동을 그만 두고 각자의 활동을 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활동 당시에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대중들로 부터 사랑 받은 가수들이었습니다.
왜 외국의 보이 밴드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이번 원더걸스도 그런 류의 걸스 밴드로 봐 주실 수는 없는가 하는 생각에 써봤습니다.
음악이라는게 그냥 듣는 사람이 듣고 즐거우면 그걸로 그만입니다.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평론가가 아닌 이상 그런 점에 일일이 지적하고 그러다 보면 피곤하지 않나요? 우리가 그들, 혹은 그녀들이 들려준 음악으로 인해 눈이 즐겁고, 귀가 즐거우면 그걸로 된게 아닌지요.
한쪽으로는 걸스 아이돌이 섹시한 옷 차림에 섹시한 춤을 추면 좋다고 헉헉거리면서, 또 다른 한쪽으로는 천박하다느니, 싸보인다느니, 실력이 없다느니 하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전혀 다른 분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성향 문제니 그렇다쳐요.
그런데, 여기 루리웹 분들을 보고있자면, 같은 사람이 그렇게 이중적인 잣대로 아이돌을 평가하고 있는걸 한 두번 본게 아니라서 조금 씁쓸해지더라구요.
저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때는 아이돌 음악에 부정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냐구요? 바로 여러분들이 "그때 우리나라 가요계가 좋았지" 라고 말씀하시는 90년대였습니다. 그때는 저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평론가나 음악 관계자 분들의 의견도 대충 그랬었어요. "7~80년대 우리 가요계가 좋았지" 라고 하시면서... 좀 심하게 말씀하시는 분들 중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형편 없는 댄스 그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가 엉망이 되었다"라고 평가하셨던 분도 계셨던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어떤가요? 90년대 가요를 듣고 자란 세대들은 요즘 아이돌 음악으로 점철된 가요계를 보면서 90년대를 향수하고 계십니다. 아마 10~20년 뒤에는 현재의 가요계를 그리워하는 분들도 나오지 않을까요?
어느 식문화 평론가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음식의 맛이라는 게 얼마나 비싼 재료를 가지고,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가 한 요리가 좌우하는 게 아니라, 그 음식을 먹은 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음식을 먹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라는 식의 이야기예요.
음악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들은 음악이냐에 따라, 개개인에게 있어서 명곡이나 걸작이 생기게 되는게 아닐까 하구요.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다양한 취미를 갖고 모여든 이 사이트에서 만큼은 다른 이들의 취향에 대해, 그리고 현재의 대중 문화나 서브컬쳐 전반에 대해 조금은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봐줬으변 하고 말입니다.
글 솜씨가 형편 없는지라 두서 없이 막 써봤는데, 저는 싸우자고 이런 글을 쓴게 아니예요.
그냥, 일반적인 사람들이 봤을 때, 어찌 보면 이상한... 혹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우리들인 만큼 그런 시선들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몸소 깨닫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들은 또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아이돌들을 보고 있는게 아닌지요.
조금은 그들에게 관대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써 본 글입니다.
바쁘신 주말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