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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증보판 마츠다 세이코論』#09 (0) 2016/02/16 PM 03:01

제 02장 -푸른 과실(果?)의 성숙(成熟)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의 궤적






◇ 떡하니 그곳에 서있었다
~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 전설은 모모에 자신이 쓴 한장의 엽서로 시작되었다. 일요일이 되면 빼놓지 않고 보고있던 『スタ?誕生!(스타 탄생!)』(NTV계열)이라는 방송에 열세살 소녀가 등장한 것을 보며, 갑자기 모모에는 결의한다.
「나와 같은 나이. 나도 할 수 있을지 몰라!」(『蒼い時』)
1972년 여름의 일이다.
친구들 몇명과 응모 엽서를 보낸 모모에에게로 즉시 예선 통지가 날아들었지만, 함께 엽서를 보낸 친구들은 당일이 되자 갑자기 「갈 수 없어」라는 말을 꺼냈다.
모모에 자신은 『스타 탄생!』에 대한 응모 동기를 경제적인 상황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함 같은 게 아니라, 「어린 소녀가 동화 속의 여주인공을 꿈꾸는」정도의 기분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당일이 되자 갑자기 갈 수 없게 된 친구들과 비교해 보면, 당일까지 예선에 나갈 의지를 좌절시켜버릴 법한 친권자의 반대나 좋은 집안에서 자란 자녀에게 있을 법한 자기배려(自己配慮)를 억누르는 유형무형(有形無形)의 압력이, 모모에의 상황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동화 속의 여주인공에 자기(自己)를 투기(投機)하지 않았어도 그녀가 경제적 상황으로부터 벗어났는지는 의문스러웠을 것이며, 동화 속 여주인공이 되어 손해를 볼 경우에 대한 리스크는 그녀가 지금의 상황에 놓여있는 리스크와 비교해도 억제하게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떨어져 봤자 원래대로」라며 적절하게 열세살 소녀는 생각했다... 라고 쓰여져 있다.
이리하여 모모에는 혼자서 예전회장인 유라쿠 쵸(有?町)의 소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예선 번호는 101번, 그녀가 불렀던 노래는 「回?木馬(회전목마)」였다. 1차 예선은 700명 가까운 수에서 40명이 선택되었으며, 2차 예선에서는 이 40명 중에서 7명으로 줄어 있었는데, 「자신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순조롭게」 1차, 2차 모두 합격해 갔다.
이 무렵, NTV의 이 방송 담당 디렉터의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응모자의 사진 중에서, 우연하게도 딱 한장 말려있던 모모에의 사진에 무심코 눈길을 돌린 남자가 있었다.
CBS 소니의 프로듀서인 사카이 마사토시(酒井政利) 앞에, 모모에는 「떡하니 그곳에 서있는 여자아이」(『不可解な天使たち』)로서 출현한 것이다.
모모에의 첫인상을 희대의 민완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얀 블라우스와 미니스커트라는 지극히 소녀다운 차림이었는데, 뭔가 씩씩함을 느끼게 했다. 다리가 굵은 여자애구나 라고 말해버리면 확실히 그러했겠지만, 오히려 그런 대지를 내딛는듯한 "씩씩함"이 신선하게 비춰졌다.
당시의 인기 여성 가수라 하면, 구름 위에서 미소 짓고 있는 천사랄까... 메르헨풍의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아이돌 스타 그 자체인 아마치 마리(天地?理)였으며, 그녀와 나란히 산닌무스메(三人娘)라 불리운 미나미 사오리(南沙織), 코야나기 루미코(小柳ルミ子)였다. (중략)
하지만, 세대가 바뀌려 하고 있었다. 그런 형세를 느끼기 시작한 나는, 한장의 사진 속에 확실하게 서있는 소녀에게서 다음 세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다. (중략)
흔히들 말하는 「현대적(ナウっぽさ)」인 느낌은 없었다. 어느쪽인가 하면 고풍스런 생김새였다. 외부의 디렉터 녀석들은 「이 아이는 츠치다 사나에(土田早苗)라구요」라고 말한다. 시대극에나 어울린다는 의미였다.
(『不可解な天使たち』)

아직 예선 통과를 하기 전에, 야마구치 모모에의 컨셉은 갖춰져 있었다.

① 굵은 다리, 통통한 체형 등 육체적 질량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인 존재감
② 외꺼풀 눈, 고풍스러운 생김새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일본적인 심정(心情)

이 두가지 조건은 양쪽 모두, 당시의 인기 여성 가수에게는 결여된 부분이었다.
아이돌 스타는 메르헨풍 주인공이여야하며, 따라서 「존재감의 희박함」과 「국적불명성(?籍不明性)」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격이었던 아마치 마리는 나중에 야마구치 모모에를 시작으로 하는 패러다임에 의해 축출되고 추락해 갔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참한 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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