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둘? 세살 때쯤의 일입니다.
당시 지방에서 일하다가 알게 된 동갑 친구가 있었는데, 어릴적에 양친이 모두 돌아가시고 하나 있는 핏줄인 남동생은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지며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죠.
이 친구는 자기가 버는 돈의 대부분을 자신의 동생을 위해 썼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공부머리가 없었던 지라 중학교를 졸업한 뒤 쭉 돈을 벌어온 친구라, 그래도 자기 보다는 미래가 있을 것 같은 동생을 위해 생활비라던가 학비 같은걸 다 자기가 벌어서 주는 그런 친구였죠.
그러다 저와 그 친구는 둘 다 일을 그만두게 되고 제가 본가인 부산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둘이서 살던 집을 내놓아야했습니다.
당연히 그 친구는 갈 곳이 없었죠. 당시 다른 친구들 대부분이 군대에 가있거나 했기 때문에 따로 신세질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돈도 동생에게 다 갖다주느라 모아둔 것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저는 부모님께 허락을 얻어 그 친구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만 집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했었습니다.
함께 부산으로 오게 되고 그날 이후 우리 집 사람들은 그 친구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날이 이어지게 되었죠.
지방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일할 때에는 몰랐던 그 친구의 단점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머스마들끼리 살다 보면 뭐 방안에서는 속옷 차림에 청소도 대충대충 하고, 좋아하는 게임이나 하면서 그리 살면 좋았지만, 일단은 어른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어느정도 예의는 지켜야할 부분이 있습져.
근데 그 친구는 저와 자취할 때의 그대로 저희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도 큰게 마려우면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가서 일을 본다거나(아버지께서 깔끔한 성격이시라 식사 도중에 화장실 가는 것 자체를 매우 싫어하십니다), 당시엔 TV가 거실에 있는 것 하나 뿐이라 하루종일 거실에 앉아서 게임을 한다거나, 또 일자리를 구하겠답시고 생활정보지 같은걸 가져오면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하면서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안 하고...
이것은 나중에 그 친구가 저희 집을 나가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제 여자친구까지 건드리는 병크까지 저질러버렸었죠.
그렇게 반년여동안 일 한번 안 하고 그렇게 저희 집에서 생활했습니다만, 보다 못한 아버지께서 드디어 폭발하셨던 것입니다.
사정이 딱해서 그동안 보기 안 좋았던 부분도 참고 넘어가려했지만 도저히 못 봐주겠다시며...
그렇게 그 친구는 저희 집을 나가게 되었고 이후 들리는 이야기론 게임 폐인이 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 밖에 안 들리더군요.
제대한 친구들도 그 친구 소식을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 그로부터 16~7년이 흐른 지금도 아무도 그 친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 친구 동생의 경우 대학 무사히 졸업하고 직장인도 되어 결국 신세지던 친구네 집 양자로 입적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들리더군요.
나중에 여자친구 건드렸다는 이야길 듣고 찾아내서 진짜 죽여버릴라고 잔뜩 벼르고 있었는데, 이 일도 세월이 지나니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능.