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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증보판 마츠다 세이코論』#07 (0) 2016/02/11 PM 08:32

제 01장 -두 사람의 제멋대로인 주부






◇ 커다란 도박을 걸 수 있는 사람(男子)
~ 모모에가 버린 99%의 자기(自己)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하면, 그것은 미우라 토모카즈(三浦友和)에 대한 "판돈"이 되었다는 게 정답이다.

그에게는 금후에도 커다란 도박을 걸어보며 살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男子)입니다. (중략)
실제로 그는, 그럴만한 큰 그릇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단하다 생각해요. 저는 절대 이룰 수 없을 만큼의...
(『週刊明星』 특별 독점 수기 「지금, 이 길을...」)

모모에는 막대한 판돈을 자기 자신에게 거는 행위를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관뒀다. 그 시기라는 게 1978년 10월부터 1979년 1월까지의 짧은 시기이다.
1978년, 열아홉살이던 모모에는 5월에 발매된 「プレイバック Part 2(플레이백 Part 2)」로 우자키 류도(宇崎?童), 아기 요코(阿木燿子) 콤비와의 일련의 작업의 정점을 찍었으며, 8월에 역시 이 콤비로부터 받은 곡 「絶?絶命(절체절명)」을 낸 뒤인 9월, 친구인 안 루이스(アン?ルイス)와 함께 열흘간 미국 여행을 떠났다.
뉴 욕에서 LA를 돌며 최고의 기분을 간직한 채 귀국하였으며, 10월에 TBS TV 『スキャンダル(스캔들)』(1979년 봄에 방송) 기자회견에 임한 모모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스캔들』이란 타이틀은 꽤 멋지다 생각합니다. 예전에 프랑소와즈 사강(Fran?oise Sagan)의 책 속에서 "나는 자신이 갖고 싶은 모든 것을 손에 넣은 열아홉살 때, 스캔더러스한 여자라 불렸다"라는 고백을 읽고 크게 영감을 얻었었죠. 때문에 저는 『스캔들』이라는 타이틀이 마음에 듭니다...

(덧붙이자면, 이 타이틀은 너무나 스캔더러스하다는 이유로 스폰서 측으로부터 클레임이 걸려와 『사람들은 그것을 스캔들이라 부른다』로 변경된다)
모모에는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스캔더러스한 여자라 불려도 좋으니, 저도 드라마와 함께 성장해 가고 싶습니다. "자립한 여자란 너무나 매력적이예요." (『週刊明星』 1980년 9월 21일 호, 「山口百? 幸福への軌跡」)

2년 뒤인 1980년 9월, 『蒼い時(푸른 시절)』 안에서 모모에는 이렇게 써내려 가고 있다.

"자립(自立)"... 이 말이 무의미하게 사용되기 시작하고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렀을까? 「자립한 여자」 「캐리어 우먼」...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온 몸이 떨려온다. (중략)
유행하는 말이 그저 멋지다고 따라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많다. 여자에게 있어서의 자립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잘 아는 여성. 그것이 일에 있어서든, 가정에 있어서든, 연인에게 있어서든 뭐든 좋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자립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자립한 여자」라는 간판을 달고있는 여성인 만큼, 경박한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세상으로 나와 활약하는 것만이 「자립」했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는다.
남성사회 안에서 버텨내고 여성의 입장을 외치는 것 보다, 적절한 자립의 길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반쯤 추락이거나 도망칠 곳이라 생각하고 있는 가정이라는 것 속에 그러한 길이 있는 게 아닐까? 가정은, 여자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확실하게 확립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결혼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일부러 「부인」이라는 말을 썼다. 그것은 의식적인 발언이었다. 그 어감이 이제부터 살아갈 나의 길에 어울린다 생각했다. 나는, 이제부터 부인이 될 것이다. 부인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좋은 의미에서의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소중히 여기며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 스물한살의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어왔던 내가, 부인이 되고 시간을 보낸다. 그의 곁에 있는 한, 이제부터의 나는 가장 모모에답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모모에가 은퇴를 결심한 것은 막 스무살이 되었을 무렵이다. 미우라 토모카즈의 입에서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이미 그녀의 답은 나와 있었던 것이다.
「자립」이라는 말에 대한 대극적 감정의 한쪽 끝에서 또 다른 한쪽으로... 모모에는 1978년 10월부터 1979년 생일(1월 17일) 직후의... 불과 3개월 동안에 뛰어가버린 것이다. 뜻하지 않은 기회가 된 것은, 물론 미우라 토모카즈에 대한 사랑의 발견이었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그것을 풀어줄 열쇠는, 그녀가 노래한 노래 그 자체 안에 있다. 복선은 이미 몇년 전부터 깔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 2장에서 다뤄보기로 하고, 모모에에게 있어서의 남편이 「판돈을 걸 수 있는 사람」이었던 데에 반해, 세이코에게 있어서의 남편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말해보자.

나는 그와 만나기 이전부터, 어째서인지 결혼할 상대가 될 남성은 "서로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 이라 결정짓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자랑할만한 점이 없었던 나지만, 요리를 만드는 것고 먹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중략)
마음을 담아서 만든 요리를, 둘이서 맛있게 먹는 관계야말로 1년내내 함께있어야할 부부의 조건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말하자면, 그것이 가능한지가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아닐까 하고. (중략)
이러한 일들을 두서 없이 생각하다 문득 정신이 들면, 눈 앞에 있는 그는 백화점에서 파는 파이에 빠져있다. 변함 없이 마구마구 먹고 있었다.
(『聖子』)

「서로 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 - 세이코는 남편에게 판돈을 걸 생각이 없다. 세이코의 판돈은 세이코 자신에게 걸고 있으며, 남편은 말하자면 왕성한 식욕을 거는 정도의 사람이다. 세이코에게는, 남편에 대한 비창(悲愴)한 애틋함이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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