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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증보판 마츠다 세이코論』#18 (0) 2016/03/16 PM 11:39

제 02장 -푸른 과실(果?)의 성숙(成熟)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의 궤적






◇ 악녀(?女)의 귀향(??) -「코스모스(秋?)」
생각해 보면 아기 씨의 가사를 노래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실생활에서의 내 사랑도 시작되긴 했는데, 아기 씨의 가사 속에 쓰여진 말들이, 내게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양한 파동을 가져다 주었다고도 생각된다. (중략)
가사 속에서, 말로 뛰어 들어온 감정이, 이번에는 현실의 사랑의 틈 사이에서 어른거렸다.
(『プレイバック PARTⅢ』 해설문)

CBS 소니의 프로듀서인 사카이 마사토시(酒井政利)가 데뷔하는 모모에에게 무난한 사소설풍(私小?風) 노선을 적당히 생각해서 취하게 한 효과는, 사카이 자신의 기대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모모에 안에 침투해 갔다.
모모에는 자기 자신의 신체적 성장에 맞춰 노래를 불렀던 게 아니라, 노래의 가사에 자신을 맞춰 「성장(成長)」해 갔던 것이다.
모모에의 「성장」에 가장 강한 영향을 주었던 인물은 역시나 아기 요코(阿木燿子)이다. 아기 요코의 가사는, 모모에에게 있어서 감정교육을 위한 교재였다.
모모에 자신이 썼던 것처럼, 그 무렵부터 시작되고 있던 현실에서의 연애의 장에, 모모에는 아기 요코로부터 배운 감정을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모모에에게 있어서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은 다음 두가지다.

① 연인과의 연령차(일곱살 차이)를 매꿔, 연애의 실현(행동화)에 뛰어 들기 위해 필요한 <어른 여자>로서의 자기감각(自己感?) 및 거기에 따르는 감정
② 연인과의 사회적 언밸런스 -물론 모모에가 우위(優位)이며 연인이 열위(劣位)라는 것- 를 밸런스를 잡기 위한 <자립한 여자>에 대한 거부적 감정

이러한 감정을 모모에는 아기 요코로부터 완벽하게 배웠다. 하지만, 아기 요코가 과잉되게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모모에가 반발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가령 유행품이었다고도 사이비였다고도 할 수 있는 아기 요코의 「근대성(近代性)」 -일종의 도시성(都市性)- 이다.
아기 요코가 묘사하는 연애의 무대는 항상 도시였다. 그리고 연애의 소재(在り?)는 항상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 있었다.
모모에와 아기 요코의 차이는, 모모에가 도시인의 소심함을 갖추지 않은 여자였다는 점이다.
모모에는 현실의 연애에 가져가야할 감정을 필요로하고 있었지만, 좀 더 필요로 했던 것은 현실의 연애에서의 도착점(着地点)이다.
아기 요코가 모모에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하고 싶었어도 못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현실적 회수 방법을, 소심함도 도회(韜晦)도 없이 지적한 인물... 그것이 바로 사다 마사시(さだまさし)였다.

「秋?」
淡紅の秋?が秋の日の
(가을날에 핀 연분홍빛 코스모스가)
何?ない陽だまりに?れている
(아무렇지 않게 양지에서 흔들리고 있어)
この頃?もろくなった母が
(요즘들어 눈물이 많아진 어머니께서)
庭先で一つ咳をする
(마당에 앉아 기침을 한번 하셨어)

?側でアルバムを開いては
(툇마루에서 앨범을 펼쳐놓고서는)
私の幼い日の思い出を
(내 어릴 적의 추억을)
何度も同じ話繰り返す
(몇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셨지)
ひとり言みたいに小さな?で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こんな小春日和の?やかな日は
(이렇게 화창하고 따스한 날은)
あなたの優しさがしみてくる
(당신의 따스함이 스며들어 와)
明日嫁ぐ私に苦?はしても
(내일이면 시집을 가는 내게, 고생하더라도)
笑い話に時が?えるよ
(우스갯 소리로 이야기할 때까 올거라며 말씀하시길래)
心配要らないと笑った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어)

あれこれと思い出をたどったら
(이런 저런 추억을 쫓아가다 보니)
いつの日も一人ではなかったと
(언제나 혼자였던 게 아니었다는걸)
今更ながらわがままな私に
(이제와서 고집불통이었던 나에게 말씀하셨지)
唇?んでいます
(입술을 깨물었어)

明日への荷造りに手を借りて
(내일 보낼 짐을 옮기는 데 도와주시며)
しばらくは?し?にいたけれど
(한동안은 즐거운 듯 시간을 보냈지만)
突然?こぼし元?でと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며 잘 지내라고)
何度も何度も繰る返す母
(몇번이고... 몇번이고 말씀하신 어머니)

ありがとうの言葉を?み締めながら
(감사드려요... 라는 말을 씹어삼키며)
生きてみます、私なりに
("내 나름대로 잘 살아볼게요")
こんな小春日和の?やかな日は
(이렇게 화창하고 따스한 날은)
もうすこしあなたの子供でいさせてください
(조금만 더 당신의 자식으로 있다 가게 해주세요)


멕시코가 원산지인 꽃 코스모스를 굳이 「秋?」라 표기하고, 「日溜り(햇살)」 「小春日和(화창)」과 같은 일본적 자연 기호에, 「庭先(마당)」 「?側(툇마루)」 같은 일본 가옥 특유의 파츠(parts)를 곡의 여기저기에 뿌려놓는 것에 의해, 사다 마사시는 모모에를 당시까지 있던 카타카나(カタカナ)의 세상으로부터 한자(漢字)의 세상으로 워프시켰던 것이다.
아기 요코의 풍경이 TV 드라마의 그것이라면, 사다 마사시의 풍경은 하이쿠(俳句)의 그것이다.
「(그가) 팩에 담긴 채인 우유를 안고서 가벼운 몸놀림으로 가져다 주는」 장면과 「(어머니가) 마당에서 한번 기침을 하시는」 장면의 대조가, 그 전형이다.
하지만, 「코스모스」에서 그런 일본적 풍경의 디테일보다도 결정적인 소재는, 어머니이다. 「요즘들어 눈물이 많아진」 「기침을 하는」 어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상냥함」으로 가득찬 존재이다. 그야말로 일본에 있어서의 어머니의 스테레오타입을 완전하게 옮겨놓은... 애잔하고 약하고 자애로 가득찬 그런 어머니인 것이다.
모모에는 <그대(당신)>라는 2인칭대명사를, 남자를 향해 사용하는것을 처음으로 그만두었다. 동시에 <나>는, 악녀도, 연상의 여자도, 자립에 갈등하는 여자도 아닌, <얼굴 없는 딸>이 된 것이다.
내일이면 시집을 갈 딸에게, 어머니는 「고생하더라도, 언젠가 우스갯 소리로 이야기할 때가 올거야」라고 말씀하신다. 「걱정하지말라」며. 왜냐하면, 그것은 어머니가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젊었을 무렵, 남편으로 인해 갖은 고생을 해야했던 어머니도 지금은 「가을날의 햇살」이, 「화창한 날」이 찾아와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딸도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인생의 가을날이 되면, 따스하고 화창한 날을 맞이할 것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한다.
일본적인... 너무나도 일본적인 무력한 여자의 고생스런 인생을, 어머니는 딸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영원히 반복되는 서글픈 인내와 체념으로 가득한 생활에, 딸은 들어서려 하고 있다.
가을날의 여자의 원숙(円熟)이라는 것은, 마조히즘(masochism)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어머니와 딸의 유대(絆)는, 마조히즘을 그것이라 깨닫지 못하고 계승시켜 가는 유대나 다름 없다. 딸은 어머니의 인종(忍?)을 확실하게 내면화(?面化)시켜, <나>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인생과 같은 인생을 걸어가려 하는 딸은, 어머니가 머무는 우주(cosmos)에 자신도 회귀해야한다고 결의한 것이다.
철저한 어머니와 딸의 감상(感傷) -그것은 항상, 딸이 시집을 가는 날에 피크를 맞이하게 된다. 코야나기 루미코(小柳ルミ子)가 「??の花嫁(세토의 신부)」를 노래했던 것 처럼 말이다.
「세토의 신부」와 「코스모스」는 같은 선율을 가진 다른 곡이다.
전자에서는 무대가 세토나이카이(???海)의 섬이었던 데에 반해, 후자에서는 고원(高原)으로 바뀌어 있다. 전자에 있어서의 가족의 생활이 전갱이나 고등어와 같이 비릿함이 풍기는 어촌 생활이었던 데에 반해, 후자에서는 가족의 생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으며, 그런 만큼 모친의 전업주부성(性)이 강조되어 있다. 전자에서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고기잡이를 하러 나서고, 어망을 화창한 날에 말리는 구릿빛을 띈 어머니인 데에 반해, 후자에서는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해 온 실내파인 흰색의 어머니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두고, 코야나기 루미코는 「엄마(かあさん)」라 불렀던 데에 반해, 모모에는 「당신(あなた)」이라 부르고 있다.
말하자면 「코스모스」는 「세토의 신부」의 고원 버전이다. 토지의 높은 표고와 낮은 습도는, 코스모스가 핀다는 것을 통해 간파할 수 있다.
어촌에서 고원으로 무대가 전환되는 것에 의해, 전자가 가진 토착성이나 서민의 생명력이 급속도로 소실되며, 고아(高雅)하고 청결한 서정성(lyricism)이 연출되어 있긴 하지만, 그만큼 어머니와 딸의...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받은 자들끼리의 감상주의(sentimentalism)가 쓸데 없이 어른거린다.
「즐거운 듯 시간을 보냈지만,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며 잘 지내라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말씀하신 어머니」라는 가사에는, 인종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어머니의 억압과 기만(欺瞞)이 분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모에는 일본의 아내와 어머니의 스테레오타입을 살아가는 것에 어떤 의문을 품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웅숭배주의(heroism)에 도취되어 있다. 모모에가 찾고 있던 연애의 도착점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꼬맹이를 가볍게 대하던 <연상의 여자>는, 제도로부터 벗어난 지점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보내는 불안에, 완전히 지쳐있었던 것이다. <악녀>는 고향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어머니 곁에서, <과거를 청산한 딸>로서, 어머니와 동일화(同一化)를 도모하는 것에 의해, 그녀는 <자립한 여자>로서 살아가는 공포를 회피한 것이다.
「코스모스」는, 악녀의 귀향(??)에 관한 이야기이다. <추상(抽象)으로서의 남자>에 대한 적의(敵意)와 증오(憎?)를 억압하여 <일본의 딸>로 전향하는 것에 의해, 모모에는 예정조화(予定調和)의 세계라는 머리를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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