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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증보판 마츠다 세이코論』#10 (0) 2016/02/17 PM 10:47

제 02장 -푸른 과실(果?)의 성숙(成熟)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의 궤적






◇ 아이돌이 인식되었던 해(年)
~『청순 소녀 가수 연구(?純少女歌手の?究)』(?心社)라는 흥미로운 책 속에서, 저자인 타케우치 요시카즈(竹?義和)는 아이돌을 두고「어딘지 모르게 멋있고 예쁘다는 느낌이 들며, 그와는 반대로 어딘지 모르게 신비하고 무시무시한 느낌도 든다. (중략) 그러한 언밸런스한 생각이 적절하게 혼합된 것, 그것이 아이돌」이라 쓰고 있다.
좀 더 앞서 나가서 말하자면, 아이돌 = 청순 소녀 가수이다... 라고도 쓸 수 있다. 그리고, 청순 소녀 가수 - 이른바 아이돌은, 쇼와(昭和) 40년대 후반 정도부터 연예계의 메이저 신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던 듯 하다.
그 이전의 가요계에는 오가와 토모코(小川知子), 이토 유카리(伊東ゆかり), 오쿠무라 치요(?村チヨ), 이시다 아유미(いしだあゆみ), 소노 마리(園まり) 같은 가수들이 있었으며, 데뷔한 연령은 낮았어도 연령 이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곡조로 온 힘을 다해 성인 가수인 척하고 있었다... 라는 말이다.
당시의 소녀 가수 -아직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대의 가수- 에게는, 청순함이나 소녀다움은 필요조건이 아니었다 여겨진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단어와 함께, 연예계 메이저 신에 최초로 등장한 이가 아마치 마리(天地?理), 코야나기 루미코(小柳ルミ子), 미나미 사오리(南沙織)... 즉, 산닌무스메(三人娘)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1971년에 데뷔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나이 이상으로 어리게 보이도록 연출되었으며, 청순함과 귀여움을 제거하지 않도록 선곡을 받아 등장한다.
세간에 일반적으로 아이돌이라는 말이 인지된 해... 1971년이라는 해는, 과연 어떤 시대였을까?
이 해 8월에 나가노 현(長野?)에서 제 1회 리브 합숙이 개최되었다. 이후, 각지에서 우먼 리브 운동(여성이 주최가 되는 여성 해방 운동)은 젊은 무명의 여성들에 의해 활기차게 전개되어 갔다.
1971년이라는 해는, 일본에 우먼 리브라는 말이 인지된 해이기도 했다. 이 말은「프리 섹스」나「안기는 여자에서 안는 여자로」같은 말이나 슬로건과 함께, 온 일본의 남성에게 위협을 가했다.
연예계라는 업계는 항상 그래왔듯이, 이때에도 온 일본의 남성의 불안을 완화하여 안심을 보증해 주는 환영(幻影)으로서「바라는 여성상(像)」을 제공하는 데에 성공한다.
우먼 리브가 여자의 자연스런 신체를 여자에게 되돌려준다고 하는 데에 대해서는, 남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러할 경우 원하는 육체성(肉?性)을 다시 밀어부치고, 우먼 리브가 전후 일본의 허위(??)를 허물고자하는 데에 대해서는, 시대도 공간도 초월한「메르헨(M?rchen)」이라는 세계를 재현시켜 우먼 리브가 성(性)의 해방, 안는 여자를 주장하는 데에 대해서는, 청순무구한 처녀성(?女性)을 아이돌 가수에게 완전하게 투영한 것이다.
아이돌들의「존재감의 희박함」「국적불명성(?籍不明性)」「청순」같은 컨셉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마치 마리는 우먼 리브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서 투입된 남성사회로부터의 폭탄이었던 것이다.
아마치 마리에게는 한점의 어둠도 에고이즘(egoism)도 분노도 사회의식도「안는 여자」성(性)도,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이상적인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치 마리에게는 점점 데뷔 전의 경력에 관한 스캔들이 덮쳐오게 된다.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미소지으면 지을수록, 사람들은 미소 뒤에 청순함과 대극(大極)을 이루는 것을 훔쳐보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단순하게 그녀의 미소가 과잉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준 컨셉 자체가 살아있는 인간의 존재의 허용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녀의 미소에서 사람들은 인공적인 것, 꾸며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자신의 장점에 의해 멸망해 가기 마련이지만,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돌 아마치 마리의 최대의 장점은「청순함」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런「청순함」을 최종적으로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청순함」이라는 것은,「육체성이 결여된 청순함」... 좀 더 단적으로 말하자면「성기(性器) 없는 처녀의 청순」이다.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에게는 갖춰져 있으나, 아마치 마리에게 빠져있었던 것은, 바로 이 "성기성(性器性)"이다.
열세살의 모모에에게는, 본인이 의식할 것도 없이 처녀성은 자명한 것으로서 존재했다. 그리고 그녀의 일견 최대의 결점이라 여겨진 육체의 질량감(質量感)이, 처녀성에 진실감을 부여했다. 모모에의 데뷔가 4, 5년 뒤로 늦춰졌다면 그녀 역시 무명시절의 사실무근인 스캔들에 시달려야했을 것이다.
모모에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컨셉은 그러니까 다음과 같다.

③ 처음으로 등장한 성기를 갖춘 청순함

모모에는, 미숙(未熟)하지만 성숙(成熟)으로 향하는 방향성을 갖춘 본래의 처녀로서,『スタ?誕生!(스타 탄생!)』의 제 3차 심사로 홀로 향했다. 아이돌의 선봉들이 그 현실과 동떨어진 금욕주의(禁欲主義: Stoicism) 때문에 퇴각할 수 밖에 없었던 연예계의 메이저 신으로, 모모에는 담담하게 다가갔던 것이다.
1972년 11월 8일, 모친인 마사코(正子)는「뭐, 그리 쉽게 합격할거라 생각하지 마. 열심히 하고 오렴」하며 웃으며 딸을 고라쿠엔 홀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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